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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걱정이 많아 잔소리가 늘었다, 의미가 재미를 압도할 때, <베테랑2>
송경원 2024-10-03

<베테랑2>는 범작이다. 사실 굳이 말을 보태고 싶을 않을 정도로 무난하다. 하지만 그 앞에 류승완 감독의 이름표가 붙었을 때 각자 다른 기대치를 기준으로 실망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테랑2>를 재밌게 봤다. 그렇다고 상찬할 생각은 없지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중엔 과하거나 악의적인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 글은 <베테랑2>를 위한 변명에 가깝다. 아쉬움을 지적하더라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단 생각에 왜 재미가 덜했는지를 생각해봤다.

일단 뭘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사족 같은 엔딩을 보면서 더 확실해졌다. 간도 못 맞춘 라면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사과하려 쭈뼛거리는 서도철(황정민)의 마지막 모습에는 아빠 되기, 어른 되기, 사람 되기의 애환이 묻어난다. 처음부터 이 장면, 소시민 가장의 짠한 부피 확보가 영화의 목적지였다. 그럴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은 장르를 장르로, 오락을 오락으로, 액션을 액션으로만 소진시키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연출자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 연작이 ‘나쁜 놈 잡는 소시민 형사가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는 속 시원한 이야기’로 축약되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영화가 꾸준히 집착하는 건 생의 남루함이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가족, 선의, 인간성을 부여잡는 태도. 세상에 얻어터져가면서도 끝끝내 버티는 이들에 대한 애잔한 지지가 류승완 영화의 밑바닥에 흐른다. 한마디로 그는 <범죄도시>를 만들 수 없다. 그만큼 뻔뻔하지 않거나 혹은 너무 많이 아는데 심지어 걱정도 많다. 그 결과 친절과 간섭, 우려와 배려를 넘나들던 영화가 이번엔 지나치게 숙성된 탓에 본래의 맛마저 잃어버렸다.

의도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경우

<베테랑2>는 <베테랑>의 흥행에 대한 걱정과 반성, 반작용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범죄도시>는 마석도(마동석)라는 (속세의 자잘한 범법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초월자를 허용했지만 ‘인간’을 우선순위에 두는 류승완 감독은 흠결 많은 서도철에게 대중이 일방적 통쾌함을 느끼고 응징의 카타르시스를 소비한 것이 못내 신경 쓰였나보다. 하여 서도철에게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난제를 부여하고 자신의 독단과 이분법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방향에는 동의한다. <베테랑2>는 현실의 주름과 복잡성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쁜 놈은 잡고 죄 지으면 벌 받는’다는 서도철의 직업윤리는 명쾌하지만 현실에선 한 사람에게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어 충돌하기 마련이다. <베테랑2>는 일과 인간, 역할과 개인을 분리하지 않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다. 그 단적인 결과물이 마지막 엔딩에서 보여준 가족으로서의 서도철 에피소드다.

문제는 엔딩의 내용이 아니라 방식과 타이밍에 있다. 이 마지막 에필로그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구태여 듣고 싶진 않은, 마치 잔소리처럼 피곤하다. 박선우(정해인)와의 대결로 차곡차곡 갈등과 긴장을 쌓아가던 영화는 터널에서의 결투를 피날레로 장식한다. 온몸의 힘을 다 쏟아내고 벽에 기대 주저앉는 서도철의 이미지는 <베테랑> 시리즈를 상징하는 압축적인 이미지라 해도 무방하다. 때리는 쾌감보다 맞는 아픔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류승완 감독의 액션의 끝자락에는 해결의 후련함보다 업무 수행의 피곤함이 남는다. 하지만 동료 형사들이 한 프레임 안에 함께 주저앉는 건 (마치 <저스티스 리그>에서 히어로들을 한 프레임에 잡아주는 것처럼) 장면을 위한 장면 같아 낯간지럽다. 왜 지쳤는지 알 수 없는 동료 형사들이 곁에 다가와 나란히 앉는 건 기능으로서의 특정 장면을 전시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가깝다. <베테랑2> 속 인물들이 벌이는 행위의 이유는 텍스트 내부에 있지 않거나, 혹여 있더라도 매우 느슨하다. 터널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팀워크이니까 이에 부합하는 장면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 필연성, 개연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형사들이 다가와 앉는 행위가 사족처럼 느껴질 때 감독이 생각했던 중요한 요소, 주제들마저 군더더기 혹은 잔소리처럼 다가오기 시작한다. <베테랑2>는 어둠의 자경단 해치와 폭력에 둔감한 형사 서도철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깊이와 동력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내내 목적과 수단이 겉돈다. 인물의 깊이와 주제의 부피를 만들고 싶은 감독의 욕망은 십분 이해한다. 다만 이를 수행하는 메커니즘은 1편처럼 스포츠 경기 관람의 액션 대결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번에도, 아니 이번에는 전작보다 액션의 구성이 더 다채롭다. 오프닝 도박판의 코믹한 세팅부터 남산타워의 애크러배틱한 추격전, 빗속 옥상에서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마약굴의 지저분한 격투, 터널에서의 일대일 대결까지 액션의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아쉬운 건 액션 그 자체가 인물의 서사로 기능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의 사연은 그저 사족처럼 제시되고 주제는 설명된다.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 혹은 녹아들지 않는 병렬 배치라고 해도 좋겠다. 죽어 마땅해 보이는 희생자를 두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사람 죽이는 데 좋은 살인, 나쁜 살인이 따로 있어?”라는 서도철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편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판 뒤집혔다”라는 밀착형 대사와 달리 서도철의 과정 없는 깨달음은 서사의 필요와 기능을 위한 급발진 가이드라인처럼 들린다.

류승완 감독은 폭력(액션)이란 수단과 사회정의라는 목적 사이의 괴리가 인물의 고뇌와 내적인 드라마로 구축되길 바랐던 것 같다. 영화는 얼핏 폭력이란 행위의 정당성과 허용 가능한 범주에 대해 꽤 진지한 고찰을 시도하는 듯 보인다. 요소들은 나름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어쩐지 류승완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의 고민을 느끼고 동참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액션과 볼거리는 보여줘야 하고, 상황은 전개되어야 하다 보니 주제와 질문이 그저 기능으로 배치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요소들이 겉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터널에서 박선우가 급하게 세팅한 양자택일 선택의 딜레마가 <다크 나이트>의 열화판 내지 조악한 강박처럼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의 지혜가 담긴 격언과 잔소리는 한끗 차이인 셈이다.

잘못 설정된 매력의 초점

또 하나의 문제는 응징의 카타르시스를 과감히 피해가는 사이 시리즈를 이끌고 갈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서도철은 이야기가 너무 많고, 박선우는 사연이 너무 없다. 서도철의 이야기가 불필요한 잔소리처럼 겉도는 데 반해 박선우의 비어 있음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선우는 구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개념이나 현상에 가깝다. 영화는 그에게 사연과 변명을 만들어주는 대신 사적제재와 폭력의 사유화가 낳은 부작용이라는 철저한 기능으로 지정한다. 박선우라는 현상,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수단과 폭력의 남용에 대해 서도철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뇌하도록 만든 장치라고 해도 좋겠다. 어쩌면 박선우의 부피를 지우고 사연을 비워두는 게 서도철의 깊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선택은 박선우를 한층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응징의 카타르시스로부터 분리된 서도철은 인간적이라기보다는 뜬금없다. 그 자리에 서도철은 없고 감독의 근심 어린 목소리만 남는다. 반면 철저히 기능으로 존재해야 했던 박선우는 <베테랑2>의 과도한 잔소리와 대비되며 의외의 생기를 얻는다. 다들 이야기의 필요에 따라 주어진 기능을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기능적인 캐릭터였기에 거꾸로 밀착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해야 할까. 해야 할 일이 많은 <베테랑2>와 서도철은 조급해 보인다. 서도철이 할 수 있는 것과 영화가 그에게 시키고 싶은 것이 계속 엇갈리는 사이 (의도와 정반대로) 캐릭터의 부피가 점점 더 얇아져 급기야 상대적으로 박선우가 두꺼워 보이는 착시마저 인다. 때론 영화가 입을 닫고 캐릭터가 침묵할 때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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