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가며 흥행을 기록 중인 <토이 스토리 4>. 이번에도 포키(토니 헤일), 버니(조던 필), 카붐(키아누 리브스) 등 개성 넘치는 뉴페이스들이 등장했다. 그중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눈물샘을 자극한 캐릭터가 있으니, 중반부까지는 악역처럼 등장했던 개비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다. 늘 확실한 악역들이 등장했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 그러나 <토이 스토리 4>에서 개비개비는 차마 악역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토이 스토리 4>는 입체적인 악역을 통해 ‘존재의 가치와 의미’라는 주제를 강조, 특유의 눈물 포인트까지 잡아냈다. 그렇다면 개비개비처럼 나름의 사정으로 ‘짠내’를 폭발시켰던 캐릭터에는 누가 있었을까.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영화 속 악역 아닌 악역들을 모아봤다.
<해리 포터> 시리즈 스네이프 교수
사연 없는 악인은 없겠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네이프 교수(앨런 릭먼)가 그 최고봉이 아닐까.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를 비롯한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괴롭히는 캐릭터로 첫 등장, 이후 ‘사실은 구해주려 한 것’ 식의 전개가 이어지며 팬들의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든 그.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에서는 덤블도어(마이클 갬본)를 직접 죽이며 ‘악인’ 낙인을 확실히 찍은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시리즈에서 진실이 밝혀지며 지금껏 모든 것을 감내한, 가슴 아픈 캐릭터가 됐다.
MCU 로키, 윈터 솔져, 킬몽거
(왼쪽부터) <토르: 천둥의 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블랙 팬서>
속 사정을 간직한 악역은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에서도 빈번히 활용하는 캐릭터이다. 그중 가장 큰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캐릭터는 로키(톰 히들스턴). 지구를 침공해 많은 피해를 초래했지만 출생에 비밀로 인한 피해 의식, 어머니의 죽음 등 그를 거쳐간 수많은 상황들은 공감과 연민을 자아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는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가 있다. 로키가 불우한 환경에서 비롯된 그릇된 욕망이었다면, 윈터 솔져는 아예 의식이 빼앗겨 악행을 저지른 캐릭터. 법정에 선다면 로키보다 형량이 적거나, 무죄를 받을 듯하다.
<블랙 팬서>의 킬몽거(마이클 B. 조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릇된 방식을 택했단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도 로키처럼 나름의 이유가 드러나며 동정표를 얻었다. 또한 결투에서 승리해 왕위에 올랐음에도, 능력이 향상된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만)에게 왕위를 뺏겼다는 점에서 팬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뉴 고블린, 벌처
(왼쪽부터) <스파이더맨 3>,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MCU를 넘어 샘 레이미 감독의 트릴로지부터 짠내 악역이 종종 등장했다. 2편의 닥터 옥타비우스(알프리드 몰리나), 3편의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 등이다. 그러나 최강자는 역시 오해가 쌓이고 쌓여 악역이 되고 만 뉴 고블린(제임스 프랭코). 2편에서 사실을 숨기는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MCU의 <스파이더맨: 홈커밍> 속 악역, 벌처(마이클 키튼)도 빌런이 되기 전까지는 가족을 사랑하는 소시민이었다. 대부분의 악역들이 거창한 목표를 가진 것에 비해 벌처의 악행은 생계를 위한 수단.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여타의 히어로 영화 속 악역들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끝까지 욕망, 복수심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모습도 있었다.
<엑스맨> 시리즈 매그니토
<엑스맨> 시리즈의 주요 빌런으로 등장하는 매그니토(이안 맥켈렌, 마이클 패스벤더). 강경파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를 모티브로 한 매그니토는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은 필요하다”라는 생각의 전형. 그 대의는 사적인 욕심이나 복수심이 아닌, 오로지 뮤턴트들이 핍박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거의 빌런에 가깝게 묘사됐지만, 이런 목적성 덕에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처럼 그려졌다. 또한 자신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헬멧을 벗지만, 인간들의 과오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며 다시 악인의 길을 걷는 캐릭터다.
<데드풀 2> 케이블
타노스를 악역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연기한 조슈 브롤린이 양다리를 걸친 캐릭터, <데드풀 2>의 케이블은 악역 아닌 악역에 해당했다. 그의 목적은 하나.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과거로 가 딸을 죽인 파이어 피스트(줄리안 데니슨)을 없애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이렇게만 보면 악역이 아니라 선역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주인공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자체가 선인과는 거리가 먼 악동. 케이블은 자연스레 빌런으로 소개된 비운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를 위한 배려였을까. <데드풀 2>는 유쾌한 톤으로 데드풀, 케이블, 파이어 피스트까지 모두 뭉치는 독특한 가족의 탄생기로 마무리됐다.
<스타워즈> 시리즈 다스베이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역 다스베이더(헤이든 크리스텐슨, 데이비드 프로우즈)도 가슴 아픈 뒷배경을 가지고 있다. 연인 파드메(나탈리 포트만)의 죽음 등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의 과거는 요다(프랭크 오즈)가 그의 미래를 예견한 대사로 압축할 수 있다. “공포는 분노로,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요다의 말처럼 <스타워즈> 6부작은 다스베이더의 탄생기이며, 몰락기로 봐도 무방했다. 결국 아들 루크(마크 해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최종 악역 격인 다스 시디어스(이언 맥디어미드)를 죽이고, 스스로도 죽음을 택하는 비운의 캐릭터. 시퀄 시리즈의 악역이자 다스 베이더의 손자인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도 스스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유리 멘탈의 여린 인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