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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 장인! 뤽 베송 감독의 여성 액션 캐릭터들

<안나>

뤽 베송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들의 머리에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강인함에 감명을 받아왔다. (중략) 남자가 돌아오지 않아서 훌쩍거리는 여자가 아닌 강인한 여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유독 그의 영화에서 강렬한 여전사 캐릭터의 활약이 두드러진 이유가 엿보인다. 그의 신작 <안나> 역시 총을 든 여성 캐릭터가 멋진 맨몸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다. 스틸컷 만으로도 뤽 베송의 이름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그간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온 뤽 베송의 인상적인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짚어봤다.

<니키타>

안느 빠릴로 - 니키타 역

총격전으로 번진 강도 사건 현장에서 니키타(안느 빠릴로)는 홀로 발각됐다. 경관을 죽인 죄와 더불어 통제 불가능한 기행이 계속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니키타. 그런데 그의 앞에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정부기관의 한 남자가 찾아와 킬러로 길러질 것인지, 땅속에 묻힐 것인지를 물어온다. 그렇게 날것 그대로의 인간 니키타는 말하는 법, 웃는 법, 걷는 법, 총 쏘는 법, 싸우는 법 등을 배워 국가의 뒷일을 처리하는 암살자로 거듭난다.

니키타 역할의 배우 안느 빠릴로의 연기가 압권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 하나 없이 국가의 부속품으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니키타.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살인 앞에 그는 종종 아이처럼 괴로워했다. 완벽과 미숙함을 오가는 그의 무장해제한 울음은 안느 빠릴로가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가 없다. 게다가 신분을 밝힐 수 없었던 니키타를 연인으로 받아들인 마르코(장 위그 앙글라드). 둘 앞에 펼쳐진 비극적 사랑 역시 필연적인 것이었다. 끝내 자유를 찾아 홀연히 떠난 니키타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다.

<레옹>

나탈리 포트만 - 마틸다 역

보석 같은 배우 나탈리 포트만을 발굴한 만인의 명작 <레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이코닉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영화 속에 그려 넣었던 뤽 베송. 많은 캐릭터 가운데서도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다. 짧은 단발머리, 목에 두른 초커, 화분을 들고 당당한 걸음을 걷는 마틸다의 모습은 대중문화 속 여전한 패러디의 대명사. 12살 아이에게 총을 쥐게 하고, 담배를 피우게 했다는 이유로 <레옹>은 논란과 센세이션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가족들의 처참한 몰살을 목격한 12세 소녀 마틸다. 옆집 초인종을 누르는 기지를 발휘해 레옹(장 르노)을 만나게 되고, 이 장면은 생판 남이었던 서로를 단숨에 가장 필요한 관계로 엮는다. 나이만 어릴 뿐이지 다 자랐다고 자부하는 마틸다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레옹을 자신의 첫사랑으로 간주한다. 세상에 외로이 남겨진 두 사람은 가족 못지않은 유대를 쌓아간다. 뤽 베송 감독은 ‘성숙해 보이지만 분명히 아이인‘ 아역 배우를 찾기 위해 고심했고, 나탈리 포트만은 마틸다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다.

<제5원소>

밀라 요보비치 - 리루 역

<니키타>와 <레옹>을 성공시킨 뤽 베송이 무려 9500만 달러의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SF 블록버스터. <제5원소>는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물, 불, 공기, 흙 외에 다섯 번째 비밀 원소를 지켜내려는 자들의 이야기다. 23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미래적인 이미지들로 보는 눈을 시종 즐겁게 만든다. 지구에서 발견된 제5원소의 잔해는 DNA 복원 작업을 통해 인간의 형태로 거듭난다. 바로 이 완벽한 존재, 제5원소 리루를 밀라 요보비치가 연기했다.

오렌지색 머리칼에,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내뱉던 리루를 본 지구인은 그 모습에 경이로움을 보냈지만, 그의 진가는 잘 알지 못했다. 리루는 금세 지구의 언어를 배우고, 강력한 힘을 발휘해 이들로부터 도망친다. 그를 추적하는 경찰들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외계인 무리와의 싸움에서도 놀라운 액션을 보여준다. 여전사 전문 배우 밀라 요보비치의 탄생이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직접 제작한 의상들로 얻은 독특하고도 미래적인 분위기는 덤이다.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카라 델레바인 - 로렐린 역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는 방대한 세계관과 다채로운 이야기로 사랑받은 동명 그래픽 노블의 한 챕터를 영화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배경은 무려 28세기에 이른다. 휘황찬란한 세계를 영화에 구현하는 뤽 베송의 장기 덕에 뛰어난 시각적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담은 진주를 복제하는 컨버터(converter)를 소유한 진주족들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묘사가 특히 아름답다. 한편, 진주족 리호 미나 공주를 맡은 모델 출신의 배우 사샤 루스는 이후 <안나>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주인공은 시공간을 이동하며 지구를 지키는 두 에이전트 발레리안(데인 드한)과 로렐린(카라 델러바인). 뤽 베송의 여성 캐릭터를 향한 애정은 <발레리안>에서도 어김없다. 철부지 사랑꾼 발레리안은 ‘올인’할 자신은 없는 카사노바. 오히려 관객들의 신뢰는 당당하고 현명한데다 유머감각까지 있는 로렐린이 독차지한다. 실제 카라 델레바인의 자신감 넘치는 매력이 로렐린의 캐릭터와 잘 포개진다. 따라서 둘이 합심해 우여곡절을 극복하는 <발레리안>의 서사는 발레리안의 성장이면서,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러브 스토리다. 다소 올드한 이야기 전개 탓에 ‘매너리즘에 빠진 뤽 베송’이라는 오명이 따랐지만, 영상 자체만으로 황홀하다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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