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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비극 위에 간절히 희망을 쓰다
2010-10-12

특별기획 프로그램 ‘쿠르드 시네마: 지배당하지 않는 정신’

어쩌면 모든 것은 2009년 칸영화제의 한 극장 앞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바흐만 고바디의 <아무도 페르시안 고양이를 모른다>를 보기 위해 줄을 서있을 때였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초짜 아시아 영화 프로그래머인 나를 세워놓고 바흐만 고바디 감독에 대해 설명하며, ‘쿠르드 시네마’에 대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년에 쿠르드 시네마 특별전을 할 터이니 준비를 시작하라 하명했다. 당시 나는 필리핀 특별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였다.

쿠르드 시네마 특별전 때문은 아니었지만 두바이 영화제와 카타르에서 열린 알자지라 다큐멘터리 영화제로의 출장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것은 중동지역 혹은 아랍권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는 기회였다. 즉, 우리가 별 저항 없이 ‘자살테러범’이라 부르는 이들은 그들에게 ‘순교자’였고, 우리에게 친숙한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주적’이었다. 우리는 같은 아시아를 살지만 너무나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낯선 세상에서 ‘쿠르디스탄’과 그 잃어버린 땅의 사람들인 ‘쿠르드족’은 더욱 낯선 존재였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쿠르드족

우리나라 인구수에 맞먹는 약 4500만의 인구를 지닌 쿠르드족은 나라 없이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혹자들은 그들의 수가 2500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떤 나라는 ‘쿠르드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쿠르드의 독립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를 늘리고, 반대하는 이들은 수를 줄이며 한편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여전히 부인한다. 이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쿠르드족은 그래서 복잡다단하고 가슴 답답한 처절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쿠르디스탄은 아랍 4개국의 접경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라크, 이란, 터키 그리고 시리아가 이 지역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맞은 수많은 민족국가와는 달리 천연자원과 정치군사적 요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쿠르디스탄은 독립을 얻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제3세계에 독립권을 부여했던 세계열강들은 중동아랍권 국가들이 석유를 중심으로 얻은 권력을 넘지 못하고, 쿠르디스탄과 맺은 협정들을 잇달아 파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국가 건설을 꿈꾸며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쿠르드족은 비극적인 20세기의 역사를 써가기 시작했다.

쿠르드 영화는 바로 이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태어났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폭력과 억압 속에 성장한 쿠르드 감독들은 좀처럼 민족적 배경을 떠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 영화 만들기를 통해 그들만의 ‘성전’을 치루는 듯하다. 그래서 쿠르드영화는 특별한 ‘내셔널 시네마’로서의 성격을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적극성을 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비극에서 태어난 희망의 역설

이야기가 너무 딱딱하게 흘렀다. 여기에 쿠르드족이 견뎌야 했던 인종말살정책까지 곁들인다면 쿠르드 영화는 급속도로 어둡고 우울한 영화로 채색될 것이다. 쿠르드 특별전과 관련된 인터뷰마다 쿠르드 영화가 얼마나 희망적인가에 대해 역설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쿠르드의 어두운 역사를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쿠르드의 어머니>를 예를 들어보자. 이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되는 쿠르디스탄의 작은 마을에는 남자가 없다. 남자가 없으니 아이들도 없다. 왜 남자가 없을까?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독립을 약속해주는 나라나 단체를 위해 수많은 쿠르드 남자들이 전쟁터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담 후세인 정권하의 이라크가 지독한 인종말살정책을 자행함으로써 어떤 지역은 약 8천명의 남자가 일순간에 학살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살상용 가스무기를 살포해 수백명의 어린아이들이 몰살당해 그들이 공부하던 학교가 순식간에 묘지로 변하기도 하였다. 이런 잔인함은 이라크에서 끝나지 않는다. 터키 역시 만만치 않다.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의 배경인 터키의 디야르바키르-쿠르디스탄 지역은 쿠르드인에 대한 무차별 총격이 가해지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쿠르드 저항군으로 보이거나 관계가 있다고 보이는 쿠르드인들은 이유 없이 살해된다. 이 영화에서 삼남매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부모가 살해당한다. 부모의 죽음을 하소연할 곳도 없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의 죽음 이후 이들은 버려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쿠르드 저항군에 연루된 이상, 어떤 쿠르드 친척도 이들을 맡아 키워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삼남매는 버려진다. 집안의 가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결국 집에서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 터키의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의 숫자는 상당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장통에서는 실제로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른다. 우리에게 영화적 비극이지만 쿠르드 어린이들에게 이것은 삶이다.

그렇다면 쿠르드 시네마가 희망적이라는 나의 주장은 거짓일까? 아니다. 그건 영화를 보면 분명히 알 것이다. 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쿠르드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인간애를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쿠르드영화들은 고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비극을 몸에 감은 이들은 조용하게 희망과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슬퍼서가 아니라 이들이 품은 그 지독한 내일에의 믿음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 <크로싱 더 더스트>는 이 분야에서 그 으뜸에 서있다. 영화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후세인 정권 하에서 장남의 이름을 ‘사담’이라고 지으면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라는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쿠르드 저항군이 급식을 전달하기 위해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들 앞에 길 잃은 아랍소년이 유령처럼 서서 길을 막는다. 소년을 돕기 위해 차가 멈춘다. 소년의 이름은 ‘사담’이다. 한 남자는 소년을 길 잃은 가엾은 소년으로 본다. 다른 남자에게 그 소년은 어린 ‘사담’이다. 가족을 살해한 괴물이다. 한 남자가 소년을 도우려 할수록, 다른 하나는 그 소년을 버리려 한다. 한 남자는 어떻게 어린 소년에게 잔인하게 굴 수 있는지 이해 못하고, 다른 남자는 어떻게 이 ‘사담’을 용서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쿠르드족이 사담정권에서 겪었던 처절함은 모든 복수심을 정당화시키고도 남는다. 이들에게 용서와 화합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단어인가! 결국 이 영화는 용서와 평화를 택한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복수하는 카타르시스보다 고집스럽게 평화를 선택하는 지독함이 오직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희망이 아니어도, 지배당하지 않는

그렇다. 이 지독함이 이 특별전의 제목을 ‘지배당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지은 이유다. 그들의 몸은 비록 모래사막 밑에 묻힐지언정 고고한 정신만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쿠르드 특별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쿠르드 이야기인 <바빌론의 아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이 영화는 실종된 지 12년 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쿠르드 소년과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소년은 이 여행을 원치 않았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보여줄 것을 약속한다. 향수병에 걸린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공중정원의 아름다운 왕비가 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 왕비처럼 모래먼지 자욱한 사막을 통과하는 긴 여행은 소년에게 지독한 현실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서 소년의 눈앞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공중정원이 나타난다. 그 광경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때 아랍의 왕이 아름다운 쿠르디스탄 왕비에게 바쳤던 사랑의 상징이 그저 전설이 아니길, 그 소년의 눈길이 환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글 조영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