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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특집] 누구에게나 다양한 교차성이 존재한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감독
임수연 2024-06-01

올해 심사위원대상은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에 돌아갔다. 샤지 카룬 감독의 <스와함> 이후 30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인도영화가 거둔 쾌거다. 칸영화제가 그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것은 다큐멘터리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TV 배우이자 우파 정치인을 대학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에 반대한 학생 파업을 다룬 <무지의 밤>(A Night of Knowing Nothing)은 2021년 칸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영작 가운데 수여하는 골든아이상을 받았다. 그러니 뭄바이에서 쓸쓸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치장 없이 포착하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태도를 두고 다큐멘터리적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성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는 뭄바이의 두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아누(디브야 프랩하)를 경유해 도시의 쓸쓸한 불빛을 시적으로 담아내며 현대 인도에서 여성이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비추다 3부의 영적인 신비주의로 스며드는 유려한 연출을 보여준다. 단 두편의 영화로 자신의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해내며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차세대 감독의 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한 파얄 카파디아 감독을 만났다.

SHUTTERSTOCK

- 이 영화는 거대한 스카이라이트를 품은 현대적인 도시 뭄바이가 배경이지만 그 안에는 아직 과거에 가까운 이야기가 있다. 왜냐하면 인도에는 아직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고 시골은 우리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곳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했던 핵심 중 하나다. 인도는 모순이 많은 나라다. 특히 뭄바이 같은 도시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세계화되고 있지만 일상의 관계와 가족에 대한 감정은 무척 퇴행적이고 여전히 구식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나 역시 당사자로서 싸우고 있다. 서구 중심의 페미니즘이 지닌 모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서양에서는 재정적으로 독립한 여성은 자율권을 갖고 있다고 간주한다 들었는데 이는 인도를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삶의 선택에 관한 것이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든 가족문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아직 카스트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커플의 종교가 다를 경우 양가 부모의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자율성은 어느 국가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아누는 남자 친구가 있고, 프라바는 떨어져 사는 남편이 있으며, 3부에서 두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파르바티는 남편과 사별했다. 서로 다른 세대, 세 가지 유형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인생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었나.

=그렇다. 영화 초반에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꾸 귀신으로 나타나 짜증나게 만드는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이 든 여성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젊은 여성들이 춤을 춘다. 이렇듯 아시안 여성들이 비슷한 점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는 인도에 국한되어 있는, 아주 인도적이다.

- 이 영화에는 아누의 노출과 섹스 신이 등장한다. 아시아, 특히 인도는 보수적 문화가 무척 강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또한 인도 여성감독이 여성배우의 노골적인 나체를 보여주는 것은 꽤나 대담하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몸을 촬영하는 것은 곧 여성의 신체를 빼앗는 것과 같다는 논의가 있다. 촬영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나.

=관능적이기보다 매우 캐주얼한 장면이다. 섹슈얼리티와 전혀 관련 없는 방식으로 앵글을 잡고 싶었다. 이는 프라바와 아누 두 여성의 관계 와도 관련 있다. 반면 실제 섹스 신에서는 노출이 등장하지 않는다.

- 이 영화가 인도 최초로 여성의 오르가슴을 보여준 작품이 맞나.

=아니다. 인도에는 멋진 여성 필름메이커들이 많다. 내가 최초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그들을 어떻게 발견했나. 함께 일하는 과정은 어땠나.

=다들 예술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배우였기 때문에 이미 그들이 출연한 작품을 알고 있었다. 프라바 역의 카니 쿠스루티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걸스 윌 비 걸스>에 나왔다. 아누 역의 디브야 프랩하는 최근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며 국제영화제에 진출하고 있는 말라얄람 영화 업계에서 활약해왔다. 디브야 프랩하가 나온 <알립니다>는 올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파르바티 역의 차야 카담은 이번 칸영화제에서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과 감독주간 초청작 <시스터 미드나이트>, 두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난 인도의 모든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지금 영화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리허설에 훨씬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에 잘 흡수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모든 신을 한달 전부터 모여서 연습했다. 마치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

- 피아노가 연주되는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편집하는 동안 지난해 작고한 에피오피아 뮤지션 에마호이 체구에마리암 구에브로우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 관객에게 기쁨을 주는, 영화와 서로 연결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곡으로 작업했다.

- 모든 주인공들이 해변으로 향하는 영화의 결말은 아핏차퐁 위라세타꾼의 <친애하는 당신>을 연상시켰지만 남성적 시선(male gaze)에서는 벗어나 있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여성들간의 우정에 관한 영화다. 인도에서는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들의 우정을 방해하고 그 때문에 서로를 안타깝게 여긴다. 때문에 영화에서 가부장제가 끝났을 때 두 여성이 강하게 연대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다가오기를 바랐다.

- 인도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고려할 때 영화에 정치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의도적이었나.

=정치는 권력을 가진 정당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영화 역시 아주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 이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때문에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나는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감응하는 사람이다. <무지의 밤>은 내가 영화학교에 다닐 때 겪은 일을 소재로 했다. 예술가로서 내가 할 일은 주변 세계에 반응하는 것이고, 예술은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올해 경쟁부문에 여성감독의 영화는 단 네편이다. 그중 인도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당신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동안 영향을 받은 영화제작자가 있나.

=인도의 국립영화학교인 인도 영화 텔레비전 학교(Film and Television Institute of India)를 다니며 리트윅 가탁 감독의 작품들을 공부했다. 그의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정치적이었다. 날카롭게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영화적인 언어를 보여준다. 때문에 리트윅 가탁의 엄청난 팬이었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인도영화 하면 발리우드의 뮤지컬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인도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다언어국가인 인도에서 얼마나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고 영화인들이 나오고 있는지 듣고 싶다.

=발리우드가 인도 영화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타밀, 말라얄람 등 각 언어권·지역별로 독자적인 영화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각자의 담론과 영화언어를 갖고 훌륭한 감독들을 탄생시키며 자립적으로 굴러간다. 지난해 오스카 후보에 오른 <숨 쉬는 모든 것>을 포함해 훌륭한 다큐멘터리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다.

- 인간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제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많은 여성감독이 데뷔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마 다스 감독은 혼자 촬영, 연출, 편집을 해내며 영화를 만든다. 그의 삼촌이 붐 오퍼레이터를 맡는 등 아삼주를 기반으로 한 가족 유닛이 모든 제작 공정을 소화한다. 그리고 환상적인 영화를 완성해 영화제에 초청받는다. 하지만 촬영이나 음향은 다른 부문보다 육체적인 일을 요구한다는 편견 때문에 아직 여성영화인들이 자리 잡기는 힘들다. 그리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점차 업계가 바뀌어나가기를 바란다.

- 우리는 지금 칸영화제에 있고, 이곳의 영화산업은 무척 유럽 중심적일 수 있다. 유럽인들이 던지는 질문 중 인도 감독으로서 받아들이기에 진부한 것들이 있다면.

=인도는 여성이 살기에 너무 힘든 곳이 아니냐는 말을 먼저 그리고 많이 듣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뉴스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양에서 인도 사회를 정의하는 단 한 가지 명제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내게 인도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영화감독이 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묻는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존재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다른 계급이나 종교를 가진 남자들보다 특권층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별은 자신이 잘못 대표되거나(misrepresented) 과소대표(underrepresented)되는 데 반드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인도에 많은 복잡성과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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