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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젠슈테인은 나의 영웅”
2001-02-22

<문 앞의 적>감독과 배우 인터뷰

시사 직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지하에서 열린 <문 앞의 적> 기자 회견은, 영웅 바실리를 외치던 가련한 러시아 병사들처럼 “주드”를 애타게 부르는 사진기자들로 작은 북새통을 이뤘다. <연인> <티벳에서의 7년> 등, 영화로 여행하기를 말하자면 지난해 개막작 감독 빔 벤더스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온 장 자크 아노 감독은, 개막 7일 전에야 LA에서 영화를 완성했다면서도 ‘숨찬’ 기색없이 질문에 응했고 후르시초프 역을 한 봅 호스킨스는 예의 날카로운 유머로, 주드 로는 짐짓 가장한 무심함 사이에 튀어나오는 열정으로 장내를 즐겁게 했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러시아영화의 영향이 있었다면.

장 자크 아노 나는 프랑스의 이덱에서 마르크시스트 조르주 사둘에게 영화사를 배웠고, 에이젠슈테인, 푸도프킨의 초기 소비에트 서사극과 타르코프스키의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영향을 받았다. 에이젠슈테인은 언제나 내 영웅이다.

▦<문 앞의 적>은 전적으로 독일에서 촬영했는데.

아노 <장미의 이름>을 만들면서 독일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독일 스탭들은 비싸지만 신뢰할 수 있다. <문 앞의 적>은 스튜디오에서 광장이 멀지 않은 도시, 볼가강 도강 장면을 찍을 수 있을 만큼 폭넓고 교통량이 많지 않으면서도 물고기 피해를 줄일 수 있는(웃음) 강이 필요했고 베를린이 그랬다. 러시아 이민 공동체의 존재도 중요했다.

▦역할을 수락한 이유와 준비과정이 궁금하다.

주드 로 말보다 육체로 자신을 표현하는 스트레이트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전쟁은 잘 풀릴 수 없는 내 믿음을 확인했다. 조작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촬영장의 열기가 우리의 진을 빼놓았다.

레이첼 와이즈 몸을 단련하고 르포와 관련자료를 탐독했다. 장총을 베고 자는 러시아 여인의 사진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다.

봅 호스킨스 다행인지 불행인지 냉전기 독재자들은 다 (나처럼) 중년에 땅딸막하고 머리가 벗겨졌다. (폭소)

▦이 영화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아노 가슴으로 다가오는 서사극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제 영웅에 집중하지 않고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음을 안다. 저격수 눈동자의 극 접사는 갈등과 혼돈을 담은 이 영화 최고의 아름다운 스펙터클이다.

▦왜 에드 해리스 역에 하고 많은 독일 배우를 안 썼나.

아노 처음부터 영어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고 영미권 배우에게 억지로 독일식 악센트를 쓰게 하는 것은 영화를 부실하게 할 따름이다. <장미의 이름>을 찍을 때 주변 사람이 악인에게 독일식 억양을 주는 것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훨씬 좋을 거라는 소리를 해서 기함을 한 적이 있다. 독일인 역을 독일배우에게 시키는 것도 일종의 클리셰가 될 수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 레드 라인> <진주만>까지 전쟁영화 르네상스인 듯하다.

아노 나는 늘 본능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 영화 시나리오 단계에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야기를 듣고 놀라긴 했다. 전쟁은 항상 역사의 일부 아닌가.

▦제작자 압력으로 엔딩의 변화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아노 절대 ‘아니다’. 이 영화의 자본주들은 무척 사려깊었다. 파이널 컷은 완벽하게 내 것이며 사운드 하나 이미지 하나도 모두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유럽에서는 LA에 악마라도 사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겪은 할리우드는 간섭도 없고 대단히 기분좋았다. 잘라낸 분량이 많다는 소문도 사실과 다르다. 내 평생 이만큼 찍은 걸 찌꺼기 없이 알뜰하게 활용한 영화도 없다.

▦인간적 차원에서 훌륭한 스토리다. 그러나 역사극으로서 진정성을 책임질 수 있나.

아노 만약 러시아인만 러시아의 입장을, 독일인만 독일인의 입장을 말할 수 있다면 슬픈 일일 것이다. 스스로를 프랑스 스토리에 얽매고 싶지 않다. 스탈린그라드에서 100만명이 죽었다면 100만개의 관점이 가능하고 나는 그중 하나를 보여준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