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철 전 아시안필름마켓 실장은 올해 초 보직을 옮겼다. 바뀐 명함의 직함은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다. 마켓 시절 영화 세일즈 관계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지금은 관객에게 만족할 만한 영화를 소개하는 게 그의 임무다. 지난 3년동안 국내외 영화 세일즈 관계자들이 원활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했던 마켓 일과 달라 처음에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프로그래머는 처음이라 새로운 도전이었다. 좋은 영화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깜짝깜짝 놀라는 작품을 적지않게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로서 작품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올해를 대표할 만한 한국영화를 꼽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젊은 감독과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다. 신인, 독립영화, 장르영화 가릴 것 없이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좋은 영화가 풍성했다. 이 작품들을 각 부문에 골고루 배치하는 게 힘들었다. 나로서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느낀 발견의 기쁨은 올해 영화제 각 부문에 고스란히, 그리고 고루 반영되었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 등 거장의 작품부터 뉴 커런츠, 비전 부문에서 상영되는 젊은 감독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된 라인업은 심심한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 중에서도 “충분히 리메이크가 될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훌륭한 <보호자>(감독 유원상), 만화적인 상상력과 캐릭터가 돋보인 <족구왕>(감독 우문기), 신선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액션영화 <다이너마이트맨>(감독 정혁원)” 등을 추천작으로 꼽았다. 세 편 모두 독립영화의 이전 경향과 구별되는 특별한 작품들이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장르영화와 독립영화의 간극이 컸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그 간극이 많이 좁혀졌다”면서 “과거 독립영화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고민이 부족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기획력이 강한 독립영화가 많았다”고 올해 한국영화의 경향을 간추렸다. “<더 테러 라이브>가 작가의 아이디어와 상업영화의 시스템이 결합해 성공한 것처럼 이러한 변화는 한국영화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