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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광기어린 꿈

회고전과 <마스터즈 오브 호러2>로 만나는 지알로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매력

다리오 아르젠토에 대한 장르 팬들의 관심은 최근 몇년 동안 다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두편의 <마스터즈 오브 호러>는 그가 여전히 날카롭게 날이 선 장르 도구들을 휘둘러대며 맹렬히 활동하는 현역임을 입증했다. 게다가 20여년 넘게 미완성으로 방치되어 있었던 <세 어머니>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눈물의 어머니>가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활동 소식만 들어보면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슬럼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슬럼프라. 도대체 다들 쉽게 말하는 아르젠토의 슬럼프란 정체가 뭘까? 기간을 따진다면 아르젠토의 슬럼프 기간은 다들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 부르는 1987년작 <오페라>를 찍은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게 과연 <오페라>라는 정점 이후 다리오 아르젠토라는 검은 장갑을 낀 학살자가 에너지와 영감을 잃고 추락하기만 했다는 증거가 될까?

<오페라의 유령>

선입견을 접고 90년대 이후 그가 만든 작품들을 보면 엉뚱한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슬럼프라고 알려진 이 시기만큼 아르젠토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했던 적은 없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의 첫 사극 공포였다. <카드 플레이어>에서는 학살장면들을 억제하고 살인범과 형사의 지능대결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역시 그에겐 새로웠다. <스탕달 신드롬>에서도 학살보다 연쇄강간범과 맞서는 경찰의 내면을 초현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했는데, 이런 식의 심리묘사나 캐릭터 스터디 역시 아르젠토에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나온 아르젠토 영화들 중 그나마 호평을 들었던 건 전통적인 지알로였던 <슬립리스>였다. 슬픈 일이다. 반복되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던 예술가가 뭔가 다른 영역에 도전하려 10년 넘게 시도했는데 성공한 게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말이다. 더 슬픈 것은 그가 조금만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면 그렇게까지 엉망으로 실패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스탕달 신드롬>은 아르젠토의 현란한 스타일이 겁에 질린 여자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검은 장갑의 살인마 이외의 소재에도 이식될 수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평론가들과 장르 팬들이 ‘그것도 매력이려니’하고 대충 용납해왔던 치명적인 단점들이 그 가능성을 밟아 죽였다. 그는 배우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인간 심리의 정확한 묘사에 관심이 없으며 스토리와 대사는 건성이다.

지금까지 다리오 아르젠토가 만들었던 영화들은 도대체 뭔가? 아마 아르젠토 영화들을 하나로 뭉뚱그린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탈리아에 사는 영어권 외국인이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한다. 호기심이 당긴 그는 어설픈 탐정이 되어 수사를 하는데,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검은 장갑을 낀 살인마에게 한명씩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아르젠토 영화가 반복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찰나의 충격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르젠토의 팬들이 영화를 보고 기억하는 것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중간 중간 삽입되는 살인장면들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따분하며 짜증날 정도로 장황하게 늘어진다.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는 포르노와 일반 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섹스신 중간에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이동장면들이 많이 나오면 포르노라고 말한 적 있는데, 그 정의는 아르젠토에도 은근슬쩍 잘 맞아떨어진다. 아르젠토의 영화들은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들을 위한 학살 포르노다.

다리오 아르젠토

그러나 여전히 아르젠토의 영화는 시선을 끈다. 지루한 추리과정과 환상적인 학살 모두를 비추는 무언가가 그의 영화에는 존재한다. 아르젠토의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는 온전한 이야기보다는 광기어린 꿈에 가깝다. 이야기꾼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따분한 이야기와 그 사이사이 터져나오는 발작적인 폭력은 우리가 본 이야기가 원래 이야기의 왜곡된 그림자에 불과하며 비교적 멀끔하게 종결된 이야기 뒤에는 이성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젠토의 영화는 완벽한 자기 완결성을 갖추지 않은 반쯤 깨어진 상태에서 가장 아름답다.

슬프게도 그건 아르젠토가 온전한 의미의 ‘걸작’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며 예술가 아르젠토가 아르젠토 영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너무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아르젠토가 아무리 몇년 동안 슬럼프의 지옥을 걸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영화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장화, 홍련>이 이탈리아에서 개봉되었을 때, 거의 모든 이탈리아 영화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우리의 다리오’와 비교했던 것도 그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신경질적인 꽃무늬 벽지에 둘러싸인 겁에 질린 소녀들의 이미지가 <서스페리아>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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