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안 나오는 게임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SF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한 흥행감독의 요즘 심경이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제작비 규모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SF다운 비주얼을 만들려면 5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된다. 그런데 국내 시장에서 50억원을 회수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관객 1인당 영화사 매출을 3천원으로 잡는다면 어림잡아도 서울관객 80만명을 넘겨야 된다. 지난 해 흥행성적을 보면 서울관객 80만명을 넘은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반칙왕>, 단 2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테슬라> <예스터데이> <제노사이드> 등 차례로 선보일 SF영화들 가운데 과연 몇편이 그 같은 성공을 거둘 것인가? 더 큰 문제는 50억원도 SF영화를 만드는데 충분한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선 제작비 상승에 따른 자기검열을 할수밖에 없다.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특수효과도 아직 검증된 상황이 아니고 배급일정도 큰 변수이다. 기획, 촬영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고 있어 최근 잇달아 개봉한 멜로영화들이 서로 손해를 끼친 것 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SF영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실에서 집계한 한국영화 평균제작비 변화추이를 보면 지난 해 총제작비 수준은 95년보다 2배 이상 뛰었다. 2000년 평균 총제작비가 21억5000만원으로 손익분기점에 이르려면 서울관객 27만명을 넘겨야 된다. 해외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비관할 것까진 없다. <쉬리>처럼 비슷한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한 전례가 있는 한 확률이 줄더라도 대작을 기획하는 사람은 계속 나올 것이다.
남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