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영화 못지않게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올해의 배우상,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서울독립영화제에서 2관왕(장편경쟁 최우수작품상, 독립스타상)을 차지한 <해야 할 일>은 영화제 상영을 위한 전국 순회에서 멈춰 서지 않고 한국 각지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개봉 전 일일이 찾으며 전국 순회상영을 가졌다. <해야 할 일>은 다수의 독립영화의 개발 지원과 제작을 도맡아온 명필름랩을 통해 탄생한 작품인 동시에, 9월 말미에 다른 독립영화들과 함께 개봉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명필름의 심재명, 이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영화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정리해 전한다.
<해야 할 일>과 전국 순회상영
<해야 할 일>은 8월24일 부산을 시작으로 9월 29일까지 창원, 대구, 안동, 광주, 전주, 대전, 인천, 파주, 강릉 등에 위치한 전국 11개 지역 20개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서 전국 순회상영을 가졌다.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는 이 기획이 “독립예술영화의 상영 환경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들이 이룩한 영화적 성취에 비해 상영 환경, 배급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시장점유율이 낮을 수밖에 없”고(심재명) “전국 예술영화관이 처한 현실이 독립영화의 현 상황 못지않게 척박하다면, 앞으로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해야 할 일>의 제작진, 출연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 실태를 마주하고 서로에게 응원을 보낼 필요성이 있”(이은)다는 것이 이유다.
<해야 할 일>팀은 전국 순회상영을 시작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배급 현실이 처한 위기를 경각하는 데 힘쓴다. 심재명 대표는 “2024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610개 극장이 있고, 3450개 스크린을 보유 중이다. 그런데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스크린 수는 64개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영화계와 비근한 산업 규모를 지닌 프랑스는 6300개의 스크린 중 약 2400개가 독립예술전용관이다”라고 지적하며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도 영화관이 없다. 우리나라 영화산업 내에서 독립예술영화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화관 수를 늘리는 게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이미 존재하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시설 개선 또한 절실하다. 이은 대표와 박홍준 감독은 모두 “극장의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영사 상태, 사운드, 극장 단차 등이 멀티플렉스에 비해 현저히 열악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독립예술영화를 틀 수 있는 상영관도 적은데 지자체나 정부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팀은 전국 순회상영을 통해 희망을 봤다. 박홍준 감독은 전국 순회상영을 통해 “지역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지역영화 공동체의 중추까지 도맡”는 현상을 목도했고, “상영관을 중심으로 영화 모임, 영화 수업 등이 자체적으로 열리고 영화의 현재에 관한 담론이 재생산되”는 등 지역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고투 중인 상황을 마주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고 전한다. 이은 대표 역시 “순회상영을 한다고 하여 많은 관객과 함께한 것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한 상영이었지만,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이 영화를 본 후 영화를 향한 진정성과 애정을 많이 표현하고 돌아갔다. 관객과의 대화 도중 벌어지는 진지한 토론을 볼 때면 그래도 영화의 미래에 걸어볼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는 소감을 들려주었다.
지금 한국 독립영화는, 지금 명필름랩은
<씨네21>이 3주에 걸쳐 주목할 만한 한국의 독립영화 세편을 연속으로 집중 조명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세 작품의 완성도가 고루 준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지점은 세 작품의 개봉 시기에 있다. <딸에 대하여> <장손> <해야 할 일>은 1주 혹은 2주를 간격으로 연속해 개봉했다. 배급 규모, 주요 수요 관객 등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독립영화 시장에서 영화 세편이 우후죽순 공개되는 건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독립예술영화는 개봉 단계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개봉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다음 지원 사업까지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영진위의 개봉지원 여부에 따라 개봉 일정이 정해지는 운명이다. <그녀에게>를 포함해 연속으로 개봉한 독립영화 4편은 지난 개봉지원 사업에서 선정된 영화다. 선정 이후엔 올해 내로 무조건 개봉을 해야 하니 일정이 겹쳤고, 예술영화 의무상영비율을 하반기에 채워야 하는 일정이 맞물리며 한 시기에 몰리면서 모두 개봉하게 된 것이다.”(심재명) 이런 상황은 영진위가 배정받은 지원 산업 예산 전반의 감액과도 관련이 있다. 2024년 영진위 예산안에 따르면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지원금과 개봉지원금이 대폭 삭감됐고,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은 폐지됐다. “예년엔 개봉지원 사업이 연 2회 이루어졌는데 올해는 한번으로 횟수가 줄었다. 여기에 예산 삭감, 폐지 문제까지 얽히며 독립예술영화 시장은 경색될 수밖에 없다.”(심재명)
한편 <해야 할 일>의 산실인 명필름랩은 명필름문화재단에서 신진 영화인을 육성하기 위하여 2015년 2월 파주에서 시작한 영화제작 시스템이다.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1기), 이주호 감독의 <수퍼 디스코>(1기), 이환 감독의 <박화영>(2기) 등이 명필름랩을 거쳐 개발, 제작됐다. 명필름랩을 운영하는 두 대표는 신인 선발 과정에 특별히 눈여겨보는 요건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소수자 서사여도 <환절기> <박화영> <빛나는 순간>은 레이어가 전혀 다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시나리오에서부터 선명한지, 이야기에 패기와 열정이 있는지 우선 살필 뿐이다.”(심재명) 명필름랩 6기생인 박홍준 감독의 시나리오에서 두 대표가 마주한 강점 또한 위의 답과 상통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개인이 내리는 수많은 선택이 결국 산업구조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부끄러움이 생생한 점이 매력적이었다. 길고 거친 초고였지만 그 속에 구체성과 진실성이 남달랐던 시나리오였다.”(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