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영화읽기] 욕망과 무의식의 무대, GP

군대라는 신체 혹은 숙주에 기생하는 공격본능 보여준 <GP506>

GP506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몰살사건이 발생한다. 육군참모총장의 아들이 소대장으로 있던 곳,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진상은 은폐되고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허용된 시간은 하룻밤. <GP506>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GP(Guard Point)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최전방감시초소다. <GP506>의 GP가 알레고리의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수창 감독은 전작(<알포인트>)에 이어 다시 한번 군대 이야기를 한다. 그의 군대 이야기는 무용담이 아니라, 무용담의 이면(裏面)에 대한 탐색이다(그가 각본으로 참여했던 <하얀전쟁>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의 밀림, 그리고 최전방 GP의 지하 벙커, 그곳은 모두 어둡고 습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 밀림 속 R-Point가 대리전쟁에 동원된 용병들의 ‘공포와 죄의식’을 무대화하기 위한 공간이었다면, Guard Point 506은 군대조직(또는 한국사회)의 ‘욕망과 무의식’을 무대화하기 위한 공간이다. 전자가 과거의 ‘상흔’(傷痕)에 대한 이야기라면(물론 그 이야기는 베트남 밀림에서 이라크의 사막으로 무대를 바꾼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후자는 현재의 ‘환부’(患部)에 대한 이야기다. ‘호러’와 ‘미스터리’는 각각 과거 외상의 반복과 현재적 환부의 탐색을 위한 무대화의 형식이다.

과거의 사건이자 현재진행형의 사건

<GP506>에서 미스터리는 어느 순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로 전환된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이자 동시에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이 점이 유사한 장르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 전환의 순간은, 사건의 원인이 초현실적인 유령의 형상에서 현실적인 생물학적 실체의 (비)형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생물학적 실체는 <GP506>이 다른 것을 말하기 위한 알레고리이다. 다시 한번, <알포인트>가 ‘빙의’(憑依)를 통한 과거의 반복이었다면, <GP506>은 현재의 ‘감염’(感染) 경로에 대한 탐색이자 진단이다.

그 생물학적 실체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좀비의 형상으로,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형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숙주에게 무차별적 공격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것이다. 감염의 논리에 정조준은 없다. 그것은 일단 발사되면 무차별적으로 연발(連發)되는 자동소총의 논리를 따른다. 동시에 그것은 숙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것은 숙주의 존재로 인해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으로 생존한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의 유산 또는 50년간 버려진 땅인 비무장지대에서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숙주 즉 군대라는 신체(또는 한국사회라는 냉전적 신체)가 있기 때문이다. GP는 비무장지대에 존재하는 무장지대이다. 그곳에 있는 총구는 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총구는 오발이 아니라면 발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총구는, 군대조직(또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초자아로서,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

가장 문제적인 인물, 노 수사관

미스터리 수사극 <GP506>의 가장 큰 미스터리 또는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바로 노 수사관(천호진)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GP장 유 중위(조현재)는 자신을 심문하는 노 수사관에게 “당신은 군인이지 수사관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이 아닌 ‘수사관’으로서 상부조직에 맞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던 노 수사관은, 정작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휘한다. 결국 그는 조직의 유지에 앞서 자기 개인의 생존을 욕망하던 유 중위의 거짓 명령을 진짜 명령으로 실행하는, 즉 군대라는 조직의 욕망을 대리 실현해주는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강 상병(이영훈)과 노 수사관이 발휘하는 이 자기희생적인 군인정신은 분명 문제적이다. 그것은 (이미)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좀비 생존의 최후의 비밀에 대한 진단일까, 아니면 그 비밀에 마주한 주체의 뿌리 깊은 체념과 절망의 표현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고, 그래서 문제적이다.

GP라는 공간의 물리적 특징은, 폐쇄성과 미로성(迷路性)이다. 군대가 비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군대를 만든다.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여전히 비밀이기 위해서 묻혀야만 한다.

이어지는 글 | 1 / 2

관련영화

12 Comments

  • nikado12
    2008-07-09 10:45:39
    묻겠다. 국민=우민인가?
    신고
  • moonkisim
    2008-05-20 13:03:47
    5월 20일자로 의사인 우석균 씨의 반론 기사가 나왔습니다. 내용을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황진미씨의 글은 전형적으로 의사라는 이익집단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국민의료보험 실태는 대만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와 비교해서 국민들이 보험료를 덜 내기 때문에 재정이 어려운게 아니라, 기업이 보험료를 다른나라 수준으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로부터 그에 합당한 보험료를 받아내는 것은 국가의 역할인데, 부가세를 비롯한 각종 간접세는 엄청나게 걷어서 조세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도, 기업이나 고소득전문직에게는 제대로 받아야 할 보험료를 받아내지 못하는 정부의 안일한 자세가 국민의료보험 재정이 열악한 진정한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국민들에게 국민의료보험 재정 위해서는 보험료 더 내야 한다고 위협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포퓔리슴임을 이야기합니다. -왜냐? 국가가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공공복지를 회피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험료 인상을 무기로 들이대니까, 즉 "보험료 안올릴테니까 민영의료보험 하자" 라는 얘기이니까
    신고
  • fitna
    2008-04-28 14:53:00
    > ← 참 이상한 논리다. 저 물음과 설득은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그에 앞서 해야하는 작업 아닌가? 국민적 합의의 책임을 은근슬쩍 반대자들에게 전가할 때 면책을 받는 쪽은 어디인가?
    신고
  • gandam58
    2008-04-26 18:56:11
    글쎄...뭐 별로 틀린 말은 아니고, 이런 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민영화가 대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다들 행동은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들 하면서, 말로만 민영의료보험 반대를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뭐 그런 뜻 아닌가? 글쓴이가 의사라는 사실이 본질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만약 글쓴이가 의사 부인이었으면 그런 것도 감안이 되나? 글쓴이의 신상에 따라 글의 요지를 파악해야 하나? 그리고 이글이 김은형과 오창익의 글의 반론이라는 사실을 왜 주목하지 못하는 걸까? sw1401님 같이 건강보조제나 암보험에 들 돈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이글과 해당사항이 없는 사람이고, 김은형처럼 영국의료제도 부러워하면서 건강보조제를 사먹는 사람들에게 하는 쓴소리 인것 같은데....? 그리고 오창익의 응급실 에피소드는 뭐 그렇담. 불평을 실을려면 좀 잘 골라서 싣든지 하지. 완전 발렸잖아...
    신고
  • sw1401
    2008-04-26 11:31:39
    649호를 읽고 이 글을 쓴 평론가님이 의사인 걸 알았습니다.
    글이란, 글 자체로 말하고 이해되어야 하지만, 글을 쓰신 분이 이해 당사자인 걸 뒤에 알고 보니 글이란 것에 진실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확 드는군요. 가끔 정치권, 언론에서 말과 글을 능숙하게 다루는 분들이 자신의 이해 관계를 속이고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처럼 독자를 속이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의 직업을 미리 알릴 의무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큰 실망을 했습니다. 평소 의사분들은 보험료를 얼마나 내는지 참 궁금했어요. 저희같은 봉급생활자는 건강보조제를 사 먹고, 암 보험료를 낼 여유가 없던데요. 연금도 없으신 부모님 조금 드리고, 애들 사교육 시키고 정말 팍팍하죠. 그리고 제 경혐상병원에서도 사람 대접받는다고 느낀 때는 내 돈 몇십 만원내고 종합검진할 때, 딱 그 때뿐이었습니다. 물론 공무원 정기 건강검진때는 절대 아닙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