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국내 개봉을 확정한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 언론 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됐다. <소울>은 ‘태어나기 전 세상’에 존재하는 ‘영혼’들이 특정한 교육을 받고 성격과 자격이 주어진 후에 비로소 태어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게 된 영혼 ‘조’와 지구로 가기 싫어하는 영혼 ‘22’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3번째 장편 영화.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픽사 영화 특유의 매력이 이번 영화에도 담겨있을까. 2020년 12월 25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많은 비평가, 언론을 통해 픽사 영화의 최고 정점이자 위대한 성취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소울>을 본 씨네21 기자들의 첫 반응을 모아봤다.

김성훈 기자

죽어서 가는 천당과 지옥은 잘 알겠는데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니. 온 세상 어린이들의 영혼이 모여 있는 세계라니.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세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펼쳐 놓은 ‘태어나기 전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답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영혼이 된 ‘조’와 태어나고 싶지 않은 영혼 ‘22’의 아이러니한 동행은 아슬아슬하면서도 계속 응원하고 싶게 한다. <소울>은 태어나긴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소울이 뭔지 몰라도 모든 장면에서 소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 늘 그렇듯이 본편 시작 전에 상영되는 단편 <토끼굴>은 이 경이로운 작품에 잘 어울리는 에피타이저라 할 만하다.

김소미 기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기 ‘영혼’이 갈급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영화다. 정신을 살아있게 하는 제1의 불꽃이 열정 혹은 소명이라는 현대의 신화에서 한걸음 물러난 영화는 그 해답을 영성에서 찾는다. 거리의 광인, 이국의 명상가 캐릭터를 자투리로 끌어와 구현한 저 세상의 심연에는 외형상 살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자기 존재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여기엔 연주에 몰두한 재즈 피아니스트처럼 무아지경 상태로 빛나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집착과 번아웃으로 길을 잃은 그림자 영혼이 공존한다. 고대하던 재즈 클럽 데뷔를 앞두고 맨홀에 빠져 죽게 된 주인공 ‘조’와 수천년간 태어나지 못한 영혼 ‘22’는 그 위태로운 ’한 끗 차이’ 속에서 서로에 의해 뜻밖의 구원을 받는다.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이렇게 두 영혼의 ‘멘토링’ 속에서 경이로운 순간들로 장면화된다.

<소울>은 디즈니 픽사 스타일의 진화를 알리는 훌륭한 쇼케이스이기도 하다. 실사를 방불케 하며 애니메이션 기술력의 진보를 감지하게 만드는 뉴욕 풍경이 구상의 최고점으로 나아간다면, 반대편에선 피카소 회화의 일부 같은 선과 면이 추상의 논리로 움직인다. 귀엽고 친숙해 마지않은 3D의 주인공들은 두 극단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둥글게 유영하며 관객의 손을 잡아 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이미 황홀하게 펼쳐진 바 있는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여행, 추상과 구상의 넘나듦, 주어진 세계에 감사하는 명민한 마음씨는 <소울>에서 한층 더 비옥한 토양으로 다져졌다. 코로나 시대의 시사회장을 빠져나온 동료 기자들의 눈이 온통 붉고 벅차 보였던 것은 내 시야가 아직 물기로 흐렸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소울>은 다시 일상의 파도가 덮쳐와도 그 효력이 꽤 오래 지속될, 107분의 고강도 치유 프로젝트다.

김현수 기자

픽사의 작품 중 뛰어난 영화들은 대체로 집, 사회, 지구 바깥의 무한한 우주 너머(to infinity and beyond)가 아니라 내 집, 내 방, 내 마음 안에서 삶의 신비를 발견한다. <소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시작점인 '영혼'의 제작 과정이다. 피트 닥터 감독의 전작 중에서 벽장 속 괴물을 가지고 공장 시스템을 상상했던 <몬스터 주식회사>와 우리 마음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본 <인사이드 아웃>의 매력을 합쳐 놓은 확장판 같다. 물론 감동과 성찰의 깊이 역시 더욱 깊어졌다. 애니메이션이 선사할 수 있는 이미지의 매력을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더 많아진다. 감성과 기술이 눈 앞에서 조화를 이루는 와중에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존 바티스트가 협업한 음악이 흐른다. 선과 색과 빛의 아름다움을 선율로 번역한 결과 같다. <블레이드 러너>와 <아키라>가 상상했던 2020년 이후를 살아가게 된 우리가,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남선우 기자

1월에 잘 어울리는,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소울>이 도착했다. 그 첫 인상은 익숙한 딜레마, 친근한 인물 구도, 편안한 재즈 음악으로 채워지는데, <소울>은 단숨에 처음 보는 풍경 속 새로운 세계관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사후세계로서 펼쳐지는 생전세계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잠시, 영화는 본 적 없는 비주얼의 캐릭터들과 익히 들어온 각종 위인들을 함께 불러들이는 유연한 상상력을 뽐낸다. 그 끝에 영화가 선보이는 한 줌의 열매는 그 자체로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울>이 <소울>만의 땅을 꾸린 다음 그만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든 과정을 목도한 후 받아든 열매의 맛은 뭉클하고도 달콤하다. 이야기, 좁게는 메시지 그 자체의 파격성보다 그것을 전하는 방식의 독창성이 영화를 비범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한다. <소울>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단편 <토끼굴>의 귀여운 성장담도 놓치지 말 것.

배동미 기자

언제나 진리는 삶이 고차함수라는 것이다. 피트 닥터 감독은 픽사에서 이를 가장 잘 일깨워주는 감독이다. 그의 전작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 슬픔 등 감정에 인격을 부여하는 상상력을 밀어붙인 뒤,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인간적인 순간을 고차원적으로 그려냈다. <소울> 역시 기발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 타고난 기질이 생성되는 생전 세계(사후 세계의 반대다)를 경험한다. 극중에서 '유 세미나'라고 불리는 세계가 바로 그곳이다. '유 세미나'의 기발한 설정은 <인사이드 아웃>때처럼 경계를 점점 넓히면서,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이를 테면, 소질과 꿈은 타고나는 것인가, 그것만은 인생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인가, 혹은 인간이 무언가를 소명이라고 믿고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오늘날의 영화가 잃어버린 것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아름다움이다"(D.W. 그리피스) <소울>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가 단풍나무 아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나무 이파리와 씨앗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실사영화만 작업한 그리피스가 말한 아름다움을 애니메이션에서 느꼈다고 말하면 아이러니하지만, 실제로 <소울>은 그런 영화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펼쳐낸 세계에 담뿍 빠지게 만들다가도, 나무를 흔드는 바람처럼 일상 속 소중한 면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 수 없다.

이주현 기자

픽사의 자기 경신은 놀라운 수준에 이르렀다. <인사이드 아웃>이 애니메이션의 의인법 대상을 무생물을 넘어 감정으로까지 확장했다면 <소울>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에 우주적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애니메이션 고유의 아름다움을 미술적, 음악적 언어로 눈부시게 빚어내는데, 단순한 선으로 형태 없는 것에 자유로운 형태를 부여하다가도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는 손가락처럼 좋아하는 것에 반응하는 몸의 일부는 지극히 섬세하게 그려낸다. 표현이며 리듬이며 재즈처럼 자유로운 <소울>은 애니메이션 본연의 가치를 일깨운다. 근래 본 가장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임수연 기자

인간의 삶을 삶이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소울>은 이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기 위해 ‘태어나기 전 세상’(Great Before)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여기엔 (다양한 학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시나리오를 완성해온 픽사 스튜디오답게)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지는 영혼에 관한 철학이 근간에 있다. 영혼이 육체를 입고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자격을 검증하는 관문이 있다면 무엇이 ‘살아 있음’을 성립시키는지 알 수 있다는 발상이다. 목표하는 바를 향해 몰두하는 태도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 시대에, <소울>은 ‘몰입’과 ‘헤매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먼저 경고한다. 그리고 피자를 맛있게 느낄 수 있다면, 피부를 스치는 산들바람에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의 채비를 마친 거라 말한다.

피트 닥터의 전작 <인사이드 아웃>의 성격 섬이 그랬던 것처럼 <소울> 역시 이야기에 영감을 준 방대한 레퍼런스를 집약한 비주얼이 영화를 채운다. 인간 고유의 퍼스널리티가 결정되는 ‘태어나기 전 세상’은 동화적이면서 고도로 시스템화된 혁신 도시 같고, 각자의 ‘불꽃’(Spark)을 찾기 위해 가능한 지구의 경험을 총망라한 ‘모든 것의 전당’(Hall of Everything)은 일종의 박람회처럼 구현됐으며, 마이클 포웰,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이 비주얼 레퍼런스가 됐을 ‘저 세상’(Great Beyond)으로 가는 길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더해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배가했다. 반액체로 구현된 영혼의 디자인이나 2D와 3D의 경계에 선 현대 예술작품처럼 구현된 카운슬러로 다양한 질감을 스크린에 펼치는 가운데, 뉴욕시는 다분 사실적으로 묘사돼 현실과의 접점을 놓지 않는다. 뉴욕의 흑인 뮤지션이라는 구체적인 문화적 배경은 최근 다양성을 위한 디즈니의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 변화를 필요 이상으로 과시하는 대신 흑인 재즈가 내러티브 상 중요하게 기능하는 쪽을 택했다. 흑인 영화인 캠프 파워스가 각본과 공동 연출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