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타이완의 에드워드 양(楊德昌) 감독이 미국 베버리 힐스의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59세. <버라이어티>는 7월1일 “에드워드 양 감독이 암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양 감독은 지난 7년 동안 대장암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타이완 뉴웨이브의 기수로 손꼽혔던 그는 특히 한 가족이 할머니의 영정을 앞에 두고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쏟아낸다는 내용의 <하나 그리고 둘>로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은 그에게 2000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겼을 뿐 아니라 시카고 영화평론가협회상을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타이베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살인사건> 등 대도시의 우울하고 쓸쓸한 삶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영화를 통해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명으로 손꼽혀왔다. 그는 2002년부터 <바람>(The Wind)이라는 제목의 무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세계영화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2005년 <씨네21>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바람>에 관해 “긴장되고 흥미진진하며 로맨스도 있는 애니메이션”이며 “무협은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것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김용 것과는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만 현지 언론은 이 영화가 애초 예상보다 크게 올라간 제작비와 양 감독의 건강악화로 제작이 중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의 죽음을 맞은 타이완 영화계는 슬픔 속에 빠져있다. 그와 함께 타이완영화 뉴웨이브의 선두에 섰던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우리의 시대는 (에드워드 양의) 죽음으로 정말 끝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공포분자> 등을 통해 양 감독과 함께 작업한 시나리오 작가 샤오예도 “그의 죽음은 (대만영화산업의) 영광스런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다. <고령가 살인사건> <마종>에서 양 감독과 함께 일한 장첸은 7월1일 중국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시나닷컴(www.sina.com)을 통해 “그는 연기에 있어 영감을 주는 선생님이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 중 하나였다”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영화평론가 황치엔예는 타이완 신문 <리버티 타임스>의 기고문을 통해 “그의 죽음은 우리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손실이다. 그는 가슴에 사무치는 비관주의와 차가운 이성주의로 독특한 시대를 창조했다”고 밝혔다.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추앙받아온 에드워드 양은, 하지만 정작 타이완에서는 부당하게 푸대접을 받은 비운의 감독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타이완 영화계에서 여전히 강력한 관(官)의 권력을 비판해왔고 그에 저항했다. 그의 후기 대표작인 <하나 그리고 둘>은 칸영화제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타이완에서 개봉되지 못하고 있다. 1947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양 감독은 두살 때 가족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그는 어린 시절 페데리코 펠리니와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영화감독이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1974년 USC 대학의 영화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시애틀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1981년 타이완으로 돌아와 이듬해 ‘타이완 뉴웨이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옴니버스 영화 <광음적 고사> 중 단편 <갈망>을 만들며 영화감독으로 마침내 데뷔했다. 양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시기에 대해 “서른 살 생일 때 나는 갑자기 내 자신에게 ‘제길, 나는 늙어가고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내 인생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즐길 수 있고 성취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시작해야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