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에선 록 밴드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의 40년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 베를린이 춥고 캄캄해지면>이 화제다.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은 기타, 트럼펫, 아코디언, 피아노 등 악기 연주에 능통한 스벤 레게너가 1985년 창단한 밴드로, 라스 폰 트리에의 장편 데뷔작인 <범죄의 요소>(1984)에서 이름을 땄다. 레게너는 소설 <레만씨 이야기>를 포함해 영화화된 소설만 세편을 가진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영화의 부제인 ‘베를린이 춥고 캄캄해지면’(Wenn es dunkel und kalt wird in Berlin)은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의 대표곡이다. 대표곡의 제목처럼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의 음악은 흐리고 습한 독일의 겨울 날씨와 정서를 공유한다. 블루스, 재즈, 포크가 묘하게 녹아든 사운드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고, 서정적이고 재기 넘치는 가사에 끼어드는 트럼펫 사운드가 음울함을 더한다.
영화는 2023년 베를린에서 다섯 차례 열린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의 콘서트와 공연 전후로 이루어진 멤버들의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 밴드의 주축인 스벤 레게너는 물론 드러머 리하르트 파피크, 기타리스트 야코프 일야 등이 인터뷰에 응했고, 지지난해 타계한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영은 과거 인터뷰 푸티지로 대체된다. 인터뷰의 재미를 더하는 건 멤버들의 음악 취향이다.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 멤버들은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춘 데 비해 이들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는 전부 제각각이다.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이 아방가르드, 록,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이들의 2023년 공연 실황뿐 아니라 과거 공연 영상도 함께 콜라주한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엘리먼트 오브 크라임과 협업한 젊은 음악인들의 연주도 함께 담아낸다. 이같은 연출은 베를린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변천사를 톺는 것은 물론 지금 부상하는 신진 음악인들이 선배들의 음악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는지를 점치려는 시도로 보인다. <타인의 삶> 등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중견 배우 찰리 휘브너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