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이현우’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약속 장소인 MBC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내내 걱정이 앞선다. 조금이라도 취재시간을 벌 심산으로 서둘러 출발한 터였다. 그러나 그런 기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조금 지친 표정이다. 이현우는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사진을 찍기 전 협찬의상으로 갈아입으라는 코디의 말에 영 시큰둥하다. 결국 입고 온 의상 그대로 사진촬영 돌입.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시고 겨우 얼굴 마주보며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원체 마른 얼굴에 분장 탓인지 붉은 분기가 돈다. 애써 준비한 질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덜컥 입에서 나온 첫마디, “요즘 행복하세요?”.
맹한 질문에 이현우는 고맙게도 망설임 없이 입을 연다. “스무살 넘으면서 내내 행복이 뭘까 생각했어요. 서른이 되면 좀더 쉽게 답이 찾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은 더 어려워요.”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행복하단다.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 하나를 벗어던진 기분이다. 91년 <꿈>을 부르며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한 그때, 정작 자신에게는 꿈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던 갑갑한 방송생활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방송일 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시지만 요즘은 부쩍 ‘편해 보인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만큼 이현우는 예전보다 한층 여유있는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렇다고 제 자신이 변한 건 아니에요. 좀더 성숙해졌다고들 하시는데 전 늘 이 모습이었는걸요. 다만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그가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한 건 오해였다. 이현우는 말을 잘한다.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문자’를 쓰는 건 오히려 그에게 불편하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 확실히 부족한 것이 있긴 하다. 그것은 ‘웃음’이다. 이현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인터넷영화 <메이>를 보고 있자면, 사랑에 빠진 그가 연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며 입가에 웃음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영 어색하다. 말 그대로 입 한쪽 끝을 마지못해 끌어올린 폼 이상이 아니다. “제가 봐도 어색해요.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잖아요. 근데 그게 노력한 거예요. 역시 웃는 건 너무 힘들어요.”
97년 <헤어진 다음날> 이후로 그의 활동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라디오 방송을 하며 민병진 감독의 <토요일 오후 2시>에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우정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와의 인연은 99년 <카라>의 스페셜 음반제작에 참여하면서 본격화했다. 그런 그의 배우데뷔 소식은 사실 갑작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메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에 의하면 그의 연기는 대체로 합격선이다. 사이버상의 인물에 집착하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이코를 나름대로 잘 표현했다는 평이다. 최근에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주제가를 불러 화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영화와 행복하게 조우한 셈일까? “외도는 아니에요. 단지 영화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에요. 배우라는 말은 저에게 안 어울려요.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미는 있지만 제 길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의외로 단호한 입장이다. 그래도 누군가 영화판에 불러주면 언제든지 응할 거라고 하니 영화와 그의 만남을 계속 기대하게 한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기자
의상협찬 솔리드 옴므
개인 프로필
1967년생
91년 1집
92년 리믹스 앨범 <꿈>
93년 그룹 ‘문차일드’ 결성
94년 2집
95년 프로젝트 앨범
96년 3집
CBS 라디오 <뮤직네트워크> 진행
97년 4집
MBC <예술무대> 공동 진행
98년 5집
영화 <토요일 오후 2시> 뮤직토피아 진행자로 출연
SBS 라디오 <뮤직토피아> 진행
99년 영화 <카라> 스페셜 음반 <후회>
2000년 6집
인터넷영화 <메이> 주인공으로 출연
CF 다수 출연(오리온 오뜨광고, 웅진 광고, 씨티뱅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