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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엔 모험과 여행이 필요하다, 부산국제영화제 감독 회고전으로 내한한 미겔 고메스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4-10-18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준비한 세개의 특별 기획 프로그램 중 하나는 ‘미겔 고메스, 명랑한 멜랑콜리의 시네아스트’다. 포르투갈 출신의 영화감독 미겔 고메스는 영화 <타부>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알프레드바우어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으며 <그랜드 투어>로 제77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그랜드 투어>는 1917년 영국인 공무원 에드워드가 약혼녀 몰리와의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떠나버리고, 몰리가 그의 뒤를 쫓아 태국,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을 거치는 여정을 그린다. 이번 회고전을 기념해 미겔 고메스 감독이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이 본 “아름다운 것들을 관객과 나누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감독에게선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연출한 장편들을 한국에서 상영하게 됐다.

영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감독에게 포커스를 맞춰 특별전을 여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들이 내 영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졌다. 관련해 언급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한국 감독 중 홍상수를 특히 존경하고 <옥희의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신이 있는데 한 관객이 감독에게 그의 개인사에 관한 이상한 질문을 한다. 물론 이건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걸 보면서 이번 영화제에서 어떤 질문을 받게 될까 호기심이 일었다. (웃음) 그동안 관객과의 대화를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영화와 영화제작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을 많이 받았다.

- <그랜드 투어>에 관해 묻고 싶다. ‘그랜드 투어’로서의 아시아 투어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

원래 여러 가지에 잘 매혹되는 편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우아함을 찾아 영화에 담는 것이 감독의 의무이자 임무라고 생각한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내 고향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했는데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가까운 장소 외에도 여행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만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한다. 비유하면 감독은 아름다운 나비를 그물로 잡아 영화에 넣는 사람이나 다름없는데 나는 특히 아시아에 그런 나비들이 많다고 느낀다.

-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제작됐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를 제작한 경험이 <그랜드 투어>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다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랜드 투어>를 찍는 중에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를 촬영했다. <그랜드 투어>는 세번에 걸쳐 촬영했다. 미얀마에 갔다가 중국에 가는 게 원래 여정이었지만 일본까지만 촬영하고 도중에 중단해야 했다. 당시가 2020년 1~2월,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중국 입국이 불가능해 예정됐던 촬영을 할 수 없었고 두 번째 촬영은 2년 뒤인 2022년 1월에 시작됐다. 하지만 그때도 중국에 입국할 수 없어 나는 리스본에 머물고 중국에서 중국인들로 구성된 크루가 원격 촬영을 진행했다. 2년 전에 했어야 할 촬영을 2년 후에도 여전히 입국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리된 채 촬영한 거다. 리스본에 두대 이상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시차도 다른 두 나라에서 중국 촬영팀과 영화와 촬영본, 촬영 상황에 관해 계속 소통했다. 내가 했던 모든 촬영 중 가장 비현실적이었다. 세 번째 촬영은 리스본과 로마의 스튜디오에서 배우들과 함께했는데 그 와중에 포르투갈도 폐쇄가 됐다. 아무도 영화를 찍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나의 도전 과제가 되었다. 그렇게 집 안에 갇혀 록다운 자체를 촬영한 것이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다.

- 제한된 상황에서 두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시네마에 관해 새롭게 배운 것이 있나.

영화를 만드는 것을 통해 나와 내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나는 정말 내 삶이 변하려면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적어도 뭔가 갖고 가는 것은 있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얻은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인식한 것을 포착하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와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 자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 <그랜드 투어>를 포함해 <네게 마땅한 얼굴> <타부>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요소 등 여러 가지를 섞는 시도를 자주 한다.

혼합하고 섞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한 가지 요소만 있는 영화를 볼 때 나는 지루함을 느끼는 편이다. <그랜드 투어>는 191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2020년대에 팬데믹 때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부분도 있어 오늘날의 모습도 같이 담겼다. 가령 1910년대에 오토바이와 전화기가 등장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데 내겐 그런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는 작은 독재자 같은 경향이 있다. 관객들이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볼 때 영화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 슬퍼해라, 기뻐해라,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데 그렇게 되면 영화의 감칠맛(spicy)이 없어진다. 영화엔 너무 많은 권력이 주어졌고, 나는 이걸 타파하고 싶다. 이건 내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다. 관객이 영화에 지배당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고 그런 끝에 영화의 여러 요소를 섞는 시도를 하게 됐다. 불분명한 부분들을 만들어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 시도를 통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보고 웃고 누군가는 감동할 것이다. 같은 장면을 보고 서로 다른 기억과 감상을 가져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화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 작품들을 보다 보면 노스탤지어의 정취가 공통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랜드 투어>를 본 관객들이 여기에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의 감성이 있다고 자주 말한다. 이번 회고전에서도 나를 ‘명랑한 멜랑콜리의 시네아스트’라고 지칭한 걸 봤다. (웃음) 나는 멀리 있는 것에 관한 강렬함을 영화에서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반드시 멜랑콜리, 노스탤지어의 감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그보다는 과거, 혹은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다. 멜랑콜리하다기보다는 현기증이 나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랜드 투어>도 영화의 줄거리에 굴곡이 있지 않나. 주인공이 도망다니기 때문에 계속 불안한 마음도 들고. 내겐 그게 더 강렬하다. 다만 영화가 완성된 이후로는 오롯이 관객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관객들의 감상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 어디론가 떠나는 인물들의 모험기를 반복해 다루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까.

영화와 나의 연결성이 거기에서 온다. 사실 영화에서 나의 일상을 보여주진 않지 않나. 혼자서 집에 있는 일상을 아주 흥미로운 영화로 만든다? 누군가에겐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감독이 아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벗어남(departure)이 있어야 한다. 아주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가 그랬듯 말이다. 나의 영화는 여행, 모험을 떠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떨어져 있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모여 영화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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