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는 입양아를 빼돌려 불법으로 거래하던 브로커들과 돌아갈 곳 없는 미혼모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송대찬 프로듀서에게 주어진 역할은 바로 이 영화의 ‘여정’이 어디에서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될지, 최선의 선택지를 감독에게 제시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소 헌팅을 하고, 시나리오 취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아동복지법과 입양특례법 등 법적 자문 취재에 이르기까지 송 프로듀서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와 촬영 시스템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면서 감독과 제작진의 가교 역할은 물론 시나리오의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준 송대찬 프로듀서에게서 <브로커>와 함께한 부산에서의 날들에 관해 물었다.
- <브로커>의 출발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비롯해 출연배우들이 언론에 밝혔던 것처럼 꽤 오랜 기간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골든슬럼버>를 끝내고 강동원 배우와 함께 일본으로 넘어가 감독님과 미팅 자리를 가졌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세 번째 살인>개봉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는데 <어느 가족>과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도 진행 중이었다. 우리로서는 기약 없는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다. 당시에 또 외부에 알려지면 안됐기 때문에 감독님과 미팅 이후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고레에다 감독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고, 또 가장 오래 찍은 프로젝트였을 거다.
- 처음 고레에다 감독과 만났을 때 어떤 영화가 될 거라고 예상했나.
감독님은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세 배우와 함께하는 영화를 찍고 싶어 하셨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간단한 시놉시스 정도만 기획된 상태에서 한국을 서너번 비공식적으로 오가면서 제작진과 직접 로케이션 헌팅을 다녔다. 실제 보육시설도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상당 부분 영화에 반영됐다. 논산에서 3대째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취재를 하기도 했다. 법 관련 자문도 받으면서 이야기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해나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왜 부산을 담고 싶어 했나.
처음부터 이야기의 시작점은 부산이었다. 본인이 예전부터 영화제 등을 통해 부산을 가장 많이 오갔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진 곳에서 사는 우리보다는 상대적으로 감독님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바로 부산이 그런 풍경을 가진 도시였다.
- 영화가 부산을 시작으로 동해의 해안가 도시를 따라 올라오고 인천과 서울까지 온다. 이 동선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감독님이 원한 건 어쨌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이야기였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영화에 어울리는 동선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내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팀원들이 7번 국도 해안가를 따라 올라오는 동선을 제안했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 포항 같은 산업도시도 지나는 경로 등 의미를 설명하면서 감독님을 설득했다. 극 중 보육원으로 나오는 장소도 감독님이 원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초등학교 분교로 쓰이던 곳을 리모델링했다.
- 현장 그대로 찍길 바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
부산에서 운영 중인 교회 중 언덕에 위치한 모든 교회, 그리고 인물 동선에 맞는 세탁소를 전수조사했다. 관객이 인지했는지 모르겠지만 상현과 동수, 소영 일행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이야기 전개 방향에 따라 바다를 차의 왼쪽에 둘지 오른쪽에 둘지도 정확하게 맞춰서 찍었다. 우리가 전수조사를 한 이유는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서로의 신뢰를 빨리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모든 옵션을 제공해드렸다.
- 영화의 모든 공간이 전부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했나.
모텔 방만 세트에서 하루 촬영했다. 팬데믹 기간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의 호텔에서 묵는 장면은 전부 로케이션 촬영이었다.
- <브로커>를 찍으면서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 사업을 통해 얻게 된 이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팬데믹 기간에 수십명의 촬영 인원이 이동을 해야 하고 심지어 비공식적으로 전국 일주를 해야 했던 촬영이어서 부산영상위원회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가제로 ‘프로젝트A’라는 타이틀을 써서 장소 섭외 및 관공서 섭외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부산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산의 인센티브 지원 덕분에 가급적 부산에서 더 찍으려고도 했다. 전체 촬영 일정 중 1/3을 부산에서 찍었는데 꼭 부산이 아니어도 됐을 장면도 일부러 부산에서 찍었다. 당시 우리로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작비 상승에 대한 우려로 추가적인 비용 발생을 보전하기 위해서도 혜택이 많은 지원 사업들이 절실했다. 70~80명의 인력들이 부산에 체류하면서 발생한 기본적인 비용들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많은 영화인들이 인센티브 지원 제도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 25년차 프로듀서에게 <브로커>는 어떤 촬영 현장이었나.
이 영화는 내가 참여한 작품 중에서 가장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은 현장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자동차 장면을 레커차를 동원해서 실제 주행하며 찍었다. 요새는 상당 부분 CG로 대체한다. <기생충>의 주행 장면도 전부 CG다. 배우들의 안전문제도 물론 있지만 수동기어 차량을 기어이 수급해서 장면을 찍어냈다. 특히 KTX 장면은 우연의 포착으로 얻어냈다. 실은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는 KTX 노선의 터널 구간을 전수조사했다. 엑셀파일에 해당 구간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재해서 준비했으나 사실상 모든 여건이 제시간에 찍을 수 없게끔 흘러갔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우연히도 터널 구간에서 원하는 장면을 정확하게 찍을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감독님은 디지털 촬영 방식으로 빠르게 찍는 것만이 꼭 좋은 현장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함께한 제작진에게도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지금 한국영화 촬영 현장은 <브로커>처럼 찍기 어려운 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