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인터뷰] 지금 대중이 원하는 코미디, 김홍기 작가 × 이태동 감독 대담
이우빈 사진 백종헌 2025-12-05

‘대중’을 특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시대다. 극장과 TV처럼 공동의 문화를 주도하던 레거시미디어가 쇠퇴하고, 콘텐츠를 즐기는 각자의 알고리즘은 더욱더 세분화됐다. 각 세대나 성향이 지닌 웃음의 지향과 공유 배경이 다른 만큼, 모두를 웃기는 정통 코미디가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우리를 꾸준히 웃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익스트림 페스티벌> 등으로 영화와 시리즈, 각본과 연출을 오가던 김홍기 작가는 최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제4차 사랑혁명>의 작가로 안방의 코미디를 주도하고 있다. 이태동 감독은 <좋좋소> <강계장> <찐따록: 인간 곽준빈> 등을 만들고 크리에이터 진용진의 프로젝트 ‘없는 영화’에 참여하는 등 뉴미디어 생태계의 코미디를 종횡무진한 이다. 코미디라는 한우물만 파는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서 영화와 시리즈는 물론 유튜브, 숏폼 콘텐츠까지 포함하는 지금 이 시대의 코미디가 어떤 맥락에 있는지, 대중이 원하는 코미디가 무엇인지 논했다.

이태동, 김홍기(왼쪽부터).

- 올해 가장 재밌게 본 코미디 콘텐츠는.

김홍기 유튜브 콘텐츠 ‘민수롭다’(유튜브 크리에이터 김민수가 ‘미남 배우 김민수’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상황극)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도의 학습이 필요한 콘텐츠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팬이어야 하고, 이 사람들의 캐릭터를 알아야 하고, 이 시장에서 무엇을 해온 인물들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배우병’에 대한 공감대도 있어야 웃음을 느낄 수 있다. 콘텐츠 뒤의 켜켜이 쌓인 맥락을 장착하고 있어야 재밌는 콘텐츠다. 그런데 놀랍게도, 콘텐츠 조회수를 보면 그런 사람이 한국에 최소 100만명은 있더라.

이태동 <직장인들> 시즌2다. 올해 나온 영화와 드라마 중 정통 코미디는 없었다고 본다. 코미디가 작품의 코어가 아니라 공포, 드라마, 액션 등의 장르에 서브로 작용하는 경향이 컸다. <직장인들> 시즌2도 시트콤 시리즈로 분류되긴 하지만, 예능에 가까운 콘텐츠라고 본다. 신동엽, 백현진, 김원훈, 카더가든 등의 플레이어가 대본에 의지하기보단 본인들이 기존에 쌓아온 캐릭터에 기반해 민첩한 연기로 웃음을 유발한다. 극은 커다란 틀 정도일 뿐, 캐릭터 플레이에 가까운 예능이었다. 코미디에 가장 중요한 시의성과 풍자 요소도 적절히 녹아들어 있었다. 최근 영화, 드라마 등의 전통적인 서사 영상매체는 금기시하는 웃음의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예능인들의 센스와 역량으로 그런 금기들을 아슬아슬하게 오고 가는 역량을 보여줬다.

- 마지막으로 메가 히트한 정통 코미디영화는 <극한직업>정도다. 그 이후엔 영화, 드라마에서 코미디는 일종의 부수나 속성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왜일까.

이태동 요즘 체감하기로, 업계 관계자들이 ‘설명하기 쉬운 코미디’를 선호하는 것 같다. 한줄로 설명되고, 타깃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불편하지 않은 코미디’를 원한다.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어떤 수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안길 수 있는 요소라면 꺼리는 편이다. 풍자라는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풍자가 없는 코미디는 감상 후 관객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휘발성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다. 제작자, 투자자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 “코미디는 취향을 많이 탄다”는 것인데, 이건 바꿔 말했을 때 장르의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다는 것과도 같다. 누군가의 불호를 유발할 바엔 그냥 좀 순하고, 풍자적 요소 없이 단순하게 웃기기만 하는 기획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이 무조건 나쁘다고 느끼진 않는다. 시장이 불안할 경우 불가피한 현상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코미디가 ‘무난한 웃음’만 남기다 보면 장르의 쇠퇴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김홍기 일단 코미디는 어렵다. 웃음을 만드는 방식엔 수백, 수천 가지의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극한직업>같은 작품은 웃음의 타율을 6할쯤까지 끌어올린 사례였다. 일반적인 코미디영화는 웃음의 타율을 3할에 맞추기도 무척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조건들이 너무 많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건 ‘취향’이다. 모두를 웃기지 못할 거라면 ‘이 사람들은 그래도 무조건 웃을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필요하다. 그러니 점점 더 정통 코미디 장르는 줄어들고 코미디가 세분화할 수밖에 없다.

- 정통 코미디의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콘텐츠 투자자나 제작자에게 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지금 코미디영화의 흐름에 특정 경향이 있다고 보는지.

김홍기 보이지 않는다. 올해 <좀비딸> <보스> <히트맨2>의 성격과 관객층은 다 다르다. 어머니가 <보스>를 재밌게 보셨다고 했지만, 20~30대들에겐 이 영화보다 <어쩔수가없다>가 훨씬 웃겼을 것이다. 극장산업이 점차 중장년층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는 느낌이다. 다만 이게 문제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200만명을 넘겨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고, 일정 세대의 관객들을 웃기고 행복하게 하고, 명절을 따뜻하게 보내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일각에선 한국영화의 질적 하락을 말하긴 하지만, <세계의 주인>처럼 눈 밝은 관객들의 선호를 받는 작품도 동시에 있다. 위에 언급한 세 작품이 모두를 웃기진 못했더라도 어머니를 웃겼다면 그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태동 코미디 콘텐츠가 너무 많다.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 유튜브 콘텐츠와 쇼츠, 릴스에 볼 코미디가 산적해 있다. 다만 각자의 알고리즘도 명확하다. 김홍기 감독님의 어머님이 지닌 알고리즘과 세계관에선 <보스>가 가장 웃긴 콘텐츠일 수 있다. 반면 감독님은 매우 고도화된 코미디 콘텐츠의 알고리즘에 매일 노출되다 보니 ‘민수롭다’가 재밌을 수밖에 없다. 예전엔 대중적 코미디가 대개 영화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코미디영화에 대한 평가 지표가 아예 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200만 관객을 넘겼다면 그 작품이 소구할 수 있는 알고리즘 내에선 유의미한 결론을 낸 것이다. 공통으로 소구하는 코미디를 위해선 결국 ‘캐릭터’밖에 답이 없다고 느낀다. <좀비딸>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배우 조정석이 쌓아온 캐릭터 덕분이고, 마동석 배우의 프랜차이즈영화가 성공하는 요인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민수롭다’ 등 최근 인기 있는 유튜브 콘텐츠도 다 캐릭터 플레이다.

- 극장, 드라마 등 레거시미디어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 사이의 틈은 어느 정도일까. 뉴미디어의 트렌드를 이끄는 20~30대의 니즈가 레거시미디어에 얼마나 적용된다고 느끼는지.

김홍기 솔직히 너무 다르다. 영화, 드라마 콘텐츠의 현재 의사결정권자들은 최신 코미디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의향도 없는 듯하다. 타인의 취향을 간편히 알 수 있는 시대임에도 경계가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앞에 말한 것처럼 꼭 20~30대를 알려고 집착할 필요는 없다. 시장 상황에 맞춰 <가문의 영광>시리즈를 또 만들어도 된다. 다만 그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에게 웃음의 타율을 최소 3~4할은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퍼스트 라이드>는 30대 청년 주인공들을 내세웠지만 <스물>등 비슷한 종류의 작품보다 덜 신선했다. 20~30대가 웃을 준비를 하고 들어왔는데 그 기대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고 본다. 차라리 작품의 주인공들을 중장년층으로 설정했다면 중장년층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는 작품으로 작동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태동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다. 제작, 공개의 메커니즘이 아예 다르고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레거시미디어와 뉴미디어 시장을 투 트랙으로 여기고 나아가는 게 낫다. 그럼에도 20~30대를 포괄해 최대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코미디의 조건이 있다면 첫째,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웃음이 필요하다. 둘째, 코미디의 호흡이 빨라야 한다. 셋째, 앞에 말한 것처럼 캐릭터성이 강해야 한다. 넷째, 거대한 악당 캐릭터가 있기보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시스템에서의 괴리나 아이러니를 느낄 때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마지막으로, 비웃음의 코미디보다 약간의 동료애를 감지할 수 있어야 대중을 너르게 사로잡을 수 있다.

김홍기 맞는 말씀이다. 다른 세대를 모르는 세대가 웃음의 강박을 주려는 순간, 관객의 마음은 닫힌다. 기성세대가 만든 영화가 “자, 이제 웃겨드립니다~!”라는 식으로 나오면 10~30대는 즉각 거부감을 느낀다. 포스터에 “요절복통, 대환장” 이런 단어가 있으면 바로 눈을 돌린다.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정말 조정석 배우처럼 개인의 기세로 웃기는 방법밖에 없다.

이태동 <너덜트> <숏박스>같은 뉴미디어의 코미디 콘텐츠는 크리에이터가 시청자들의 웃음 타이밍을 잡아준다. 액션보단 리액션으로 웃기는 쪽이고, 시청자는 받아치는 쪽의 리액션에 따라 웃는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속 ‘하와 수’처럼 박명수가 개그를 치고 정준하가 받아줘야 웃음이 완성되는 것이다. 유튜브나 쇼츠, 릴스를 위한 코미디를 만들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이다. 대사를 받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그 웃음의 타이밍을 관객에게 맡기는 편이다. 누군가의 개그에 웃는 인물이 작중에 등장하려면 비웃음의 코미디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 영화와 드라마는 그런 불편한 요소를 더욱더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감각에 따라 더 친절한 코미디가 필요하다.

김홍기 목표가 생겼다. 이태동 감독님 밑에서 일하고 싶다. 업계에선 나름 젊은 작가진에 묶이는 편인데, 감독님이나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정말 보법이 다르다는 생각만 든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굉장히 전통적인 서사로 쓰인 작품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은데, 한편으론 이태동 감독님이 지향하는 촘촘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든다. 물론 모두를 웃기는 천만 영화를 만들고도 싶고. (웃음)

이태동 내 목표도 뚜렷하다. 최근의 10~20대들은 너무 많은 콘텐츠에 노출되다 보니 오히려 본인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친구들에게 정말 본인의 웃음 취향이 무엇인지 알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