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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듀나 스타일 - 키워드로 읽는 듀나의 소설들, 문장들
김소미 2024-08-23

120편에 달하는 소설과 영화비평가로서 남긴 부지런한 궤적들을 아울러 듀나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키워드를 정리해보았다. 듀나 스타일 혹은 듀나의 문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미래 사회 미리보기

그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흩어진 초기 단편들을 모은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그레타 복음>이다. 인문학 연구와 인공지능(AI)이 긴밀하게 얽힌 미래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에 끼치는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이처럼 듀나는 PC통신 이후의 인터넷 중심 사회나 정상성 바깥의 인물들이 겪는 가중된 차별 등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상을 SF의 중심 의제로 일찍이 다뤘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 대한 테마도 1990년대 말부터 건드려왔다. 2024년에 듀나의 초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상상력이 오늘과 정확히 맞닿는 지점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의 연속이다.

#바로 여기, 한국에서

듀나의 SF는 한국어,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익숙한 무대를 SF가 당면한 가장 당연한 세계로 그렸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흥분시킨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지구인들이 외계에서 온 우주선과 조우하기 이전에 2층 버거킹에서 연아가 청수를 차는 사건부터 조망한다. <대리전>에서 장난감 총을 들고 외계인 숙주와 대결하는 화자가 사는 곳은 경기도 부천이다. 특히 <대리전>은 듀나의 작품 세계에서 한국 SF의 현지화(localization)를 말할 때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경희 SF 소설가는 “<대리전>을 통과하면 여러분은 이제 듀나 세계의 중세로 접어들게 된다. 본격적으로 듀나만의 유니크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링커 바이러스

듀나에 빠지면 링커 우주에 접속해야만 한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와 단편집 <제저벨>에 실린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링커 바이러스가 퍼진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작품들을 경유하며 듀나는 세계관 실험을 지속 중이다. 이들 작품에서 감염에 적응해 진화한 생명체들은 우리가 아는 인간의 정의를 두고 외적 조건은 물론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바꾸어간다. SF적 상상력은 들끓지만 듀나의 문장은 영미 장르문학의 전통을 흡수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를 지킨다. 세계관의 설정과 논리를 여러 작품에 걸쳐 쌓고 설득시킨다는 점에서 링커 우주는 듀나의 정점이자 정수라 할 만하다.

#영화비평가의 소설

소설가 이전에 영화비평가 듀나를 먼저 접하고 그의 비평가 정체성이 더 익숙한 사람이라면 소설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에 수록된 <누가 춘배를 죽였지?>로 시작해도 좋겠다. SF가 아닌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듀나의 체질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80년대에 배우로 활동하다 영화계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주인공이 부친상을 당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어느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면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거대한 트릭 속에 휘말리게 된다. 표제작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도 흥미롭다. 한국의 시대극 촬영장에 출장 온 룩셈부르크 출신의 배우가 쓰는 일기를 따라가는 이 소설은 낯선 언어 속에 놓인 화자가 동료 배우의 자살 후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하는 과정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오마주한 구조, 배우 송강호최민식에 대한 언급 등 영화계에 친숙한 듀나의 관심과 배경지식을 엿볼 수 있다.

비평하는 듀나의 두 가지 매력

#예사로운 말투, 계보 있는 분석

부지런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평자인 듀나는 가볍게 줄거리를 스케치하는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해 한편의 영화를 굴러가게 하는 전제의 타당성, 설정의 장르적 기원, 캐릭터와 배우의 연기, 산업적 맥락 등을 차근차근 찔러나간다. 특히 미국 영화와 문학, 할리우드의 계보 안에서 영화 콘텍스트를 비교할 때 듀나의 강점은 빛난다. 그가 쓴 영화 클리셰 사전(<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과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를 함께 펼쳐보고 싶은 이유다. <듄: 파트2> 개봉 당시 <씨네21>에 쓴 글 ‘수상할 정도로 금욕적인 사람들, 린치 영화엔 있고 빌뇌브 영화엔 없는 것’은 듀나 스타일의 리뷰를 잘 보여준다. “<>은 여전히 히피물을 좀 먹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감명 깊게 본 미국 백인 남자의 책으로, 인종차별, 성차별, 문화적 전유와 같은 문제점이 노골적이다. 심지어 책은 이를 비판하려고 노력하는 지점에서도 한계를 노출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린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니까. (…) 아무리 빌뇌브가 허버트의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허버트의 비전을 넘어서려고 해도, 이것이 가짜 아랍 세계에 들어와 메시아 놀이를 하는 백인 남자애의 이야기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사캐즘

냉소적인 유머는 듀나의 글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개봉 당시 그가 <씨네21>에 쓴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노출된 장르적 단점들’엔 작품의 치명적 단점보다 더욱 뾰족한 그의 유머가 깃들어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계속 이어진다. 분명 엄청난 돈과 수년의 연구가 들어갔을 프로젝트인데, 선장은 몇년 더 동면하기 싫다고 미지의 행성에 멋대로 착륙한다. 그리고 밖에 미지의 생명체들이 있을 게 뻔한데도 탐험가들은 우주복을 입지 않고 맨몸으로 우주선 밖으로 나간다. 전편인 <프로메테우스>(2012)에서도 저랬는데, 도대체 저 인간들은 배운 게 없다. 프로메테우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구에서 어떻게 아느냐는 말을 하지 마시길. 애당초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니지 않은가? 과학을 넘어서 생각해도 커버넌트호의 승무원들은 어떻게 최초의 외계식민단 멤버로 뽑혔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지능이 낮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남자, 여자 모두에게 공평해서 초반 몇 장면에서 여성혐오의 가능성을 의심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듀나의 장르론: 듀나가 남긴 SF·장르영화에 관한 훌륭한 통찰들

“장르는 하나의 국가이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와 같은 쾌락주의인 영화광의 정신은 대부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장르의 국가들이 벌집처럼 촘촘히 모여 있는 지도의 모양을 취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이야기의 여정은 드물게 한 국가에 머물기도 하지만 대부분 하나 이상의 국경을 가로지른다. 종종 그 여정은 엉뚱한 결합으로 끝나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림슨 피크>, 국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여정, <씨네21>)

“지금도 사랑받는 장르 고전은 그 특정한 시기에 그 작품만이 가능했던 특별한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현대의 작품은 고전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관점과 주제로 시작해야 의미를 가진다. 그게 고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정이> 너무 오래된 퍼즐, <씨네21>)

“우린 우리의 마음을 우주에 투영한다. SF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SF는 미지에 대한 갈망과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함에 대한 추구로 구성된 장르이기도 하다. 아무리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로 나간다고 해도 백인 남자의 에고와 그 에고가 춤추는 좁은 놀이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SF 장르에 무슨 존재가치가 있을까.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숨이 막힌다.”

(SF 장르로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시리즈가 지닌 보수성,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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