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백야 3.98>로 데뷔 이후 <우영우>까지 작품들
사극 좋아하던 ‘아역’…<청춘시대>부터 배우 인생 변화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ENA)가 최근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는 ‘우영우’를 연기하는 배우 박은빈의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박은빈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 역할을 디테일을 살려 현실감 있게 표현하면서 사랑스러움을 담아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그런 우영우를 보며 “귀엽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로 캐릭터를 ‘추앙’한다. 국내 드라마 중에서 자폐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은 <굿 닥터>(한국방송2) 정도였다. <굿 닥터>도 따뜻한 내용의 드라마였지만,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이렇게까지 ‘열광’하지는 않았다.
<우영우>는 자폐 장애가 있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증인>을 쓴 문지원 작가와 <낭만닥터 김사부>(에스비에스)를 연출한 유인식 피디(PD)가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다. 이들은 박은빈을 섭외하기 위해 1년을 기다렸고, “대본을 받고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연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거절했다”는 박은빈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박은빈은 드라마 시작 전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애인에 대해) 선입견을 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찾은 답은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영우의 진심을 내가 제일 먼저 알아봐 주고, 제 진심을 더 해서 보시는 분들이 영우의 마음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특정 인물을 따라 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른 작품을 참고하지는 않았어요. (장애를 가진) 인물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까 봐, (그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 봐, 신중하게 생각했어요. 자폐에 대한 자문을 구하려고 (자폐 스펙트럼 전문가인) 교수님을 만나 뵙고 (자폐에 대한) 특성들을 들었고, 그 적정선을 찾아 우영우를 연기했어요.” 박은빈의 캐릭터 분석력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우영우>에서는 자폐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들이 많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주변 소음에 예민해 지하철을 탈 때 헤드폰을 쓴다든가, 다른 이가 자신을 안을 때 쭈뼛해 한다든가, 침대에 인형을 두는 식이다. 또한 “자폐 스펙트럼 증상의 종류와 범위가 다양하다”거나 “반향어(상대방의 말에 대답 하지 못하고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의 특성”이라는 대사를 통해 이런 장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자폐 장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고, 드라마 밖에서 이런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볼 때 ‘불편한 시선’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은빈은 긴 대사를 또렷한 발음으로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특히 신경 썼다고 한다.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시청자들은 박은빈의 발음에 주목했다. “저 많은 대사를 어쩜 저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또박또박 말할 수가 있지?”
박은빈은 1998년 <백야 3.98>(에스비에스)로 데뷔한 뒤 여러 장르를 소화했다. 그것이 성인이 되어 연기력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청춘시대> 이전까지는 순수하고 단아한 이미지였다면, <청춘시대> 이후부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2019년 <스토브리그>(에스비에스)에 이어 지난해 <연모>(한국방송2)의 남장여자까지 매번 늘 새로운 박은빈이 탄생했다. 그는 오래 전 “좀 더 다이내믹한 삶을 살기 위해 평소 나 자신과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선택하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의지가 오늘의 ‘우영우’ 그리고 박은빈을 만들었다. 그의 지난 작품들을 훑어보며 우영우 탄생 과정을 짐작해보자. 이른바 박은빈 연대기다.
번외 - 수다맨과 그 광고
먼저, 박은빈의 작품 외에 그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박은빈은 TV광고와 개그프로그램, 그리고 시사교양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스비에스)에 출연한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지금까지 돌아다닌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모델 활동을 할 때인 2002년 <개그콘서트>(한국방송2) ‘수다맨’ 코너에 출연했다. 아마 지금 “어머, 그 애” 하며 무릎을 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와줘요 수다맨~”을 외치던 바로 그 아이다. 당시 수다맨 강성범과 출연하던 김지혜를 대신해 3개월 정도 방송에 출연했다. 원래는 1회 출연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제작진이 한 번 더, 한 번 더 하던 것이 석달 출연으로 이어졌다. 배우 데뷔 이후인 2005년 출연했던 TV 광고가 화제를 모으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박은빈 말로는 그때 처음으로 온라인 팬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그때, 박은빈은 그저 모든 것이 부끄럽고 민망했겠지만, 이 광고를 시작으로 그의 팬이 늘어났다. <순풍산부인과>(에스비에스) 620화에서 정배(이태리)가 좋아하는 아이로 등장하기도 했다.
· 2002년 <개그콘서트> ‘수다맨’
· 2005년 TV 광고 ‘딸의 인생은 길다’ 편
· 200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박은빈은 2008년 9월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 ‘아역배우, 누구를 위한 꿈인가?’ 편에 등장했다. 공부와 연기활동을 병행하는 학생으로 출연해 제작진과 짧은 인터뷰를 했다. 박은빈은 당시 인터뷰에서 “공부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한쪽은 좀 소홀히 해야겠죠. 그런데 아직은 그렇게 포기하고 싶진 않고요. (공부와 연기) 둘 다 일단 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 영상은 박은빈이 <청춘 시대>로 아역 이미지를 벗어나면서 다시 소환됐다.
아역시절-현대극 편
박은빈은 5살 때 백화점 브랜드 모델로 데뷔해 1998년 <백야 3.98>로 연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데뷔 20년도 훌쩍 넘었다. 시작은 엄마와 함께 문화센터에서 ‘발표력 향상’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다. 연기공부를 하면 좀 더 사실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엄마가 연기학원에 등록시켰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끼가 다분했나 보다. 수개월이 지나서 그만 다니자는 엄마의 말에 박은빈은 “노”를 했다고 한다. 연기학원에 가는 날이 늘 기다려지곤 했단다. 그는 데뷔 이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한 드라마 감독이 말하기를 당시에는 연기 잘하는 아역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역 역할은 특정 몇 명에게 섭외가 갔다고 한다. 그 중의 한명이 박은빈이다.
· <백야 3.98> 1998년 8월31일~11월3일
· <강남엄마 따라잡기> 2007년 6월25일~8월21일
공부에 고민하는 고등학생의 내면을 잘 보여줬다. 박은빈의 또래 느낌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 <유리구두> 2002년 3월2일~7월28일
· <거침없는 사랑> 2002년 5월20일~7월23일
· <내 사랑 팥쥐> 2002년 8월26일~9월1일
· <위풍당당 그녀> 2003년 3월12일~5월8일
· <홍콩 익스프레스> 2005년 2월16일~4월7일
· <누나> 2006년 8월12일~2007년 2월18일
· <로비스트> 2007년 10월10일~12월26일
아역시절-사극편
박은빈은 다른 아역배우에 견줘서도 유독 어린 시절에 다양한 사극에 출연했다. 사극은 성인 배우들도 어려워하는 작품이다. 발음도 어렵고 여러 선생님과 함께 연기하는 것 자체가 압박감을 준다. 박은빈은 사극이 좋다고 한다. 사극은 생각하면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정숙하고 고요한 느낌이 좋다고 한다. 차분한 성격에 잘 맞아서일까. <우영우>에서 화제가 되는 긴 대사를 똑 부러지게 발음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현장에서 배우고 노력해온 것들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 <명성황후> 2001년 5월9일~2002년 7월18일
· <상도> 2001년 1월15일~2002년 4월2일
· <무인시대> 2003년 2월8일~2004년 8월15일
· <왕의 여자> 2003년 10월6일~2004년 3월2일
· <천추태후> 2009년 1월3일~2009년 9월27일
박은빈, OO의 아역편
박은빈이 어릴 때 데뷔해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대목도 엿보인다. 함께 활동하는 선배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거나, 그가 꼬마일 때 아빠로 나온 배우와 지금 함께 활동하고 있는 모습 등이다. 박은빈은 <유리화>에서 김하늘 어린 시절을, <부활>에서는 한지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박은빈이 ‘꼬꼬마’시절 데뷔작이었던 <백야 3.98>에서는 박상원, 이병헌, 심은하가 나오기도 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몇 작품을 소개한다.
· <유리화> 김하늘 어린시절 2004년 12월1일~2005년 2월3일
· <부활> 한지민의 어린시절 2005년 6월1일~8월18일
· <서울 1945> 소유진의 어린시절 2006년 1월7일~9월10일
· <계백> 송지효의 어린시절 2011년 7월25일~11월22일
박은빈 청춘시대
아역으로 시작한 배우들이 어른이 되어 이른바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 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아역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박은빈도 그랬다. 누군가의 아내 역할을 맡기도 했고, 사랑에 빠진 여인, 며느리 역할도 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연기자로서 어린 시절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은빈은 꾸준히 도전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분기점은 <청춘 시대>였다. 19금 이야기를 하고, 왈가닥 성격을 내보이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박은빈을 보여줬다. ‘본캐’ 성격과도 닮지 않아서 연기가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여자 신동엽’이라고 불릴 정도였던 송지원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배우로서 자신의 방향성을 다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지금 ‘박은빈의 청춘시대’를 열었다.
· <구암 허준> 다희 2013년 3월18일~9월27일
허준 일대기 다룬 사극. 박은빈은 다희 역할을 맡았다. 누군가의 아내 역할이라는 게 어색하기도 했지만,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서서히 성인 역할에 발을 디뎠다.
· <비밀의 문> 혜경궁 홍씨 2014년 9월22일~12월9일
· <초코뱅크> 하초코 2016년 2월15일~2016년
잘 보기 힘든, 사랑에 빠진 박은빈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엑소 카이의 팔에 쏙 들어가는 장면이 특히 흐뭇하다. 뭔가 자신의 나이대 역할을 간만에 한 듯한 느낌? 사랑스럽다.
· <청춘시대> 송지원 2016년 7월22일~8월27일
박은빈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성인 연기자로 확실하게 못 박은 작품이다. 여자 대학생 5명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전까지 박은빈은 단아하고 조용한 이미지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19금 이야기도 거침없이 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전까지 그의 연기를 봐온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다. <청춘 시대>에서 박은빈을 처음 알게 된 이들은 그가 엠비티아이(MBTI) 성격유형 중 외향적 성격을 뜻하는 ‘이(E)’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오동희 2016년 11월12일~2017년 5월7일
· <청춘시대 2> 송지원 2017년 8월 25일~ 2017년 10월7일
· <이판사판> 이정주 2017년 11월22일~2018년 1월11일
<우병우>의 변호사 역할 이전에 판사 박은빈이 있었다. <이판사판>에서 그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성공한 판사가 되고 싶어 했으나, 실종된 정의를 찾아가는 인물을 맡았다. 판사 역할을 한 덕분에 변호사 역할도 어색하지 않은 걸까.
· <오늘의 탐정> 정여울 2018년 9월5일~2018년 10월31일
귀신 잡는 탐정 이야기.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가해자가 귀신이라는 설정이다. 박은빈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고 탐정 사무소를 찾았다가 열혈 조수로 활동하게 된다.
· <스토브리그> 이세영 2019년 12워월13일~2020년 2월14일
오랜 세월 쌓아온 박은빈의 연기 내공이 폭발하기 시작한 작품. <청춘 시대>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이전과 다른 박은빈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면, <스토브리그>에서는 그 다름이 완벽해졌다고 할까. 남자들의 세계인 야구 구단 운영팀에서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이자 최연소 운영팀장의 자리에 오른 당찬 인물을 소화해냈다. 박은빈의 ‘인생 캐릭터’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2020년 8월31일~2020년 10월20일
과거보다 성숙한 단아함을 보여준 작품. 30대를 앞둔 스물아홉의 클래식 음악학생들의 꿈과 사랑 우정을 그린 클래식 멜로드라마. 박은빈의 노력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극 중 바이올리니스트를 맡았는데, 프로페셔널 연주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기교가 요구되는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한 악장을 대역 없이 연주해 클래식 업계 종사자가 드라마 리뷰 영상을 올려 응원하기도 했다.
· <연모> 이휘 2021년 10월11일~2021년 12월14일
버려진 여자아이가 세손이자 쌍둥이 오라비의 죽음으로 남장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궁중 로맨스. 박은빈은 배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남장여자 캐릭터를 연기했다. 박은빈의 큰 눈이 제대로 일을 낸 작품이기도 하다. 눈빛으로 여러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다양한 액션, 정치, 로맨스 등을 여자이지만 남성의 입장으로 표현해야 하는 꽤 어려운 역할을 잘 소화했다.
박은빈의 영화
· < 마녀 Part2>
· < 보스턴 1947>
· < 은밀하게 위대하게> (특별출연)
· <고사 두 번째 이야기>
번외 - 유승호 편
당시 연기 잘하는 아역배우가 많지 않아서인지 박은빈은 유승호와 자주 ‘짝’을 이뤘다. 아동복 모델부터 뮤직비디오까지 함께 촬영한 작품이 많다. 박은빈의 어린 시절 작품을 쭉 보면 그와 유승호의 성장 앨범을 보는 느낌까지 든다. 극 중에서 어릴 때 만나 다투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되고,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한다.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성인이 된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해도 좋을까. 기다려도 됩니까?
· <태왕사신기> 2007년 9월11일~12월5일
당시 한류열풍의 중심 배우였던 배용준이 출연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지아의 데뷔작이다.
· <선덕여왕> 2009년 5월25일~12월22일
고현정 등의 출연 못지않게 유승호와 박은빈이 다시 만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아역 배우가 두 사람이냐 아니냐가 관심 대상이기도 했다.
· <프로포즈 대작전> 2012년
박은빈이 성인 연기자가 된 이후 맡은 첫 주연작이다.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티브이(TV) 조선> 개국 당시에 방영되어 관심은 못 받았지만, 유승호와 박은빈의 호흡은 좋다.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
한겨레 남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