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비평은 소비자주의가 대세인 듯 보인다. 각 비평지의 고유색은 조금씩 퇴색되고, 비평이 시네필만의 전유물이던 시대도 지났다. 인터넷 비평의 범람, 그리고 사적인 취향의 공유는 많은 것을 도래하게 하는 동시에 또 많은 것을 앗아갔는데, 올해 전주의 마스터클래스가 돋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순한 명성을 넘어, 이 자리에 모인 세 명의 평론가가 나누게 될 이야기는 시대적 흐름에서 고려되어야 할 일종의 문화적 담론이다. 비평의 위기라 불리는 최근의 흐름을 살필 때 비평문화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본 강연은 꽤 의미 있어 보인다.
레이몽 벨루와 ‘표현력 중심의 비평’
파리 3대학 교수이자 현대 평단에서 가장 의미 있는 비평가 중 하나인 프랑스의 레이몽 벨루(Raymond Bellour)는 필립 그랑드리외의 <호수>(2008)와 크리스 마르케의 <레벨 5>(1996) 두 편을 들고 온다. 63년 <Artsept-제7의 예술>을 창간했던 이력을 기반으로 그가 <트라픽>의 창간에 관여한 것은 1991년이다. 당시 시네필 취향의 월간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 세르주 다네를 중심으로 <트라픽>은 ‘어떻게 기존 평단과 거리를 둘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는데, 결국 문화적 사건을 폭 넓게 다룬<리베라시옹>을 일례로 이 비평지의 특성은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즉, 주제의 타당성보다 비평의 고유한 리얼리티 유지가 목적이 된 계간지 <트라픽>은 저널리즘 비평의 극단적 단순함과 폐쇄성을 배제하는 동시에, 특정 작가 군단을 비평적으로 무장시키는 데 앞장서는 비평지로 자리매김한다.
올해 전주를 찾은 <영화보다 낯선>의 ‘스티븐 드워스킨’을 비롯해 우리에게 친숙한 ‘마노엘 데 올리비에라, 샹탈 애커만, 필립 가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이 이름을 알린 것이 바로 <트라픽>을 통해서다. 여기에 레이몽 벨루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필립 그랑드리외’가 속한다. 2000년까지 지속적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던 그의 전적, 그리고 <음지>(1998), <새로운 삶>(2002)으로 이어지는 외재적 관점에서 살피는 본 강연을 통해 벨루는 작가 특유의 세계를 보는 방식, 그리고 육체와 제스처에 관한 시선과 독창적 음향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어 상영될 <레벨 5>는 본격적 실험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만 이 영화의 실험적 강도는 앞서 소개된 <호수>보다 강해서, 소위 말하는 내러티브 실험영화의 영역을 넘어 현대미술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 이른다. 국내에선 아녜스 바르다, 알랭 레네와 함께 좌안파 감독으로 유명한 크리스 마르케지만 이번만큼은 그를 향한 이런 시선을 잠시 접자. 마르케를 소개하기 위해 벨루는 여전히 외재적 관점을 유지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력중심의 비평’이 본 강연의 중심이다. <레벨 5>는 컴퓨터를 주제이자 도구로 취한 영화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 <환송대>와 에세이적 다큐멘터리 <태양 없이>의 연장선상에서 분석되는데, 여배우가 등장하고 공상 과학적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환송대>와 겹쳐진다면 ‘오키나와 전투’를 공통분모로 시작하는 점에선 <태양 없이>의 속편으로 읽히기도 한다. 여기에 벨루는 ‘앙드레 바쟁, 세르주 다네, 들뢰즈’ 등 기존 평론가의 입장을 덧붙인다. 어쩌면 비평적 정통성의 선두에 선 레이몽 벨루가 들고 온 두 작품이 모두 실험적이라는 것은 총체적 의미에서 영화평론의 역할을 말하려는 듯 느껴지는데, 결국 비평가와 작품이 주고받는 상호 작용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가 평론의 존재 이유임을 벨루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증명한다.
아나키즘 영화연구의 선구자, 리처드 포튼
리처드 포튼(Richard Porton)은 기존의 그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다진다. 아나키즘 영화연구로 유명한 포튼의 전적을 살펴 짐작하듯 <WR : 유기체의 신비>(1971)는 ‘아나키즘 영화’이다. 2001년 광주영화제 방문 당시 그가 밝힌 바와 같이 신시아 루시아(Cynthia Lucia)와 그가 공동편집장으로 있는 미국의 <시네아스트>는 여전히 ‘영화와 정치를 다루는 전방위 잡지’의 대표격이지만 67년 창간 당시와 달리 지금은 조금 현대적 느낌이 더해졌다. 비록 정치적인 문제와 완전히 결별하진 않더라도 대중의 취향이 반영된 헐리웃 영화의 리뷰를 싣는 것은 이 전통 비평지가 살아남기 위한 유기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포튼이 여전히 전투적이고 유효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것은 반갑다. 두상 마카베예프의 영화 <WR : 유기체의 신비>를 소개하는 그의 비평은 크게 두 가지 논점에서 나눠지는데 ‘레이몬드 더그넷, 폴 아서, 짐 호버만’ 같은 주요평론가의 논평을 중심으로 콘텍스트 비평을 소개하는 것이 강연의 첫 번째 부분이라면, 후반에서 그는 아나키스트 영화의 전통에서 ‘아나키스트적 리얼리즘’을 다루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분해할 것이다. 이중 레이몽 벨루와 달리 포튼이 작품을 맥락적 접근에서 비평한다는 점은 특이할만하다. 이를 위해 그는 문학평론가들이 일컫는 -현상기술(thin description)에 비견되는- 심층기술(thick description)을 언급하는데, 평론가 저마다의 다양한 작품접근법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어 줄 것 같다. 여기에 아나키즘적 영화 읽기가 ‘영화 분류’의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이자. 루이 브뉘엘의 경우 영화사(史)학자들에게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되지만 들뢰즈에게 ‘자연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저서<영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에서 포튼은 브뉘엘을 ‘아나키스트’로 분류하는데, 영화의 사적분류에 싫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 강연이 ‘아나키즘 영화의 분류’를 경험할 새로운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비평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에이드리언 마틴
마지막으로 웹진 <루즈>의 편집장이자 호주 출신의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Adrian Martin)은 평론계의 가장 독특한 부류 ‘창조적 비평(creative criticism)’을 소개한다. 올해 초대된 비평가 중 가장 젊은 그는 자신의 관점이 아닌 비평계에 존재하는 극단의 관점 중 하나를 끌어오는데, 이가 바로 화가이자 성상 파괴적 평론가인 ‘마니 파버(Manny Farber)’다. 작년 타계한 파버의 추모를 위해서도 의의가 있어 보이는 이 강연을 통해, 마틴은 파버의 영화비평이 과학이나 객관적 영역을 벗어나 평론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제스처로 환기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마니 파버의 비평가적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94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필름 컬쳐>를 비롯한 다수의 저널에 영화평을 기재했다면, 70년대 말부터는 일절 비평용어와 단절한 채 오직 ‘그림’만을 통해 영화를 말하는 소위 천재적 괴벽을 선보였다. 따라서 본 강연 전 상영된 모리스 피알라의 74년 작 <벌어진 입>은 파버가 좋아했을 법한 영화를 에이드리언 마틴의 임의대로 선정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진행된 일부 강의와 예술작업을 통해 추측한 그의 취향을 고려해 마틴은 ‘허우 샤오시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키아로스타미’ 등 파버가 사랑한 작가의 리스트에 ‘모리스 피알라’를 추가한다. 아직까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는 파버의 평론 -기이한 것, 강박적인 것, 심지어 변태적인 것까지 천착하는 파버적 ‘표면탐구’가 궁금하다면 이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창조적 비평은 비평의 지평을 확장하고 글쓰기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제스처로 격상시켜 이른바 ‘비평의 예술적 대안’이라 불릴 만큼 매혹적인 영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