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단요 작가의 세계를 접한 이들에게 <수능 해킹>은 이례적인 선택처럼 여겨질 것이다.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이하 <수능 해킹)>을 통해 단요 작가는 문호진 공저자와 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한국 교육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다각도로 고발한다. ‘단요’라는 필명이 보드게임 용어에서 따왔다는 것 외에 작가 개인에 관해 밝혀진 정보는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러나 <수능 해킹>을 계기로 그가 SF 장르 외연으로 집필 범위를 넓혀갈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 주말마다 영화감상회를 운영한다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주로 어떤 영화를 보는지 궁금하다.
= 영화감상회는 비정기적으로 운영된다. 내가 줌으로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면 시간 맞는 사람들이 와서 화면 공유로 같이 영화를 관람한다. 최근작보다는 2000년대 이전의 명작 대중영화나 B급 컬트영화 위주로 본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존 카펜터 감독의 <뉴욕 탈출>(1981)이고, 그 밖에 <마>(The Boxer’s Omen, 1983), <네트워크>(1976), <아귀레, 신의 분노>(1972), <에쿠스>(1977),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 등을 봤다. 예술영화도 누가 틀면 보긴 하지만 그때마다 종종 자는 사람들이 나온다. (웃음)
- 지난 6월 <수능 해킹>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전에 발표한 소설들과 완전히 결이 다른 르포인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2022년에 대중 앞에 선 뒤로 내가 이상한 커리어를 밟아오고 있긴 하다. (웃음) 기본적으로 집안에 교육자들이 있고, 때문에 사교육 및 교육 출판과도 친숙했다. 부업으로 국어 사설모의고사 비문학 영역을 출제한 경험도 있다. 그러다 공저자와 공통 지인인 손명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교육 업계에 문제가 많다는 걸 느끼고 취재 중인 문호진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국어 파트 관련해서도 이야기해줄 사람을 찾고 계시다고. 그렇게 만나뵀는데 “지금 수능 문제 유형의 고착이 너무 극심하니 대안적인 문제 유형 개발을 해보자”고 하시더라. 그 얘기를 듣고 이걸 사회 이슈로 끌어올리자고 다시 제안을 드렸다. 그래야 교육계 사람들을 포함한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힘을 보텔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는 르포 기사로도 많이 다뤄지지만 기사는 휘발성이 짙어 책으로 출판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 타깃 독자층도 정해져 있었나.= 우선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나 자식들의 입시를 신경 쓰는 4050은 관심을 가질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수능을 친 2030에게는 수능이 더이상 신경 쓰이는 주제가 아니다. 말하자면 외연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했다. 해서 진보 교육에 진절머리내는 사람들부터 교육에서 경쟁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모두를 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독자를 후킹할 수 있도록 5~10년 사이에 수능이 얼마나 변화했는가에 관한 내용을 책의 1부에 넣었고, 반드시 다뤄야 하는 사회 고발성 르포는 2~5부에서 이어지도록 했다.
- 문호진 공저자와는 어떻게 분업이 이루어졌나.= 문호진 선생님이 주요한 문제의식을 정립하면 내가 거기에 디테일을 채워넣고 책이라는 물성을 가진 구조로 변환하는 작업을 했다. 인터뷰 발췌에서 ‘단요’가 표기된 부분은 내가 취재했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취재는 문호진 선생님이 진행했다. 선생님이 1~2시간 분량의 긴 인터뷰를 보내오면 그걸 읽고 정리해 어느 부분에 넣을지 의논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어졌다.
- <수능 해킹>의 5장에서 후속 보도에 관해 언급하며 끝난다. 후속권이 나올 여지가 있을까.
=하(下)권은 반드시 나올 예정이다. 공교육 문제에 관한 소스가 이미 꽤 준비되어 있는 상태다. <수능 해킹>의 5부에서 다 다룰 수가 없어 우선 엑기스만 담고, 나머지는 추가 취재를 통해 하권에서 다루기로 했다.
- <수능 해킹>을 출간한 뒤 작가로서 변화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나.
= 글을 쓰는 혈이 뚫렸다고 할까. 이미 완성된 글 중간에 문장을 추가해야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럴 경우 글의 밸런스가 깨지지 않도록 앞뒤 문단을 뜯어고쳐야 한다. 그에 관한 고민을 여러 차원에서 극한까지 끌어올려 진행했다. 그리고 오해 혹은 반박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글 안에 다양한 장치를 넣었다. 몇달간 이 작업을 거치고 나니 앞으로 훨씬 다양하고 더 구조화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와 같은 소설에서도 글을 세심하게 구조화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필자라고 느꼈다.
= 그렇다. 그래서 <수능 해킹> 이전엔 르포를 써본 적이 없지만 내가 잘 쓸 수 있다고 판단해 제안한 거였다. 기본적으로 소설도 뼈대를 확실히 마련해두고 쓰는 편이다. 다만 이번엔 디테일을 더 세심하게 가하는 수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소설을 쓸 때는 어디까지 설정을 정리해두는 편인가. 혹은 글을 쓰는 와중이나 퇴고할 때 수정을 많이 가하는 편인가.
=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정해두진 않는다. 그 이유는 어느 정도 틀을 짜놓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중간부터 인물들이 자기 목소리를 얻어 달려나가기 때문이다. 글에는 언제나 작가의 의식 이상이 깃든다. 140%의 글을 쓰려면 그렇게 인물들이 스스로 달려나가게 해야 한다. 만약 작가가 모든 걸 통제한 글이라면 그건 100%의 글이 아니다. 그래서 중층적으로 설정을 넣고 가되 이 중층적인 설정이 맞부딪치면서 갑자기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의 설계사>는 그런 상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한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도화가 사실 무척 이상한 인물이지 않나. 처음엔 피해자의 위치에 두고 출발했지만 어쩌다보니 설정에 변화가 생겨 지금의 도화가 됐다. 그래도 개인적으론 애정이 많이 가는 인물이다.
- <수능 해킹>과 같은 달에 <SF 보다 Vol. 3 빛>의 수록작으로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를 발표했다. SF 장르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
= 일단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내가 SF의 오랜 독자로서 SF의 주요 방법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해나가는 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그럼으로써 그 자체로 다층적인 질문을 내포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접근은 소설적 가능성을 여러 방면으로 열어준다. 핀천이나 버로스, 이탈로 칼비노, J. G. 밸러드 등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다 보니 리얼리즘 중심적 사고를 거의 하지 않기도 하고. 달리 말하면 SF는 내게 다양한 문학적 속성 중 하나고, SF와 관계 맺는 속성들을 잘 활용할 경우 흥미로운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주 쓴다. 두 번째로 현대의 기술문명과 금융-산업-정치 시스템간의 운동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여기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결과물은 대개 SF의 뉘앙스를 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 중에서는 <개의 설계사>와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그리고 <마녀가 되는 주문>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반드시 SF만 쓰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 공대에 입학한 뒤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됐나.= 청소년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는 다소 오만한 태도로 살았다.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일을 외주받아 해왔는데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고 나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지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자유분방해 일반 기업에서 일하기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다만 나는 따로 글쓰기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과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았고 그렇게 쓴 첫 소설이 <다이브>다. <다이브>를 발표한 뒤 내가 느낀 건 사람들이 권위, 명예와 같은 상징 자본을 굉장히 신경 쓴다는 점이었다. 당시 기점으로 아직 문학상을 받지 못한 내가 무엇으로 데뷔했는지 이런 정보를 일반 독자들도 궁금해하는 걸 보고 생각보다 크레딧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당시 편집자님께 “내가 약력이 너무 없으니 문학상을 조만간 받아오겠다”고 말씀드리고 2023년에 상을 받아왔다(단요 작가는 2023년에 문윤성SF문학상,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편집자).
-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청소년 소설을 집필하거나 <수능 해킹>에 참여한 것을 보고 10대, 혹은 그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필자라고 느꼈다.
= 개별 인격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들이 미래 세대고 같이 살아가야 할 사회 일원이라는 점에선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현 상황처럼 미래 세대들에게 이 사회를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고, 사회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지금의 한국은 불신론, 회의감, 무력감 같은 것들이 강하게 포진해 있지만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바꾸지 못할 부분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적인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가교를 놓는 역할을 좀더 하고 싶고, 그래서 <수능 해킹> 공저자인 문호진 선생님이 앞으로도 자신의 뜻을 잘 펼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능 해킹> 작업이 계속 잘된다면 사회의 여러 면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절대 믿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내가 쓴 글로 인해 일부 독자들이 위안을 얻고, 그분들이 서로 동질감을 느끼는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글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글이 정말 힘이 있는 포맷임을 느꼈다.
- 그때 이후로 소설을 계속 써나가야겠다는 동력을 얻었나.
= 그렇다. 정확히는 내 글을 읽고 좋아해주고 또 믿어주는 독자들이 큰 에너지가 된다. 아주 예전에 내가 소설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기 이전부터 나를 응원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글과 관련 없는 의대, 공대, 물리학과 출신들임에도 내 글이 좋다고 계속 써보라고 확신을 줬다. 그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 윤리학, 정치, 경제, 철학 등 관심사가 굉장히 다양하다. 현재까지는 SF 소설가로 익숙했지만 을 계기로 더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해본다.
= 앞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 쓰고 싶은 책은 정말 많다. 우선 올해는 장편 두 작품과 단편 한 작품이 출간될 예정이고 내년에는 아마 5권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권 작업도 진행할 것이고. 그 밖에 SF 장르와 현대 스릴러, 또 관념 소설도 쓰고 싶은 것들이 있다. 비평에도 관심이 많은데 현재로선 웹소설을 다뤄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웹소설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수백만 자 분량의 글을 쓰고 그만큼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인물을 구성하는 능력, 문장력이 굉장히 좋다. 하지만 웹소설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한번 제대로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다.
“모든 개혁은 내적 모순과 불가피한 임시성을 지니는 만큼 성실한 관리 감독과 엄밀한 후속 조치를 요하게 됩니다.”(<수능 해킹>, 277쪽)
글 외에 내게 영감을 주는 존재.“갈등하는 인간 자체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겪은 곤란한 일에 내가 휘말리거나 그 갈등을 내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각자의 입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또 이 갈등에 어떤 요소가 깔려 있는지에 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은 갈등을 추동하는 요인들(정동, 기술, 제도 등의 결합물)이 상호작용하는 방식, 복잡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소설이 시작된다.”
나의 첫 번째 소설, 마지막(최근의) 소설“최근 재밌게 읽은 소설은 아이 작가의 <도망자>다. 치기 어린 느낌도 강하지만 그만큼 원초적인 에너지가 도사린 글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소설을 꼽자면 루쉰의 단편집 <방황>에 수록된 <고독자>를 특히 좋아했다. 웨이롄수가 고독한 투사였다가 떠받들어지는 선생이 되어감에 따라, 그리고 다시 죽음을 맞이함에 따라 발생하는 환멸과 애상이 잘 드러난 단편이다. 장편으로는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좋아하는데 서술 기법과 시간에 대한 사유, 그리고 문장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마치 수수께끼 퍼즐을 푸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준다. 둘 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계속 읽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