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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상의 시간을 매번 다르게 스크린에 새긴다"

<내 죽음의 이야기> 감독 알베르 세라

스페인 감독 알베르 세라는 더 이상 주목할 만한 신인에 그치지 않는다. 21세기 들어 출현한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하나다. 유럽의 역사와 예술사에 정통한데다 시네필이기도 하며 예민한 직감까지 갖춘 그는 닳아빠진 소재를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돈키호테(<기사에게 경배를>), 동방 박사(<새들의 노래>)에 이어 우리는 카사노바와 드라큘라의 만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내 죽음의 이야기>를 연출한 알베르 세라를 만났다.

-<기사에게 경배를>(2006), <새들의 노래>(2008)의 인물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카사노바와 드라큘라가 만나는 이번 영화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계몽주의와 로맨티시즘 그 두 시기의 다른 공기를 비교하며 보여주고 싶었다. 영적인 비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인생을 좀더 가볍게 보았던 18세기와 어둡고 성적이었던 19세기의 대조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일종의 ‘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최초에 있었다.

-이 영화 속에서 카사노바는 무언가 끊임없이 먹고 있다. 그 먹는 소리가 생생하다. 이 묘사가 당신이 궁금해 했던 밤의 삶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물론이다. 먹는 장면은 카사노바의 회고록을 따라 충실하게 묘사했다. 그는 여성 편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했지만 직접적인 성관계에 대해서는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피했다. 가령 “우리는 먹고 마시고 놀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식이었다. 나 역시 그 성관계를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그와 동일한 성적인 에너지를 표현할까 고민했고, 먹는 것으로 그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카사노바 역할을 맡은 사람은 원래 배우가 아니라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예술 큐레이터라고? =그렇다. 원래는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갤러리 오프닝에 가거나 하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카사노바의 오래된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이 카사노바와 닮았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것을 파졸리니적인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배우로 쓰고 싶으면, 그에게 일부러 설명하기 어려운 주소를 물어 말을 길게 하게 만든 다음 그의 제스처나 성격을 파악하여 캐스팅하곤 했다. 배우를 본능으로 고른다고 할까. 물론 이 방법엔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을 쓰는 건 너무 재미없는 일이다.

-화면이 아름답다. 촬영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작품수가 늘어나면서 통제도 좀 많아졌지만 그래도 나는 촬영감독과 배우에게 많은 자유를 주는 편이다. 현장엔 모니터도 없다. 찍은 걸 바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고전 영화감독들이 어디 자신이 영화를 어떻게 찍고 있는지 볼 수나 있었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분위기를 감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한 말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리허설 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지겹다. 지겨운 과정을 반복할 거면 공장에 가야지 영화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일상의 시간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에 새겨 넣기 위해 영화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의 매 순간들은 독특하고 특별해야 하며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즉흥성을 갖고 일해야 한다. 그래서 편집하다 보면 항상 새로운 영화가 나오게 된다.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이다. 처음에는 4:3 비율로 촬영했다. 그런데 촬영 중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촬영감독에게 나는 일부러 말하지 않고 촬영을 마쳤고 후반작업 중에 고쳤다. 미리 예상치 못했던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던 거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알고 하는 건 그냥 지루한 결과만 가져오게 된다. 그렇지 않은 방식을 통해 아름다움이 나올 때 그게 정말 아름다운 거다.

-당신이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역사 또는 문학의 인물로는 또 누가 있나. =물론, 예수가 있다. 과거에 한 번 제안 받은 적이 있지만 사정상 할 수 없었다. 나는 특히 예수가 행한 첫 번째 기적에 관심이 간다.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것 말이다. 그건 예수가 행한 기적 중에서 도덕과 무관하게 재미로 한 유일한 기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적을 행할 능력은 있지만 아직 도덕적 리더는 아니어서 그냥 순수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그 시기의 예수, 그가 지닌 이중성과 복합성에 흥미를 느낀다.

-언젠가는 그걸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꽤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인데, 그 내용을 웨딩 비디오의 느낌으로 찍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