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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첩보액션의 할리우드적 기원
주성철 2008-07-22

한국영화 회고전 ‘코드네임 도란스’한국 첩보액션영화 8편 소개

‘코드네임 도란스’라 이름 붙여진 올해 한국영화회고전은 왕년의 한국 첩보액션영화 모둠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8편은 그 중에서도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액션의 공간을 확장해 나간 작품들이다. 도쿄와 홍콩을 중심으로, 팜므 파탈의 음모와 007 첩보가 펼쳐지는 동아시아 첩보활극은 당시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반공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에 대한 집단적 매혹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은 당시 아시아 경제의 성장과, 해외 로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길을 걸었던 홍콩이나 일본영화계와 비교해볼 때 한국첩보영화가 지닌 독특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해외 로케이션과 할리우드 상업 장르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이른바 한국영화 세계화 전략의 초기적 형태였다. 이전 한국액션영화의 대표배우들이었던 장동휘, 박노식, 허장강, 오지명, 문오장, 황해, 이대엽 등이 여전히 이 장르에서도 맹활약했음을 떠올려보면 이들 첩보활극은 당시 한국액션영화의 대형화 경향이 산업과 조우한 경우이기도 하다.

이번 회고전에서 아쉽게도 막판에 상영 취소된 <홍콩에서 온 마담 장>(1970)은 당시를 풍미했던 장동휘, 박노식, 오지명이라는 흥행배우들로 이뤄진 첩보액션영화다. 어렸을 적 일본 헌병인 박준철(장동휘)에게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과도 헤어진 미령(정혜선)은 홍콩으로 건너갔다 세월이 흘러 귀국한다. 준철은 이제 범죄조직의 보스가 되어 마약밀수를 하고 있는데 잠복형사인 영철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 송민식(박노식)이라는 이름의 건달이 박준철에게 접근해서는 김치수(오지명)에게 정보를 넘기며 양쪽을 교활하게 오간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준철의 딸 연실이 미령 집의 가정교사이자, 미령의 헤어진 동생인 영철의 애인이다.

지금은 탤런트로 더 인기 있는 정혜선이 마담 장을 연기한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다른 세 여자와 함께 ‘못난 남성들을 저주하고 처단하기 위한’ 여성 결사대의 리더다. 서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각자의 피가 섞인 술잔으로 건배를 하기도 한다. 차를 타고 다니다 분홍색 마스크를 쓰고 남자들과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하다. 또한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무척 웃기다. 당시 김효천 감독의 액션영화에서 멋진 호흡을 과시했던 장동휘, 박노식, 오지명, 그리고 가끔 그들 사이에 끼었던 문오장까지 남자배우들의 캐스팅은 화려하지만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 결사대가 펼치는 액션이다. 물론 액션보다는 그 속에서 가족과 사랑이 뒤엉킨 신파적 요소가 영화의 핵심이다.

최인현 감독의 <황금70 홍콩작전>(1970)은 최무룡과 신성일, 그리고 윤정희라는 특급스타를 기용한 야심작이다. 중국으로부터 위조화폐를 들여와 홍콩의 경제를 무너뜨리려는 중국 첩자들의 움직임 속에, 북한 첩보조직과 남한 정보원이 얽혀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다양한 공간을 담아낸 홍콩 로케이션이 볼만한데 최인현 감독은 당시 신상옥 사단 내에서 ‘우 (이)형표, 좌 (최)인현'이라 불릴 정도로 주목받던 감독이었다(이번 회고전에서 이형표 감독의 작품은 <아가씨 참으세요>(1981)가 상영된다).

역시 최인현 감독의 작품인 <엑스포70 동경전선>(1970)은 <황금70 홍콩작전>과 비교하자면 도쿄와 오사카를 무대로 했음에도 다소 밀도가 떨어진다. 조총련은 북한으로부터 오사카에서 열리는 엑스포 70을 기하여 방문하게 될 한국인을 납북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에 조총련에서는 허선생(허장강)을 중심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대대적인 포섭공작을 전개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공작에 넘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민완정보원인 박동근(박노식)이 조총련의 본거지에 잠입해 그들의 만행을 폭로한다. 무엇보다 만화 <20세기 소년>에도 등장하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만박) 자료화면이 그대로 등장하면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박노식의 내레이션이 덧씌워진다. 영화를 위해 촬영된 장면이 아니라 기존의 자료화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 같은 무리수가 보이는 것. 물론 그로 인해 실제로 <20세기 소년>에서 볼 수 있었던 당시 만박의 실제 구조물들을 자료화면으로 구경할 수 있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긴 하다. 거기에는 이미 북한에 있던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딸을 포섭해(딸은 어머니의 존재를 모른다) 평양으로 데려가려는 장면도 삽입돼있는 등 첩보영화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당시 만박은 아시아에서 꽤 흥미로운 영화 소재였는데 홍콩에서도 일본 로케이션으로 하리리 주연의 <찬석염도>(1970)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7)는 올해 8월 개봉 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신작 <다찌마와 리>의 부제이기도 하다. 당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화려한 액션연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박노식의 연출 작품이기도 한데, 장님이 된 박동혁(박노식)과 한예지(안보영)가 펼치는 가슴 아픈 액션 멜로드라마다. 광복 이후 일본군 패잔병들에 의해 눈이 먼 동혁은 세월이 흘러 역시 복수를 꿈꾸는 예지가 도와주면서 그들을 하나둘 처단한다. 동혁을 위해 눈이 돼 주는 예지의 모습과, 눈이 먼 채로 갖가지 살해 기술을 익혀 사용하는 모습이 현재의 시선으로는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일본군과 금이라는 당시 한국액션영화의 단골 소재들이 이전과 달리 진지한 모습만 보여주는 박노식의 이미지와 맞물려 큰 화제를 낳았다. 이들 첩보활극에 늘 등장했던 당시 수준의 자동차 액션도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한국형 장르영화의 욕망과 그를 가로막는 내셔널 시네마의 근원적 경계 사이에서 이들 첩보활극은 작품성을 떠나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박노식, 영원한 한국액션영화의 용팔이

지금이야 이른바 ‘조폭영화’의 대표언어가 거칠고 짧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지만 왕년에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용팔이’ 박노식이 대세였다. 김효천 감독의 액션영화 <팔도사나이>(1969)의 전라도 출신 용팔이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는 알다시피 배우 박준규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동휘, 오지명 등과 더불어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쾌남' 중 하나다. <팔도사나이> 이후 시골 꼬마들도 외쳐 부르는 별명이 된 용팔이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더불어 검은 장갑의 호쾌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박노식은 시대를 풍미했던 또 다른 액션 스타들인 이덕화의 아버지 이예춘,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 그 외 장동휘, 신영균, 장혁의 다음 세대지만 마도로스 박이니 상하이 박, 혹은 용팔이라는 구체적인 캐릭터로 기억된 배우라는 점에서 좀 더 남다른 친근감이 있는 배우였다. 물론 그 친근감에는 실제 전남 순천 출신인 그가 구사하던 전라도 사투리라는 끈끈한 언어적 매개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박노식은 6.25 전쟁 후 악극단에서 가수 및 연기 활동을 했고 드디어 <격퇴>(1956)로 충무로에서 데뷔하게 된다. 이후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이대로 죽을 수 없다>(1964), <마도로스 박>(1964), <배반자 상하이 박>(1965) 등 제목만으로도 활력이 느껴지는 일련의 액션영화들에서 능글능글하면서도 순진함과 의리로 똘똘 뭉친 멋진 사나이로 등장했다. 종종 일제치하 불굴의 독립군으로 출연하던 시기도 이 즈음이었으니, 이후 그가 여러 첩보활극에서 (일본군이 변한 모습처럼 보이는) 북한 스파이들을 처단하는 역할로 출연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후 용팔이가 인기를 끌면서 <돌아온 팔도사나이>(1969)도 만들어졌고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 <역전 출신 용팔이>(1970) 같은 아류작도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용팔이 뿐만 아니라 제목에 '명동'이나 '홍콩', '상하이'가 들어가는 어지간한 영화들도 꼭 그를 거쳐 갔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레 첩보활극 장르의 주인공으로도 이어졌는데 <엑스포 70 동경전선>(1970)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모자를 눌러쓰고 시골 청년처럼 만박을 거닐며 감탄하는 그의 구수한 모습)은 그냥 왕년의 용팔이 그대로다.

박노식의 인기에는 묘한 데가 있었다. 물론 그는 30대 때부터 인기 액션스타였지만 1930년생인 그가 용팔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거의 마흔 살이 된 다음부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동휘나 신영균이 고뇌하는 영웅들이었던 데 반해 그는 적재적소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때로 ‘몸 개그’를 마다하지 않던 코믹 마초였다. 박노식이 실제 아들 박준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하는 영양제 CF가 장안의 화제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코믹한 이미지를 앞세워 액션영화의 대스타가 됐던 그는 이후 감독을 겸업하게 된다. <인간 사표를 써라>(1971), <작크를 채워라>(1972),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등 역시 제목만으로도 그 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감독이 된 후의 그는 배우를 겸업하면서도 주로 진지한 모습으로 등장할 때가 많았다. 장님으로 등장하는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그 변화의 가장 극명한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