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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O.S.T
2001-02-16

재즈, 너무 달콤했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O.S.T/ 드림비트 발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상의 진부함을 그나마 숨쉴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작은 전복, 사랑을 꿈꾸는 영화다. “일상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지만 사랑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 박흥식 감독의 말. 은행원과 보습학원 강사의 하마터면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갈 뻔한 사랑에 반전을 주는 폐쇄회로 카메라. 폐쇄회로 카메라는 이 영화에서 ‘감시-일상’에서 ‘고백-사랑’의 기능으로 소박하게 전복되면서 내러티브를 이끈다.

영화의 음악 역시 ‘일상 속의 작은 전복’을 받쳐주는 감미롭고 평이한 멜로디가 주조를 이룬다. 그 동안 <런 어웨이>를 비롯, <정사> <약속>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용가리> 등 멜로에서 액션에 이르는 여러 장르를 커버하고 있는 조성우 음악감독이 음악을 맡았다. 그는 현재 한국의 영화음악을 주도하고 있는 음악가의 한 사람이다. 이번에도 역시 탄탄한 스코어와 깔끔한 편곡으로 비교적 완성도 있는 사운드 트랙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따뜻한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현우가 주제가에 해당하는 노래를 불러 대중적으로도 접근하기 쉽다. 스타일로는 가벼운 4비트의 재즈가 주조를 이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즈 스타일을 벗어나는 음악이 별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과연 재즈 스타일이 이 영화와 아주 긴밀히 연결되느냐 하는 대목은 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한 번 떠올려 보자. 이 영화는 미국 사람들 중에 ‘보통 사람’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은 해리 코닉 주니어를 앞세운 스탠다드 재즈 풍이 주조를 이루는데, 영화음악은 감미롭기도 하지만 실은 지극히 스탠다드한 미국풍이다. 재즈라는 장르는 미국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전적인 표준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심리를 자극하는 촉진제라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담담함의 표현이다.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서글프며 결국 적당히 감동적인, 헐리우드의 스탠다드에 해당하는 멜로물과 그런 식의 스탠다드 재즈는 비교적(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도) 충분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재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통속적인 편안함의 등가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식의 가벼운 터치의 일상적 연애가 재즈를 밑으로 깔고 벌어져야 하는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우리에게 스탠다드한 재즈, 감미로운 재즈는 무엇인가. 내 생각에 그 스타일은 일상적이기보다는 약간은 허영이 깃든 고급 취향으로 보인다. 물론 음악의 그러한 설정으로 인해 버스 정류장의 황량함은 따스한 기다림과 설레임의 공간으로 변형되고 따라서 영화의 일상적 공간은 황폐한 현실이 아니라 약간의 환상이 스며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음악의 의도는 그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때로 이 영화에 쓰인 재즈는 감미롭긴 하지만 슬쩍, 영화가 본래 노린 것과는 다른 빛깔의 포장재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보다 철저하게 일상적인 톤을 지켜내고 그 이상의 부자연스러운 감흥을 배제하는 걸 원칙으로 삼으려고 했다면 차라리 재즈가 아니라 더 스탠다드한 우리 발라드여야 하지 않을까. 음악이 덜 달콤하고, 더 통속적이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었으면 영화의 톤이 냉소적으로 느껴질 것을 걱정했을까. 음악의 스타일을 선택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일감으로 떠올린 스타일을 선뜻 적용한 것이 때로는 정답일 때가 있지만, 어떤 때에는 스타일 자체를 심사숙고해야할 때도 있다. 달콤한 재즈? 그래, 사랑 이야기엔 그만이겠지. 그러나, 이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생각해보자. 장마철에 빤쓰 바람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아저씨, 라면을 먹는 도중에 ‘밥먹고 있니’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 아가씨가 나오는 우리 일상 말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