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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치 세대의 현실적인 영화

올해 상영되는 한국 단편영화의 경향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된 한국 단편은 총 610편이었다. 작년의 512편보다는 무려 20% 가량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역대 전주영화제 사상 가장 많은 단편이 출품된 것이다. 덕분에 선정 위원들은 겨울 내내 단편영화만 봐야 했다. 제작비가 많은 드는 필름영화가 옛말이 된 디지털 시대에 젊은 감독들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꽤 긴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제작비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의 선택이었으리라. 이래저래 겨울방학은 단편과 씨름하며 보내야만 했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단편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슴 설레기도 했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올해 전주에서 상영되는 단편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경향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이후 남한 사회에 등장한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젊은 감독들의 조망권 안에 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단편 영화가 영화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곧 사회에 진출할 그들이 바라본 우울한 양극화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김현성), <한성이발소>(송현정), <고함>(배종대), <00씨의 하루>(박정훈) 등의 영화에서 비정규직 문제, 노인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노동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드라마에 충실한 영화로서, 탄탄한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거나 고발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현실 문제를 비판 고발하려는 경향 많아

다음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경향은 신화적 구조나 종교적 색채를 띤 영화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경향의 영화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와는 상반된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적 구조나 종교적 색채를 띤 영화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거나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주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신화적 구조를 통해 다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시간과 공간,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십우도4- 득우, 두 모과>(이지상), <연화>(임성현), <네 쌍둥이 자살>(강진아), <전병 파는 여인>(김동명) 등의 영화가 이런 경향의 영화들인데, 탄탄한 드라마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 중심의 영화가 많았다.

세 번째로 거론할 수 있는 경향은 자신만의 영화언어로 사유를 풀어내는 영화들이다. 단편 영화를 보면서 가장 즐거울 때가 바로 이런 영화를 볼 때인데, 이들의 영화는 젊은 패기로 뭉친 영화, 충무로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상상력으로 보는 이의 허를 찌르는 영화, 기존의 영화를 뒤집으면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로새겨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의 영화로는 <불을 지펴라>(이종필), <기차를 세워주세요>(한지혜), <수정탕 둘째 딸>(박이웅), <모퉁이의 남자>(이진우)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올해 출품된 영화의 독창적인 상상력에 그리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는 않았다. 점점 정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올해 출품된 영화들은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들이 존재한다. 세대 갈등을 코믹한 장치로 풀어낸 <외할머니와 레슬링>(임형섭), 운동선수의 상처를 독특한 편집과 수중촬영으로 담아낸 <너의 세계>(서재경), 이미지의 연결만으로 실험적 리듬을 창조해낸 <숨>(장민용, 2007), <동면>(이장욱, 2007) 등의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단편영화도 풍성하고 다양하다. 현실적 문제를 다루거나 신화적 구조를 지니고 있거나 젊고 패기 있는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올해 상영작 가운데 다큐멘터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