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귀신의 원한이 살인과 맞물려 있으므로 <아랑>에서 죽음의 고리는 처벌하는 귀신의 한이 풀리지 않는 한 계속된다. 형사들은 원혼의 사연을 밝히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더 없다. 때문에 죽음을 그리는 방식도 여느 공포물들의 표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아랑>은 차별을 위한 과감한 시도로서 범인과 관련된 맥거핀 장치를 놓아둔다. 이는 영화 후반에 가서 요즘 관객들이 좋아하는 ’반전’의 구실을 톡톡히 한다.
문제는 그 반전의 플롯이 이야기 전체와 얼마나 논리적으로 맞물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데뷔작의 각본과 연출을 겸한 안상훈 감독은 죄를 처벌하는 주체를 으레 귀신으로 설정하는 기존 공포물들의 접근법에서 빈틈을 노린 것이지만, 이를 위해 배치한 전반부의 맥거핀은 맥거핀 이상으로 보일 만큼 과장돼 있고 ’또 하나의 반전’이라 부를만한 결론은 반전과 맥거핀을 모두 혼돈의 지경속에 몰아넣을 만큼 매우 무리한 시도로 비쳐질 뿐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의 테마 역시 정교한 문제의식으로 와닿기 보다 혼돈의 플롯 속에 뒤엉킨 채 자리잡을 곳을 잃는다.
덜 다듬어진 대사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쉽게 넘어가주기 어려운 대목이다. ’토이’의 유희열이 운영하는 음반프로덕션에서 맡은 서정적인 음악과 <회전목마> <마이 걸> 등 TV 브라운관 안에서만 활동해온 이동욱의 첫 영화 연기가 (결말에 이르기 직전까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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