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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고통과 피로의 짠맛, 세상의 심연을 액션으로 승화시킬 때, <베테랑2>

<베테랑2>는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라는 영화계의 통념에 도전하는 대신 1편과는 다른 속편을 지향하면서 1편의 명랑함과 쾌활함을 골간만 남겨놓고 어둠의 심연을 겨누는 누아르 패턴을 공들여 꾸미는 가운데 1편에서처럼 절대악을 응징하는 쾌감보다는 모두 절대악을 상대한다는 기만적인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 내부의 악은 없는 것인가라는 나름의 비판적 칼날을 벼른다. 영화 따위가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 한다거나 우리의 무결한 정의감을 시험한다고 여기는 이 영화의 비판자들은 불쾌감을 느낄 것이지만 액션영화 키드로 경력을 시작한 감독 류승완이 이제 어른의 근심으로 액션 코미디 장르에 멋진 주름을 새겨놓았다고 하는 나같은 평자도 있을 것이다.

활극 코미디를 가장한 고통과 피로

이 영화에는 숱한 군중 신이 나오는데 일체감의 착각 속에 상호 감시에 빠져드는 혼란과 몰입감을 동시에 준다. 일례로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죄의 크기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마치고 귀가하는 상황을 경찰의 호위 속에 수많은 대중이 몰려들어 지켜보며 그 아수라장을 생중계하는 유튜버들의 경쟁을 보여주는 영화 초반의 장면은 자신들의 무결한 정의감을 과시하려는 대중의 욕망이 관음증의 소산이자 나아가 관음증을 소재로 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시장터라는 걸 우리 눈앞에 날것 그대로 전시하는데 그 뻔뻔스러운 외설성에 카메라가 함께 빠져드는 게 아니라 빠져나와 힘겹게 관찰하려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스펙터클을 전시하면서 그걸 즐기는 게 아니라 묘하게 거리감을 두며 관객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연출 접근은 활극의 쾌감 이면에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불안감을 누적시킨다. 남산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범 용의자를 둔 난장의 추격전은 서도철(황정민)을 비롯한 경찰의 동선과 유튜버들의 시점 안배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추락의 공포를 안겨주는 계단의 질감 때문에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동작들로 이뤄져 있어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고통의 감각을 수반한다. 그 와중에 신이 나서 생중계하는 유튜버들의 화면까지 끼어들어 잘 정돈된 액션 연출이 주는 도파민뿐만 아니라 폭력의 관음증에 대한 역겨움까지 동시에 생겨난다.

도입부에서 이미 예시된 이 영화의 누아르 시각 패턴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며 암흑의 심연으로 향하는 것 같은 음울한 기운마저 풍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중반의 아편굴 시퀀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점액질의 끈적끈적한 지옥도인데 이어지는 옥상의 수중 액션 시퀀스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의식한 듯한 시네필 감독의 존경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슬픔과 상실의 인상을 남겨주었던 이명세의 액션 지향과는 달리 점과 면과 선의 형체가 흐려지는 미적 쾌감 속에서도 폭력을 주고받는 인물들의 고통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고통은 등장인물의 내적 동기에 우리를 끌어들여 동일화하는 작용보다는 그 고통을 거리를 둔 채 감정이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으로 인해 더 배가된다. 고통의 전시를 활극의 박진감을 거쳐 바라봐야 하는 무력한 상황은 대단원의 액션 장면에서 무한 증폭되는데 실로 이쯤 되면 이 영화, <베테랑2>의 심리적 주제가 활극 코미디를 가장한 고통과 피로가 아닐까 실감나는 것이다.

서도철과 상대 빌런이 펼치는 대단원의 액션 장면은 ‘판 뒤집어졌다’는 시그니처 대사가 전해주는 짤막한 희열 다음에는 그야말로 고통, 또 고통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몸동작의 연속이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이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도철 형사가 절대 악인에게 통쾌한 정의의 응징을 가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줬다면 2편에선 그동안 줄기차게 따라붙었던 유튜버의 카메라도, 대중의 시선도 없는 상태에서 고독하게 서도철 형사 혼자 악인을 상대해야 하는 힘겨운 사투로 점철된다. 물론 서도철은 승리할 것이지만 응징의 쾌감 대신 피로감만 남는다. 1편에서와 달리 2편의 서도철은 응원하는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홀로 고독하다. 그는 정의의 편에서라면 사법 영역의 바깥에서라도 사적 린치는 정당하다는 대중의 염원을 저버린 채 때론 그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법체제의 마지막 보루로서 ‘그래도 살인은 나쁜 거 아니냐’는 질문을 악인에게 던지며 사적제재를 차단하는 보호자로서 힘겹게 싸운다. 그 싸움이 스크린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다수의 환영을 받지 못하리라는 걸 웅변하듯이 우리의 주인공 서도철은 “아유, 힘들어 죽겠네”라고 징징거리며 힘겨운 대결을 마치고 어두운 터널 벽에 주저앉는데 그의 곁에는 동료들이 역시 징징거리는 표정을 하며 하나둘씩 앉는다.

정색을 했다가 유머로 풀어내는 감독 류승완의 지그재그 스타일은 코미디 활극과 비극적 파토스에 침잠하는 누아르 액션을 오가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그의 연출 본성을 웅변한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1편에서 그랬듯이 화면의 어트랙션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코미디 활극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세상을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비관주의자의 면모를 감춘 그는 이번 영화 <베테랑2>에서처럼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비극적 면모에 이끌린다. 인물들간의 정감 있는 생활밀착형 대사와 감정으로 서민극 장르에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 그의 수수한 삶의 철학은 때로 터무니없이 냉정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극으로 인생의 다른 면모를 들춰낸다. 정해인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은 그런 면에서 하드보일드 악당의 진면목이다. 늘 별다른 표정이 없고 상당수 장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속을 알 수 없는 악의 깊이를 내장하고 있는 듯한 그의 육체는 정나미가 떨어질 만큼 강력하고 잔인한 악의 매끈한 표면을 드러내는데, 이 배우의 이런 잠재력 폭발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반성의 라면

영화의 말미에 새벽에 귀가해 홀로 라면을 끓여 먹던 서도철 형사는 선잠을 깨 화장실에 다녀오던 아들에게 라면 한 젓가락을 권하다가 짜다고 타박을 듣고 곧이어 덩달아 잠에서 깬 아내에게서도 라면을 한입 빼앗기곤 역시 짜다고 타박을 듣는다. 이 장면은 절묘하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는 식의 상투적인 세상관을 아이에게 강요했던 서도철의 자기반성이 조용하게 이뤄지는 동시에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고 서도철은 아들에게 사과한다) 아들과 아내에게 동시에 ‘맛이 짜다’고 타박을 듣는, 물을 적게 넣은 서도철의 라면 끓이는 솜씨에서 대중활극 영화를 만드는 류승완 본인의 처지를 의도치 않게 암시하는 스크린 바깥의 메타포를 유머로 승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도철 본인이 라면 한 젓가락을 뜨며 역시 짜다는 시늉을 하는 슬랩스틱코미디를 통해 희극과 비극을 한번에 아우르는 조화로운 순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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