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영화 배급의 왕자는 누구인가?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의 ‘업계 1위’를 둘러싼 신경전이 2라운드를 맞이했다. 12월 19일 쇼박스의 자체집계 발표에 의해 한차례 설전을 벌였던 양사(584호 기사 참조)는 CJ엔터테인먼트가 1월4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전국에서 3350만 4846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3198만 6325명을 끌어들인 쇼박스를 제치고 배급사별 관객 수 1위를 차지했다”고 밝히며 다시 불이 붙었다. CJ측은 영진위 통합전산망의 수치를 근거로 내세웠다. 쇼박스도 오늘 즉각 반박자료로 응수했다. 쇼박스 측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자료에 근거하더라도 2006년 한국영화 배급 관객순위에서 쇼박스는 CJ엔터테인먼트에 2,790명 앞선다”고 밝히며 “2006년 외화를 포함한 전체 관객수에서도 쇼박스가 CJ엔터테인먼트를 64만명 앞선다”고 덧붙였다.
이번 논쟁의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CJ와 시네마서비스가 공동배급한 작품의 관객수를 둘러싼 논란이다. 쇼박스는 “영진위 자료에 근거한 CJ엔터테인먼트의 한국영화 관객수는 시네마서비스 공동 배급작 5편(<생날선생>, <플라이대디>, <열혈남아>, <삼거리극장>, <사랑할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공동배급 관객수 1,362,128명(영진위 기준)의 50%에 해당하는 681,064명을 자사 한국영화 관객수에 추가했다. 이는 구체적인 배급 비율에 대한 기준 없이 전국 관객수의 50%를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치를 인정하면 영진위 기준으로는 CJ가 67만8274명, 양사 기준으로는 16만명 앞선다. 인정하지 않으면 쇼박스의 주장대로 쇼박스가 영진위 기준 2790명, 양사 기준으로는 64만명 앞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업계 관행상 공동배급의 선을 정확히 긋기는 어렵다. CJ측은 “우리가 투자하고 마케팅하고 판권도 가진 영화다. 배급 편의를 위해 공동배급을 했을 뿐인데 그걸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둘째,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 수치에 대한 문제 제기다. 쇼박스 관계자는 “영진위 집계로 하면, <괴물> 한편만 해도 우리가 270만명 이상의 스코어를 손해봤다. 누락된 15%는 대개 지방관객인데 CJ영화들이 서울 강세라면 우리 영화는 지방 관객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CJ도 “영진위 집계에서 누락된 극장들은 쇼박스 영화만 상영하나?”라며 “<타짜> <투사부일체> 등만 해도 누락 스코어가 270만명쯤 된다”고 대응했다.
영진위가 발표한 2005년 영화산업 결산 자료를 보면 누락 스코어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배급시장에서 CJ는 1028만 8927명, 21.9%로 1위, 쇼박스는 929만 3596명 19.8%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영화에서는 쇼박스가 868만 7920명으로 1위, CJ가 793만9071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 관객을 기준으로 한 순위일 따름이다. 서울 관객 기준이지만 전국 관객 수치가 명기된 전체 흥행 10위를 살펴보면, 상기 논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2,3위를 싹쓸이한 <웰컴투 동막골>, <말아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전국관객은 1887만 1910명에 달한다. CJ의 <친절한 금자씨>, <태풍>, <너는 내 운명>을 합한 숫자는 1042만 4886명이다. 양사의 서울 기준 한국영화 관객 격차는 74만 8849명이지만 흥행작 세편의 격차는 무려 844만 7024명에 이른다. 10배가 넘는 수치. 쇼박스가 지방관객 강세와 편당 관객동원을 강하게 제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CJ는 상대적으로 많은 배급 편수, 특히 스무편에 가까운 인디영화 배급과 흥행 양극화에 의한 현상이라고 반박할 수 있을 듯하다. 영진위의 2006년 영화산업 결산자료는 빠르면 1월 중순 늦으면 3월에야 공개된다.
간단한 해결책은 있다. 양측이 각사 기준으로 집계한 수치를 정확히 발표하는 것. 완전하지 않은 통합전산망의 수치를 기준으로 지금처럼 설왕설래할 이유가 없다. 2006년 전국관객 수치를 각자 발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공동배급 수치의 문제나 부가적인 사안들은 논의하면 이러한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발표하는 수치의 근거를 밝히고, 서로의 수치를 인정하는 신뢰가 바탕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양사의 ‘업계 1위를 향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다. 이번 논쟁은 최근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한국 영화산업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드러낸다. 가장 기본적인 산업적 데이터의 부재. 즉 정확한 박스오피스를 가진 곳이 없다는 점이다. 10년 동안 영화계가 요구했던 통합전산망의 완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이것은 소관부처 영진위의 전적인 책임으로 볼 수도 없다. 극장업계가 주장하던 “영업비밀, 영업 침해”는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전국 극장의 80%를 점유하는 멀티플렉스가 통합전산망에 참여한 현 상황에 나머지 극장들의 거부는 오랜 관행에 의한 소극적 자세에 불과하다. 한동안 영화법에 통합전산망 의무가입을 제도화하겠다던 국회의원들도 어영부영 발을 뺀 지 오래다. 정확한 박스오피스의 확보가 이뤄지지 않는 한 매번 업계 1위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더불어 영화산업의 합리화도 그만큼 계속 늦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