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조합 등 파업으로 영국영화계 뜻밖 호황
배우조합의 파업과 작가조합의 파업으로 할리우드가 휘청이는 바람에, 영국영화계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파업과 달러 강세 등으로 위축된 미국 대신 영국을 새로운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 현지 촬영중인 여름 블록버스터 <미이라2> <툼 레이더> <진주만> 등의 덕으로 이미 7억5천만파운드(11억25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배우들의 파업이 시작되는 여름을 전후로는 영국으로 ‘이전 개업’하는 프로덕션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
어부지리격으로 할리우드 자본이 유입되고 영화계 전반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영국영화협회와 영국영화위원회는 드러내놓고 반기지 못하는 입장이다. 막강한 영화배우조합의 반발과 비난이 두려워서다.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돈 벌이를 위해 좋은 관계를 망칠 순 없다”거나, “남의 일거리를 빼앗아, 파업 방해자가 되긴 싫다”고 말해왔다. 미국 배우조합의 파업을 지지하던 영국 배우조합은 그 이상의 연대나 단체 행동은 검토하지 않은 상태로, 다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작가조합은 미국작가조합이 어떤 강수를 쓰든,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태. 그러나 영국영화계가 할리우드의 위기를 호재로 여기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실제로 영국 배우와 스탭들이 할리우드영화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미국의 거대 멀티플렉스에 공급될 물량을 영국영화가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돌고 있다. 여름 파업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졸속으로 제작된 미국영화들이 가을 극장에 걸릴 때면, 영국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미국 대중의 호감을 살 수 있기 때문. 이런 가정은 영화뿐 아니라 TV에도 적용된다. 미국영화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의 계약이 만료되는 오는 6월30일을 기해, 현재 추세대로 전원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TV 연속극과 퀴즈쇼는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과 방영까지 중단될 위기다. 실제로 영국의 유명 TV쇼들은 이미 등의 프로포즈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편당 출연료 2천만달러에서 3천만달러를 호가하는 스타들의 존재 때문인지, 할리우드 배우들의 파업은 널리 지지를 받고 있진 못하다. <필름 언리미티드>는 자신의 애완 도마뱀을 위해 요리사를 고용해달라고 했다는 짐 캐리의 사례를 들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부르짖었을 때는 응석받이 영화배우들까지 이에 동조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배우조합의 대변인은 “대부분의 배우들이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들 만큼 턱없이 낮은 개런티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작가들의 파업을 지켜보는 시선은 조금 따뜻한 편이다.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반면, 작가들의 개런티는 몇년째 제자리 걸음인 것이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파업 결의가 급료 문제보다는 위상과 자존심의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여하튼 파업이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고 보면, 남의 가게 불난 덕에 표정관리하며 수입 올리는 영국영화계의 묘한 처지는 얼마간 지속될 것 같다.
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