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6~2020년 <씨네21> 최장수 연재 작가
- 영화 패러디한 제목의 두쪽 만화에 언어유희 등 기발한 웃음과 함께현실 풍자, 약자에 대한 연민 녹여내, 2021년 말부터 백혈병 투병
2020년 말 <씨네21>에 연재를 마치며 인터뷰에 나선 정훈 작가. <씨네21> 자료사진
<씨네21> ‘정훈이 만화’의 정훈 작가가 5일 별세했다. 향년 50. 정 작가는 1996년부터 2020년까지 25년간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두쪽짜리 만화를 연재하면서 영화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고인은 2021년 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자란 정훈 작가는 군인을 꿈꾸며 사관학교 입시를 준비하다가 입시에 실패한 뒤 만화가로 진로를 바꿨다. 1995년 만화 잡지 <영챔프>가 주관하는 제2회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수상한 뒤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기자의 제안으로 영화 패러디 만화 연재를 시작한 게 ‘정훈이 만화’의 시작이었다.
매주 발행되는 <씨네21>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던 ‘정훈이 만화’는 언어유희를 통한 웃음과 ‘남기남’, ‘씨네박’같은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독자들의 단단한 지지를 쌓았다. 또한 시사적인 감각도 뛰어나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작품 안에 담거나,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연민 가득한 웃음과 애정으로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다. 이런 작품성을 인정받아 한국영화박물관에서 2021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시회 ‘정훈이 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이 열리기도 했다. <씨네21>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정훈이 만화 한 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했던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영화박물관과 한 인터뷰에서 “정훈이 만화는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경쾌한 유머 정신 밑에 굉장한 연민이 있다. 유머와 연민의 결합을 통해 항복하게 만드는, 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정훈 작가는 1996~1997년 <영챔프>에서 <삼국지>를 패러디한 ‘트러블 삼국지’를 연재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2년부터 <청년의사>에 의료만화 ‘쇼피알’을 20년간 장기 연재하는 등 발병 직전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권정화씨가 있다. 빈소는 대구 계명대병원, 발인은 7일 12시30분이다.
한겨레 김은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