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기획] <늑대의 유혹> 이후 배우 이청아의 20년 ③ - 건강하게 살아가기, 연기하기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4-05-17

- 자기다움을 고민하고 지켜온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이청아를 만든 것 같다. 유튜브 채널 <MOCA 이청아>를 보면서 배우 이청아 뿐 아니라 생활인 이청아를 향한 호감과 동경을 표현하는 구독자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정말 그런가! 감사한 한편 왜 좋아해주시는지 나도 궁금하다. (웃음) 유튜브나 SNS 속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일까 생각해보면 결코 아니다. 작품 속 캐릭터가 아닐 때에도 언제나 일종의 공인으로서 소화해야 할 역할이 있다. 물론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사적인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행복하다. 특히 책 읽어드리는 코너는 꼭 하고 싶었다. 즐겁지만 유익함도 있는, 에듀테인먼트적인 채널을 바랐거든. 어떤 식으로든 나를 지켜보고 소비하는 분들에게 유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 일상 브이로그나 데일리 루틴을 담은 콘텐츠에 ‘갓생’, ‘워너비’ 같은 수식도 주어진다.

= 한동안은 유튜브 속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를 관찰하면서 살짝 자책한 적도 있다. 나도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릴 때가 있고 자기 관리에 신경 쓰지 않는 시간도 있는데, 나의 1부터 10까지를 모두 이야기해도 가장 잘 소비되는 것만 쇼츠로 뽑혀서 나가니까. 고등학생 이후로는 몸무게가 40kg대였던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청아가 48kg을 유지하는 법’ 같은 것만 전면에 드러날 때는 근심과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지금은 그 파도가 한차례 지나갔다. 아무리 좋은 수식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 안에 갇히기 마련이다. 아, 체중 이야기를 좀더 보태자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체중보다는 눈보디에, 근육랑에 신경 쓰게 된다. 그 편이 건강하고 보기도 좋다.

- 사실 가장 돋보이는 건 내향형의 인간, 예민한 취향의 소유자로서 이청아의 면모가 잘 담긴 순간들이다.

= 학교 다닐 때 시나리오를 써가면 교수님이 “청아야, 왜 네 시나리오엔 사람이 4명 이상 나오지 않는 거냐”라고 했다. 너무 놀랐다. 왜냐하면 실제로 4명 이상이 모인 자리를 잘 안 가기 때문에. (웃음) 4명이 넘어가면 그때부터 집에 가고 싶다. ‘이쯤이면 내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나는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이었다가 배우 일을 하면서 비로소 사회화가 된 경우다. <늑대의 유혹> 이후 배우 일에 한동안 부담을 크게 느끼던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약간의 대인기피증 증상도 있었던 것 같다. 10대와 20대까지, 나를 상상하게 하고 버티게 만든 많은 힘의 출처는 대부분 책으로부터 나왔다.

- 지금은 자신다움이 타인의 기대와 맞아떨어지는 나이대와 자연스럽게 만난 것 같기도 하다.

= 정말 그렇다. 그리고 30대를 지나면서 배우라는 직업 세계에서 내가 쓰이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좀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됐다. 20대엔 연기에 대한 열의만으로 불태웠다면 지금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계속 열심히 하더라도 어쩌면 죽기 전까지 스스로 원하는 배우의 모습에 가닿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지?’ 비관적인 예측이 아니라 그런 삶에 갈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찬찬히 검토해보게 된다. 많은 배우들이 가진 걱정이 내게도 물론 있다. ‘어느 순간 선택받지 못하는 순간이 됐을 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같은. 삶에 발붙이고 싶은 것, 연기만큼 일상에도 충실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무래도 인간 이청아를 보여드릴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난 영향도 크다. 얼마 전에 예능에 출연했는데, 과거의 이청아는 본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던 느낌이란 얘기를 해주셨다. 내가 안보여주려고 했다기보단 그저 그런 상황이었을 뿐이다. 작품과 캐릭터로만 대중과 만난 시기가 있고,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발달한만큼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

- 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서 베스트셀러인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소개했다. 두 가지에 놀랐다. 북튜버에 최적화된 발성과 목소리,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상세히 회고한 점이다.

= 꼭 진행하고 싶었던 책이다. 출판사에 먼저 허가를 구하기도 했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사적인 경험도 함께 더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갔고 봄이 왔다. 상실을 겪은 분들에게 회복의 시간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 소개는 꼭 4월에 올리고 싶었다.

- 일찍 데뷔해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을 텐데, 이른 이별이 더 아팠을 듯싶다.

=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 엄마의 병은 플랜이 있는 병이었다. 1년 뒤, 5년 뒤의 단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그래서 대비책을 세웠고 어떤 때는 일부러 더 많이 일했다. 1년에 세 작품씩 쉬지 않고 일했던 건 그래서였다. 커리어적인 전략을 짜는 게 필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일일드라마를 연달아 두번씩 하고… 트레이닝한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쉬는 날에는 가족과 보내는 한순간 한순간을 절박하게 만끽했다. 엄마가 떠나기 전까진 극 중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만나는 순간에 놓여도 사실 그 감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엄마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갖는 의미가 달라진 나중에서야 어떤 아픔을 깊이 깨닫게 됐다.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소개할 때도 한 얘기지만, 나는 슬픔이란 아주 맑은 것이라고 믿는다. 어릴 땐 슬픔이 무서워서 일부러 열어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제대로 직면하고 난 이후 스스로가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 그 자각이 연기에도 반영되었을까.

= 연기를 하면서 더더욱 세밀하게 느낀다. 물론 세상에는 분노로 휘감겨 뼈가 저리는 슬픔도 있다. 하지만 그건 화에 가깝다. 그런데 맑은 슬픔은 오히려 회복을 돕는 감정이다. 슬픔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졸음이 온다. 몸이 회복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영화 <다시, 봄>(2018)에서 사고로 딸을 잃은 인물을 연기할 때 온몸으로 느꼈다. 캐릭터가 아이를 잃은 상황에 처해 있는 동안엔 몇달간 위장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내내 신경성 위경련을 달고 살았다. 내 몸이 배우 이청아가 느끼는 감정을 진짜라고 착각한 거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서 아이와의 시간을 다시 살게 된 이후에 깊은 슬픔의 눈물을 흘릴 때는 오히려 기운이 좋아졌다. 배우로서 쓰는 감정들을 일종의 카테고리화해두기도 하는데, 그 경험 이후로 슬픔이란 단어를 위로 올렸다. 슬픔은 나를 좀먹는 게 아니라 재생시키는 거라고.

- 드라마 커리어를 바쁘게 쌓아왔는데, 관객 입장에선 이청아의 영화도 더 많이 보고 싶다. 스크린에서 더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 내 바람도 같다.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는 멜로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그렇게 써주시질 않는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들도 다 멜로드라마가 기반인 작품들이다. <결혼 이야기> <레볼루셔너리 로드> <언페이스풀> <클로저>, 드라마는 <밀회> <인간실격>…

- 모두 감정의 파고와 농도가 짙은 사랑 이야기들이다. (웃음)

= 그리고 <캐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 로맨틱코미디의 엔딩은 언제나 첫 키스여서 과거의 나는 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퇴장해야 했다. 이제는 사랑의 중간 과정에 놓여 있는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

- 이청아의 행보는, 한 사람의 개인적 궤적과 직업적 행보가 상호 영향을 끼치며 양쪽 모두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나.

=음, 그 기대를 배반하면서? (웃음) 배우라는 직업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한 다 함께 나이 들 테니 지켜봐주는 분들에게는 그저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중의 인간으로 비치길 바란다. 혹여나 중간에 갑자기 삐끗할 수도 있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도 있지만 계속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 같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려는 강박 없이 스스로를 너무 대단한 역할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걸어가고 싶다.

-잠시 숨고르기를 할 이청아의 요즘 일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스스로 채찍을 몇번 때리고 당근을 몇번 줘야 정신을 차리는 사람인지, 이를테면 자기를 다루는 방법 같은 것을 나이 먹으며 조금씩 터득하게 된다. 사소하게는,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 자신을 끌고 나가려 한다. 카페에 머무는 것에 한계를 느껴서 최근 들어 공유 오피스에 나가기 시작했다. 열중해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으면 자극을 받는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기권을 한번 끊어보면 어떨까?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