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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안락한 식민지가 될 것이다!"
2007-05-11

정윤철 감독,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지난 9일 오후 2시,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는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한국영화가 놓인 위기에 대해 알아보는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현황 토론회>가 9일 오후 2시,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정윤철 감독은 "<천년학>의 사례를 통해 예술인의 허망한 끝을 본 것 같다"며 "영화계에 보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현황을 짚어내고 여러 대안을 제시했던 정윤철 감독은 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다시 글로 정리하여 보내왔다. 우려와 한숨이 섞인 그의 글을 여기에 옮긴다.

지난달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을 맞이하며 후배 영화인들은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보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간 70대 노장 감독에게 보내는 의례적인 헌사만은 아니었다. <서편제>의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감독의 인생이 녹아든 영화 자체의 빼어난 원숙미는 진심이 담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현 세대 영화인들의 귀감이 될 만한 영화인의 미래를 본 것이다.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장인이 빚어낸 작품과 그의 인생의 아름다운 교감을 보면서 그 뒤를 따르고 싶은 커다란 바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불과 1주일 만에 그 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최첨단 멀티플렉스 극장체인들의 교차상영과 조기종영으로 허망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관객이 좀 적다는 이유로 하루에 한두 번씩 다른 영화와 교차로 상영하더니 곧 <스파이더맨3>을 비롯한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에 극장을 내어줬다. 돈의 논리 앞에 관객을 기다려줄 여유는 영화 속의 판소리만큼이나 멀고 먼 구시대의 추억에 불과했다.

그렇게 동시대 영화인들이 보내준 축복은 부서지고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영화인의 자존심은 짓밟혔다. 한국 문화의, 예술의 허망한 끝이었다. 이젠 물이 말라붙어 다신 날아들지 않는 <천년학>의 학처럼 그것은 이미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꿈에 불과했다. 아울러 불길하게 펼쳐지는 나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내가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가, 어느 노장 감독의 인생을 함축한 완성도 높은 영화가 철저히 외면 받는 것을, 또 그렇게 만드는 '구조'를 보았다. 그것은 감독이 최소한의 제 정신과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인가? 단순히 10대, 20대를 위한 서비스업에 불과한, 변화하는 트렌드에 숨 가쁘게 적응하며 제 자신을 팔아먹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주의의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이건 너무 절박한 문제고, 문화적으로 정말 통탄할 문제며, 산업적으로는 불안한 문제다. 나를 위해서나 동료를 위해서나 문화를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나 영화를 보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사실상 스크린쿼터 축소는 문제의 한 부분이요, 전체적으로는 모든 것에서 더 이상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현재 그 누구도 직업 안정성이 없다. 한탕주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투자 배급사 인력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두려워하고, 제작사와 감독들은 앞으로 뭘 찍어야 할지 확신이 없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자신의 전문성과 직업 안정성에 의문을 품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것만이 모든 이의 머릿속에 맴돈다. 왜 그런가? 왜 한국 영화는 성장했는데 불안감은 이렇게 가시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가? 미국의 세계화 정책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동조한 현 정부의 독단으로 스크린쿼터는 축소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파이더맨3>이 무려 800여개의 극장을 잡은 것에서 드러나듯 비극적이다(비난을 받았던 <괴물>은 불과(?) 600여개였다). 싸움에서 진 한국 영화인들은 지금 대가를 치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은 서곡에 불과하다. 진짜 혹독한 암흑기는 이제부터다. 이것은 내가 열심히 해서, 몇몇이 머리를 짜내어 헤쳐 나갈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혁명과도 같은 상황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영화는 현재 6개의 한계점에 처해있다. 첫째, 한국 관객의 숫자는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미국보다는 못하지만 일본ㆍ프랑스 등과 비슷하며 더 이상 시장이 커지기 힘들다.

둘째, 개발되고 있는 작품들이 뻔하다. 제작사 및 감독의 기획력 한계와 소설의 작가주의 편애로 장르 문학이 부재하다. 방송에 비해 불합리한 대우로 인한 프로 시나리오 작가 부족은 한국 영화의 기초 체력을 매우 약하게 만들었다. 기초과학 없이 실용과학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스크린쿼터 축소로 유통망이 붕괴했고 그로 인해 투자자들의 심적 마지노선이 붕괴됐다. 바닥이 어딘지 모른다. 마케팅비도 뽑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아예 개봉을 하지 않는 게 돈 버는 상황이다. 되는 영화만 되고 안 되면 전액 손실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넷째, 구태의연한, 돈으로 바르는 마케팅도 문제다. 투자사 마케팅 인력의 한계와 업무과다로 획일적인, 성공사례만 쫓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개봉 첫 주에 예매율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극장에서 바로 교차상영에 들어가는 현실에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 발생은 필연이다.

다섯째, 미국의 세계화 정책의 꽃으로 전 세계 동시 개봉이 이뤄지고 있다. 북미 개봉과 정확히 '싱크'되어 같은 날 국내에서도 상영된다. 미국의 흥행은 한국의 흥행과 직결된다. 외화 시장을 위협했던 개봉 전 불법 다운로드도 불가능하게 된다.

여섯째, 디지털 배급으로 프린트 수요 컨트롤이 어렵다. 디지털 파일로 바뀐 영화는 상영관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현재 <스파이더맨3>을 상영하는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경우 6개관에서 디지털 상영하고, 1개관만이 필름 상영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배급사의 권한이 유명무실해진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프로그램팀, 심지어 개별 극장의 점장이 상영관과 횟수를 결정한다. 각 상영관의 관객 수가 점장의 인사고과에 즉각 반영되는 지금의 현실은 춘추전국시대만큼 무질서한 비정규전 속에서 무조건 관객이 드는 영화를 한 번이라도 더 틀게 만든다.

1990년대 초 젊은 기획자들 중심의 프로듀서 시스템이 대기업 투자자본과 맞물려 한국영화의 개혁을 이끌었다. 당시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충무로 토착 영화인들은 대부분 도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듀서들은 간 데 없고 영화사 사장들만 있다. 그들이 전 세대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는가? 지금은 그들의 파트너였던 투자자본도 예전의 아성이 무너졌다. 더 이상 자신의 돈을 30퍼센트 이상 넣지 않으며, 수익을 내주지 못해 부분투자자들에게 그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대신 지금 영화산업은 유통업자인 극장 체인이 장악하고 있다(돈도 가장 많이 번다). CJ엔터테인먼트와 CGV, 쇼박스와 메가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팀과 극장팀, 모두 같은 그룹의 계열 회사지만 그들은 전혀 관점이 다른 존재들이다. 속성상 유통업자인 극장들에게 영화는 국적이 없는 유통물이며 그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과정에서 마진을 챙긴다. 나아가 그들에게 영화는 호객행위의 한 아이템에 불과할 수도 있다. 팝콘과 콜라를 팔기 위해(극장 수익의 40%가 매점에서 나온다고 한다), 극장이란 공간을 유지시키기 위해 돌리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밑 빠진 독이 된 (자회사인) 투자사를 먹여 살리고 있다.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비디오나 DVD 같은 부가판권 시장이 망해버려 극장 수익은 더 절대적이다. 이미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극장업자들이 파트너로 삼을 이들은 누구인가? 1990년대 초처럼 발 빠르고 영악한 이들이 또 나올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영화사 사장들은 아닐 듯하다. 이미 그들은 흥행이 보장되는 감독을 데리고 있을 능력이 없거나, 그 감독들에게 당장 찍어도 될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를 주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는 자신의 돈을 넣었기에 (본전을 뽑으려는) 강박관념을 느끼지만 유통업자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이윤이 최고다.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장사꾼이다. 이제 권력은 제조업자의 손에서 서비스업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유통마진을 점점 올릴 것이고 주주들과 소비자들의 요구가 즉각 반영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신상품 개발보단 지금 바로 잘 팔리는 제품만 최대한 받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산업이 쇠퇴한다고 판단될 때 어딘가에 팔 것이다. 흔쾌히 이를 받아줄 세계화 시대의 쟁쟁한 파트너들은 너무도 많다. 그것이 미국의 펀드 자본이라면 이제 할리우드 직배에서 나아가 아예 극장까지 직영으로 되는 것이고, 있으나마나한 스크린쿼터는 그걸 팔아 구차한 보상금과 아무도 대주지 않는 제작비나 받아보려는 몇몇 가롯 유다들에 의해 완전 철폐될 것이다. 극장 요금은 글로벌 기준에 걸맞게 두 배쯤 오를 것이며, 한국은 결국 미국 본토에서 디지털로 쏘아주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안락한 식민지가 될 것이다. 이토록 우아한 세계화 시대, 정말 좋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영화의 IMF인가? 정부 측 주장대로 이런 자유경쟁 체제로 인해 부실 제작사들은 퇴출될 것이며 오히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강화될 것인가? IMF 이후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시작부터 틀렸다. 결과적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보장적 요소가 다 날아갔다. 비정규직이 양산되었고, 잘 되는 회사만 더 잘 되고 집 있는 사람들만 더 잘 살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극화가 심화됐다. 영화업계에서도 자유경쟁으로 질적 변화를 하기보단 이러한 양극화만이 짙어질 것이다. 작년 한국영화 100편 중 사실 20편 정도가 손해를 보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 망했다. 그럼 20편만 만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을 잃을 확률은 제로인가? 결코 아니다. 판돈이 크든 적든 도박의 확률은 똑같다. 5편은 손해를 보지 않고 15편은 손해를 볼 것이다. 배우도 약하고 검증되지도 않은 이야기였던 <달콤 살벌한 연인>, <미녀는 괴로워>는 20편의 경쟁을 결코 뚫을 수 없었을 것이고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 <살인의 추억>,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같은 대박 영화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괴물> 또한 그 누구도 1000만을 넘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물론 영화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며 할리우드 영화가 매년 수천편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면서도 유지가 가능한 이유다. 적정한 규모가 아니면 산업은 유지될 수 없다. 한국영화도 1년에 최소 50~60편은 만들어져야 지금까지의 작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1주에 한 편씩 개봉될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하다(보통은 2주에 2편이 된다). 그럼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첫째,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려면 3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새로운 기획과 작가층 양성, 피디와 제작인력의 전문화, 제작사와 인력의 정리 및 재구축, 안정된 투자 확보 등에 최소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영화인들 스스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괜찮겠지' 식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세계화와 벌인 싸움에 진 혹독한 대가를 질 수밖에 없다. FTA라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맞고 귤 농사를 접어야 하는 제주도 농민들, 비전이 보이지 않는 한우 사육 농가들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줄어든 유통물량이지만 경쟁력이 생기도록 100만 관객에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를 제외한 제작사와 메인 스태프 및 감독ㆍ배우들의 자발적인 나눔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 지금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긍심이 되고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강제적으로 그렇게 될 때 그것은 더 비참한 일이 될 것이다(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IMF 때 노동계가 스스로 임금을 적게 받고 고통분담을 하지 않은 결과, 강제적인 고통분담이 찾아왔다. 명퇴(명예퇴직)와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영화계에도 조기 명퇴가 올 것이며, 잘 나가는 철밥통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날품팔이로 양극화될 것이다. 혹 자신이 몇 년은 잘 나갈 것이라 안심할지 모르지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 아무도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배우든 감독이든 예전처럼 몇 편 망해도 봐주고 했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은 괴롭지만 서로 고통을 분담하여 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더 길게 지켜줄 것이다. 지금의 되돌아감을 손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제작사와 투자사는 손익분기점이 넘는 순간 이런 고통분담을 적극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유통업자인 극장과 협상을 벌어야 한다. 제작사ㆍ투자사들은 한국영화라는 콘텐츠 보호에 극장이 동참하게 해야 한다. 한국영화계의 뼈를 깎는 노력을 전제로 극장 비율을 외화와 동일하게 만들어야 한다(외국 영화의 경우 극장이 4, 외화사가 6을 가져가지만 한국 영화는 그 비율이 5대 5다). 또한 최소한의 상영기회(2주)를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 기간 안에는 교차상영을 해선 안 된다. 극장들은 2주 간 전회 상영을 보장해줘야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1600개 스크린의 절반인 800개를 한국영화가 가져간다 할 때 300개-300개-200개, 즉 3편이 동시에 극장에 붙을 수 있다. 그럼 3편이 2주씩 총 52주면 3×26(52주/2=26)=78편이 된다. 장기 상영에 들어가는 영화를 고려할 때 60편 정도의 영화가 2주 동안 극장에 전회로 걸리며 소화될 수 있다. 극장들은 최소한 2주 상영 후 교차상영을 하면 된다. 이제 스크린쿼터는 의미가 없어졌다. 73일, 그것은 흥행하는 한국 영화 2편이면 다 채워지고도 남는다. 대신 2주 상영 보장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은 입소문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또 최소한 마케팅 비용이라도 건질 수 있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이다.

넷째, 소비자운동을 함께 펼쳐야 한다. 유통의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큰 잠재적 권력자인 관객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볼거리를 빼앗는 극장 측의 일방적인 독점 유통에 소비자인 관객으로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극장에서 영화만 보고 나오기 운동, 콜라와 팝콘 사먹지 않기 운동 등).

넷째, 불법 다운로드 근절을 위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전 세계 동시개봉의 세계화 시대다. 불법 다운로드를 방치한 제작사들의 안일함이 부가시장 붕괴로 지금의 극장권력 강화를 가져왔다. 정통부의 입김으로 인터넷 업체들을 지원하느라 이를 방치한 문화부는 반성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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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윤철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