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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계, 우주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에 대하여 이어받는 방법

1977년, 20세기 폭스사에서는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었고, 로맨스, 섹스, 복수, 전쟁과 같은 재미있고 선정적인 소재들이 버무려진 대작 멜로드라마였다. 흥행에 자신이 있었던 회사에서는 신인감독이 만든 다소 수상쩍은 SF영화를 이 영화와 묶어 패키지로 팔았다. 대작 영화는 시드니 셸던 원작, 찰스 재럿 감독의 <깊은 밤 깊은 곳에>. 수상쩍은 SF영화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였다. 우리나라에서 <깊은 밤 깊은 곳에>는 흥행이 꽤 됐다. 적어도 <스타워즈>보다는 훨씬 잘나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망했고 거의 완벽하게 잊혔다. 지금 이 영화는 <스타워즈>가 어떻게 할리우드를 바꾸었는지, 그 변화가 어떤 희생자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만 기억된다. <스타워즈> 대신 <깊은 밤 깊은 곳에>를 선택한 한국 관객들은 그 신호를 조금 늦게 읽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그 신호는 계속 뒤로 밀린다. 일단 <스타워즈>의 뒤를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이 개봉되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도 개봉이 한참 뒤로 밀렸으며 흥행도 별로였다. 이 세계가 제대로 소개되기 위해서는 비디오 출시와 명절 더빙판 방영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스타워즈> 세계를 이루는 다른 재료들, 그러니까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만화책은 그 뒤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80년대 블록버스터물들이 인기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스타워즈>처럼 연결된 복수의 영화들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분리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드는 작업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스타워즈>의 우주가 지닌 장점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이런 작업이 <스타워즈> 이전엔 없었다고 하지는 않겠다. 일단 <스타워즈>부터가 버스터 크라베가 주연했던 <플래시 고든>이나 <버크 로저스> 같은 30년대 연재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TV는 오래전부터 <스타 트렉>과 <닥터 후> 같은 작품들에 자기만의 유니버스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문학 세계엔 더욱 많았고. 그리고 여러분이 시각효과를 잔뜩 쓴 슈퍼히어로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이 마블 때부터 나왔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프리츠 랑의 <지그프리트> 2부작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예의일 것 같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영화의 세계에서 <스타워즈>의 세계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고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가 당연시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팀 버튼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가 일관된 유니버스를 만드는 것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보라.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영화들 중 전편과 제대로 내용이 이어지는 건 이번에 나온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뿐이다.

지금 <스타워즈>의 우주는 수많은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들 중 가장 소란스러운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겠지만 <스타워즈>도 만만치 않다. 극장용 영화의 수는 마블보다 밀리겠지만 TV시리즈의 에피소드 수를 포함한다면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도 있다. 양쪽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대중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팬들이 점점 유해한 방향으로 썩어가고 있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수 있겠다.

최근 영화 <더 마블스>를 보라.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을 이해하려면 몇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가. 여기 나오는 외계인들의 사연을 이해하려면 또 몇편의 영화를 봐야 하나. 과연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 중 몇명이나 이 설정을 다 이해하고 보았을까? 그렇다고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을 다 챙겨봐야 하나? 도대체 왜?

비슷한 이야기는 최근에 나오는 <스타워즈> 드라마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소카>는 <오비완 케노비>와 달리 영화의 속편도 아니다. 여기서 당연한 듯 나오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애니메이션 시리즈 <클론전쟁>과 <저항군>을 모두 챙겨야 한다. 몰라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이전 시리즈 시청자들이 이번 시리즈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친근감은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타워즈> 세계의 역사와 지리는 점점 복잡해져갔다. ‘하얀 로봇처럼 생긴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 정도의 이해만 갖고 있어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던 순진한 시대는 갔다. 여전히 콘텐츠들이 쌓이고 있는 터라 이 세계의 복잡성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과 관객들 모두 그 안에 갇혀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의 우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스타워즈>의 유니버스가 마블 것보다 훨씬 그럴싸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마블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슈퍼히어로들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이 우주를 이루는 외계인, 고대의 신, 평행우주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이 슈퍼히어로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연이 이 세계는 억지스럽고 인위적이다. 이것들이 독립된 작품들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이후의 작품들에 계속 영향을 준다면 사정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스타워즈>의 세계는 융통성이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

자기만의 이상한 역사와 지리에 갇혀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달리 <스타워즈>의 세계는 훨씬 융통성이 있다. 얼마 전에 시즌2가 나온 <비전스>를 보자. 전혀 연관성이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독립적으로 낸 <스타워즈> 단편들인데, 대부분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행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설정상 <스타워즈>는 하나의 은하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마음껏 새로운 세상과 인물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 제국이나 제다이와 같은 기존의 설정 몇개만 넣어준다면 시청자들은 새로운 지리와 역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엔 또 다른 장점이 있으니 마블 영화들과 달리 <스타워즈>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다들 제다이나 시스 같은 것으로 수렴되지만 언제든 그 틀을 벗어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자유도가 존재한다.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린 작품이 바로 <안도르>다. 이 작품은 제다이로 대표되는 신비주의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정통파 SF처럼 보이고, 안도르 역시 포스와 상관없는 평범한 사람이며 그와 엮이는 주변 사람들도 특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도르>는 여전히 빼어난 <스타워즈>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짜는 것이 허용되는 우주인 것이다.

여기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써먹을 수 있는 몇백 세기의 역사가 존재하는데도 대부분 <스타워즈> 영화나 드라마는 공간적으로는 코러산트와 아우터 림 언저리의 몇몇 행성들에, 시간적으로는 야빈 전투 앞뒤의 짧은 시간 사이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불안해한다. 이는 <애콜라이트>의 트레일러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설명한다. 작정하고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러려면 자칭 팬이라는 사람들의 저항을 통과해야 한다. 이 상황이 과연 변할 구석이 있는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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