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오래된 이발소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담고있다. 늙은 이발사의 하루 수입은 고작 16,000원 이지만, 이발소의 문을 닫기 전 그는 수첩에 투박한 손으로 소중하게 자신의 노동을 적고 있다. 사소함 속에 묻어있는 삶의 잔상을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조명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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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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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산동네 한 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이발소. 이제는 찾는 이도 거의 없는 한적하고 외로운 곳이지만, 이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직한 노인 이발사는 일찌감치 나와, 이곳을 정갈하게 닦고 쓸며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그러나 하루 종일 이 쓸쓸한 공간을 지켜봤자 찾는 손님은 채 두 서너 명이 되지 않는다. 오후 무렵, 어린 손자와 함께 이발소를 찾은 마을 노인은 얼마 전에 죽은 친구의 소식을 전한다. 묵묵히 그의 말을 듣던 노인은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 서랍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한 장more
한 장 넘겨가며, 죽어버린 친구의 이름에 기다란 선을 그려 넣는다. 수첩에는 이미 그의 이름 말고도 다른 많은 이름들 위에 긴 선이 그려져 있다. <한성 이발소>는 특별한 내러티브를 전개하기 보다는 산동네에 위치한 낡은 이발소의 하루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작은 이발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 빛 속에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노인 이발사의 육중한 움직임과 고즈넉한 일상은 그의 가난한 삶에 깊이를 부여해 준다. 저녁 무렵, 이발소 한 귀퉁이에 외롭게 앉은 그가 수첩을 통해 정리하는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은, 이 노인이 살아가고 있는 황혼의 삶이 주는 묘한 우울함과 페이소스를 잘 전달한다. (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