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열차와 역사 같은 제한된 공간이 주 배경이었던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탁 트인 공간을 무대로 한다. 곳곳에 버려진 총기와 자동차, 631부대의 아지트인 버려진 대형 쇼핑몰과 같은 주변 환경을 무술의 재료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부산행>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좀비와 맞서 싸워야 했다면, 생존하는 법을 직접 체득할 수밖에 없었던 민정이나 전직 군인 정석, 631부대는 보다 전문적인 액션을 선보일 수 있다. 좀비의 특성상 그들의 움직임은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발산하기 때문에 양자의 충돌은 화려하면서 날것 같은 사실감을 전달하게끔 디자인돼 있다. 한편 빛에 예민하고 어두울 땐 눈뜬 장님이 되는 좀비의 습성은 전편과 이어지기 때문에 조명탄, LED 장식이 있는 RC카, 나이트클럽 광고판, 하이빔, 폭죽 등을 활용해 그들을 유인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시에 배치할 수도 있다.
<반도>의 본질은 좀비의 존재가 인간성의 말살로, 권력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는 무기로 이어질 수 있는 가상의 사회를 통해 계급 문제와 휴머니즘을 조망하는 데 있다. 이 지점에 있어 전편보다 메시지가 직설적이며 <돼지의 왕> <사이비>와 같은 연상호 감독의 초기작도 떠올리게 한다. 납작하게 소비될 수 있던 서 대위(구교환)나 황 중사(김민재) 같은 악역 캐릭터는 <반도>가 그리고자 하는 정치역학 관계에서 추측 가능한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개성 있게 구현된다. 물론 이들은 전형성에서 벗어난 배우들의 연기에 빚진 바도 크다. 또한 익숙한 공간을 가져와 폐허로 재탄생시킨 무대는 이 이야기가 한국 사회와, 더군다나 코로나19 상황이 점차 우리 일상의 기본 조건이 되어가는 현 시국에서 더욱 떼어놓고 볼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며 비주얼이 곧 이야기의 핵심을 구현한다. 좀비 바이러스는 자연스럽게 한국인 전체를 전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적나라한 혐오의 대상으로 끌어내리며 난민 이슈의 당사자가 되게 하고, 고립된 631부대는 그들 사이의 계급에서 가장 하층에 해당하는 이들을 먹잇감 삼아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 ‘숨바꼭질’이 치러지는 컨테이너 경기장은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두지만 그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폭력성의 바닥을 시각화하며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술을 보여준다. 때문에 초반부터 많은 사람의 희생을 막기 위해 가장 가까운 핏줄을 버려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보여주고, ‘희망을 놓으면 괴물이 된다’는 직설적인 메시지와 함께 휴머니즘을 고민하는 후반부는 작위적인 신파라기보다 작가가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보인다.
CHECK POINT
대규모 카 체이싱
<반도>에서 가장 야심찬 액션 시퀀스는 단연 20여분에 이르는 카 체이싱이다. 폐허가 된 도심과 좀비 떼가 더해져 일반적인 카 체이싱 장면에 독특한 변주를 만들었다. 한편 영화에서 운전대를 잡는 이들은 거의 여성이다. 정석, 철민과 함께 반도에 들어가는 중년 여성은 예전에 택시 기사였고,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정현은 물론 이레가 연기하는 중학생 준이가 멋진 드리프트를 보여주며 신선한 인상을 남긴다.
아포칼립스가 된 한국
국가 기능을 상실하고 4년 뒤 각종 자연재해까지 겪은 한국의 풍경을 상상한 프로덕션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였다. 631부대의 아지트는 실제 대형 쇼핑몰을 본떠 2층 구조의 600평짜리 대형 세트를 제작한 결과물이며, 카 체이싱 액션이 펼쳐지는 아스팔트 도로는 특유의 질감 표현을 위해 직접 제작했다.
캐릭터들의 균형감
특정 인물 중심의 원톱 영화라기보다 다양한 캐릭터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구성임에도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배우들의 균형감이 잘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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