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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씩이나? 유명 영화들이 지각 개봉한 사연

다르덴 형제의 1999년 작품 <로제타>가 5월 관객들을 만난다. 당연히 재개봉일 것 같았지만 엄연히 극장 개봉은 처음이다. 흔히 영화계에 조롱거리로 등장하는 '창고 영화'와는 아예 의미가 다르다. 창고 영화란 한참 전에 만들어졌지만 만듦새가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시기적으로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 개봉을 미룬 영화들에게 붙여진 다소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들은 다르다. 도리어 '늦게라도 개봉해줘서 고맙다'는 안도를 부른 영화들을 모았다.

로제타 / 20년

다르덴 형제의 첫 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로제타>는 오는 5월 국내에서 처음 개봉된다. <내일을 위한 시간>(2014), <언노운 걸>(2016) 등 다르덴 형제의 근작들은 모두 극장에서 개봉돼 시네필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때문에 형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로제타>가 20년 만에 첫 개봉을 앞뒀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은 다르덴 형제 특유의 리얼리즘 영화 세계를 추종하는 팬들이 많지만, <로제타>가 발표되던 1999년 당시에는 국내 관객들에게 낯선 화법의 영화였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십대 소녀 로제타가 경제적 위기로부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제5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칠드런 오브 맨 / 10년

<칠드런 오브 맨>의 지각 개봉은 오히려 타이밍이 절묘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SF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에 만들어졌지만 10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한국에서 개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씩이나 미뤄진 개봉이 절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난민’, ‘저출산’의 화두가 2010년대에 이르러 극심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칠드런 오브 맨>이 다루고 있는 암담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서사는 결코 대중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아니기에 이같은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철저히 외면 받았을지도 모른다. 뒤늦은 개봉으로나마 <칠드런 오브 맨>을 본 관객들은 일제히 쿠아론의 마스터피스라며 입을 모았다.

환상의 빛 / 21년

고정적으로 찾는 관객이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만큼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성실함 마저 팬들에겐 달가운 점이다. 2016년의 여름은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극장에 걸린 계절이었다. 하나는 11번째 장편 <태풍이 지나가고>, 다른 하나는 데뷔작 <환상의 빛>이다. 무려 21년이 지나 유능한 감독의 출발을 알렸던 히로카즈의 첫 장편이 스크린에 옮겨졌고, 팬들에게는 그의 가장 오래된 작품과 최신의 작품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가 됐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남편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가는 유미코의 이야기 <환상의 빛>은 죽음과 상실의 테마를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본 히로카즈의 남다른 시작이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26년

대만 뉴웨이브 영화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감독 에드워드 양. 그의 영화 중 최고라 일컬어지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만들어진 지 26년이 지나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그동안 명성만 무성히 듣고 이 영화를 궁금해하던 영화 팬들은, 237분(4시간 남짓)에 이르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앞다퉈 극장을 찾았다. 10대 소년 소녀들의 어두운 세력 다툼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그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59년의 대만이 안고 있던 사회 정치적 상황과 시대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대만을 대표하는 배우 장첸의 어린 시절 모습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묘미가 돼 준다.

천공의 성 라퓨타 / 18년

<천공의 성 라퓨타>는 18년 만인 2004년에서야 늦개봉을 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창립작이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하늘에 둥둥 떠있는 섬’에서 착안해 구상한 라퓨타 성을 통해, 하야오는 그의 일관된 주제인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역설했다. 사실상 초기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년을 훌쩍 넘겨 개봉했다. 여기엔 <이웃집 토토로>(1988년 작, 2001년 개봉), <마녀 배달부 키키>(1989년 작, 2007년 개봉), <붉은 돼지>(1992년 작, 2003년 개봉) 외 다수 작품이 해당하는데, 2000년대 초기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서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라붐 / 33년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 영화 <라붐>은 1980년에 만들어져 2013년에 한국의 극장에 걸렸다. 무려 33년 만의 개봉이다. 그럼 도대체 그 유명한 헤드폰 신과 함께 자동 재생되는 음악 ‘리얼리티(Reality)’며, 책받침 3대 여신 중 하나였다던 소피 마르소의 인기는 어디서 온 걸까? <라붐>은 극장이 아닌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됐다. 당시 한국은 <라붐>의 TV와 비디오 판권만을 갖고 있었으며, 텔레비전을 통해 더빙 방영되기도 한 <라붐>은 첫사랑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2013년 첫 극장 개봉을 치른 <라붐>은 그간 국내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마지막 장면을 함께 공개했다.

에이리언 / 8년

지금까지 나열된 영화들의 지각 개봉에 비하면 8년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하지만 속편 <에이리언 2>가 본편인 <에이리언>보다 먼저 개봉됐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소개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작 <에이리언>은 1979년이라는 제작 시점을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한 만듦새를 자랑하는 괴수 영화였다. SF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에이리언>은 많은 후대감독들의 손에서 태어난 속편들로 인해 다시 그들을 명감독의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최초의 <에이리언>은 단순히 ‘잔인하다’는 이유로 국내에 제때 개봉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에이리언 2>가 먼저(1986년) 개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속편의 흥행으로 인해 본편인 <에이리언>은 8년 만인 1987년에서야 늦개봉을 했지만, 2편에 한참 못 미친 흥행 성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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