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그 영화들을 다 부산으로 가져오지 못해 힘들었다. 영화제 전체 상영작 수를 300편 이내로 맞추려다보니 그런 건데, 점점 영화를 선택할 때 고려할 것이 많아졌다.” 이수원 월드시네마 프로그래머의 얘기는 그만큼 올해 월드시네마 섹션이 후회 없는 선택지들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우선 올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영화들은 빠짐없이 부산에서 소개된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시저는 죽어야 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는 “관객을 위해서 가져올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다. 거장들의 신작이나 작가 감독들의 프리미어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필수다. 거기에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낯선 나라의 영화들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서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수원 프로그래머와 독일과 동유럽 지역을 맡고 있는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올해 대륙별, 지역별 명암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전통적 영화 강국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유럽의 경제위기는 전반적으로 유럽 영화 산업의 침체를 가져왔다고 한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포르투갈, 헝가리 같은 나라는 경제위기로 인해 베를린영화제 필름마켓에 부스를 차리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중남미 지역은 자국영화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남미의 전통적 영화 강국인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콜롬비아, 칠레 등 중남미 영화의 수준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중남미 영화의 약진을 확인하고 싶다면 <소금> <균열> <사하라의 선생님>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칠레영화 <소금>은 아르헨티나 출신인 디에고 루히에르 감독이 서부극에 집착하는 스페인 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자기 반영적 웨스턴 영화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인용과 뒤집기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장르영화”라고 <소금>을 설명했다.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서 상영되는 콜롬비아 영화 <균열>은 알폰소 아코스타 감독의 데뷔작이다. 딸이자 누이인 한 여인의 죽음 뒤 남겨진 가족이 휴식을 위해 산속 외딴집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잔혹 동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상영되는 <사하라의 선생님>은 아프리카의 서사하라와 남미의 쿠바를 오가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지역적 이동으로 인해 싹튼 사랑을 이야기의 바탕에 깔아 인간사적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영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 세 영화의 감독이 모두 부산을 찾는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진 독일의 영화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독일 감독의 요람 중 하나인 DFFB(Deutsche Film-und Fernsehakademie Berlin, 독일영화텔레비전아카데미) 출신의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이 대표적이다. DFFB를 중심으로 독일의 새로운 감독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더 이상 빔 밴더스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겠다 싶을 만큼 (웃음) 젊고 힘있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바바라>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바바라> 역시 부산에서 상영된다. <여자의 호수>는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쳐내고 쳐내고 쳐내서 부산으로 가져온 독일영화” 중 한편이다. “중년의 레즈비언 커플이 젊은 레즈비언 커플을 만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유혹하는 이야기로, 감정의 파고를 섬세하게 따라가는 멜로드라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또한 합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동유럽권 영화 중에서 <아버지의 자전거>와 <유마>를 개인적 추천작으로 꼽았다. 오픈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는 <아버지의 자전거>는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폴란드에서 직접 발견한 영화다. 폴란드와 체코의 합작영화 <유마>는 웨스턴 스타일로 폴란드 젊은 세대의 타락해가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두 프로그래머가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올해 월드시네마 섹션은 거장의 숨결은 물론이고 약진하는 대륙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빼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