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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는 복사가 아니다
2001-02-06

<6번째 날>과 인간복제, 그 오만과 편견

지난 97년 처음 복제양 돌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이 놀라운 기술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공포감은 대단했다. 히틀러의 복제물들이 떼지어 거리를 활보하는 그림이 주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물론 복제대상에 아인슈타인과 마돈나가 오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자신의 머리카락이나 피 한 방울을 가지고 또다른 자기가 만들어질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는 데 아연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역설적이게도 복제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복제인간에 대한 심리적 공포는 많이 수그러든 것처럼 보인다. 양에 이어 소, 염소, 쥐, 원숭이가 복제되면서 복제기술은 그렇고 그런 별로 어렵지 않은 기술의 하나가 됐다. 반면에 사람의 복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외계인이 인간을 복제했다고 믿는 종교집단을 빼면 어느 누구도 공공연히 사람을 복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동물은 되고 사람은 안 되는’ 선에서 복제 문제는 일단락된 것일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은 불법적인 인간복제가 벌어지는 미래세계를 그렸다. 딸 생일선물로 얼마 전 죽은 애완견을 복제할 것인지를 망설이다 인공지능 로봇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미 가족과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는 또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스토리는 평범하고 단순하다. 불법적인 복제기술을 이용해 영생불사와 권력을 노리는 음모집단을 영웅적인 용기와 힘으로 쳐부수고 자신의 가정과 사회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흔들린 과학, 맥빠진 공상

‘돌리’의 탄생을 지켜본 뒤 시나리오 구상에 들어갔다면서도, 이 영화는 복제기술을 지나치게 비약해 오히려 인간복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에서는 ‘신코딩’이란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는 물론이고 기억마저 복제한다. 어떤 사람을 복제해 인공자궁(혹은 인간배양장치?) 속에서 기르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죽기 직전까지의 기억을 간직한 그 사람을 되살려낸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애완동물이든 이 기술을 계속 쓰면 영생불사하는 셈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의 설득력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공상과학’에서 ‘과학’이 흔들리면 ‘공상’도 맥이 빠진다. <쥬라기공원>에서 호박(송진이 굳어 생긴 광물) 속에 갇힌 모기 위 속의 공룡 피에서 DNA를 꺼내 공룡을 복제한다는 ‘공상’은 호박 속 고대생물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현실과학에 굳건하게 기대 서 있다. 유전자 조작이 낳을 디스토피아를 그린 비슷한 액션물이면서도 <가타가>가 공상과학영화로서는 훨씬 그럴듯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로봇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그린 다른 분야의 공상과학 화인 <바이센테니얼 맨>이 이 영화보다 훨씬 졸립고 볼거리도 적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복제에 관한 일반의 가장 일반적인 오해를 오히려 부채질하는 듯하다. 복제할 수 있는 것은 유전자이지 그 개인 또는 개체가 아니다. 게다가 유전자는 그 개체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까 ‘기억복제’라는 근거가 희박한 기술로 보완한들 한 인간을 그대로 복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유전자냐 환경이냐는 논란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딱 부러진 결론은 없다. 유전자가 이제까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광범하게 인체의 여러 형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의 기능을 알면 알수록 그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해지고 있다. 유전자 하나가 어떤 형질 하나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마치 협동이라도 하듯 하나의 형질을 결정하는 양상도 드러나고 있다. 환경의 영향에 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잇따라 밝혀진다. 태아가 자라는 태내 환경의 차이조차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가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 복제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복제하려는 사람의 체세포, 이를테면 귓볼 세포에서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핵을 끄집어낸다. 이어 다른 사람의 난자에서 핵을 떼어낸 뒤 그 자리에 집어넣는다. 엄밀하게 말해 유전자만 본인의 것이지 세포질은 남의 것이다. 세포질에는 별개의 유전자를 가진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다. 핵을 치환한 난자는 굶기기, 전기충격 가하기 따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난자가 마치 갓 수정된 난자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다음 이 난자는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킨다. 자궁 속 환경도 ‘원본’과 같을 리 없다. 태어나기까지의 이런 차이에 더해 교육과 성장환경의 차이까지 더해지면 복제인간이 원본인간과 같은 것은 콧날 형태나 키,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 같은 눈에 잘 띄는 겉모습에 지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인간복제, 쉽고 간단하다

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복제가 마치 복사기처럼 사람이든 애완동물이든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다시 살려내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60살 노인을 복제하면 태어나는 사람은 당연히 갓난아기이지 노인이 아니다. 마치 뒤늦게 태어난 쌍둥이처럼 둘의 유전자는 같지만 겉모습이 비슷할 리 없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에이앤엠대학에서는 한국의 과학자가 참가한 가운데 어느 노 부호의 애완견 ‘미시’를 복제하는 800만달러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이 영화에서도 비즈니스로 자리잡은 애완견 복제사업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 부자는 ‘미시’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빼닮은 강아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강아지가 다정다감한 ‘미시’로 자랄지 아니면 잘 깨무는 괴팍한 개가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실 인간복제가 빚어낼 섬뜩한 미래를 그리는 데는 황당한 논리적 비약이 별로 필요없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기술적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먼저 인간복제의 가능성이다. 학계는 정부의 규제가 없다면 인간복제를 위한 기술적 준비는 끝났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젖소와 한우를 복제했고 사람의 배아복제까지 시도했다가 여론의 호된 지탄을 받았던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최근 한 공개강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봤더니 사람은 어느 동물보다 복제가 간단하고 쉽더군요. 시도하면 당장이라도 됩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이 분야 권위자인 리 실버는 <리메이킹 에덴>이란 책에서 “자녀의 유전자를 개선하려는 부모의 욕구는 인간배아의 복제를 통한 유전자 조작을 만연시킬 것이고, 마침내는 인류를 서로 교배할 수 없는 개량종과 그렇지 않은 종으로 분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처음에 인간 생식유전자에 대한 개입은 겸상혈구성 빈혈이나 낭성섬유증처럼 고통스런 유전병을 치료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면 조금 덜 심한 유전질환, 즉 비만, 당뇨병, 심장병, 천식 등의 유전적 성향을 제거할 것이다. 다음 분야는 정신과 감각 분야이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등의 소인을 도려내는 작업이 이뤄진다. 마침내는 다른 동물에 있고 인간에 없는 유전인자를 탐내게 될 것이다.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거나, 전기뱀장어처럼 전기를 생산하는, 또는 개처럼 후각이 뛰어나거나 자외선이나 적외선까지 보는 능력이 판매목록에 오를 것이다. 이런 모든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부모가 부자냐 아니냐일 것이다.

상투적인 미래, 너희가 첨단을 아느냐?

그렇게 되기 전이라도, 비밀리에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두고 유사시에 교체할 여벌장기 공장으로 쓰려는 부자가 없으란 법이 없다. 이미 동물실험을 통해 머리를 게거한 복제쥐가 만들어져 배양된 적이 있다. 또 돼지가 인간의 면역체계를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심장이나 간 등 장기를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도록 하려는 연구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다. 이른바 이종이식이다. 돼지의 다양한 몸집이 모든 나이의 인체에 딱 들어맞는 장기를 공급해 줄뿐더러, 다산성이어서 연간 30마리나 복제가 가능하고, 고기를 늘 먹어왔기 때문에 장기 하나를 통째로 떼어내 내 뱃속으로 가져온다고 한들 거부감이 적다는 등의 장점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 기술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돼지바이러스다. 돼지에만 피해를 일으키던 바이러스가 사람의 질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유전자를 바꾸어놓는다. 따라서 사람의 형질을 가진 돼지는 인류 전체에 새로운 바이러스 질환을 전파할 우려가 있다. 원숭이바이러스이던 에이즈가 인류에 천형을 가져왔듯, 얌전하던 병원체가 종의 울타리를 넘어선 뒤 종종 치명적인 형태로 바뀐 사례가 많다.

생명공학을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는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돈의 차별,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의 차별이 그것이다. 에서처럼 괴짜 과학자 한두명이 일으키는 문제는 아니다. 인간복제가 허용된다면, 또는 불법적으로 이뤄진다면 복제과정에서 많은 수의 힘없는 약자가 희생될 게 뻔하다. 먼저 복제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수의 난자가 필요하다. 누가 난자를 제공할까. 복제가 이뤄진 뒤에는 대리모가 있어야 한다. 무사히 태어난 태아 가운데 상당수는 각종 기형과 거대태아증후군을 나타낸다.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동물복제를 연구하는 과학자 대다수가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것도 그것이 복제기술의 아킬레스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들도 인간복제를 반대할 뿐 갓 수정된 인간배아의 복제를 이용한 각종 의학적 응용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에서 공상과학 영화가 묘사하는 하나의 상투적인 미래사회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택시와 초고층건물, 자동엘리베이터, 홀로그램….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공상과학영화에선 어김없이 나타나는 첨단기술의 단골 메뉴들이다. 하지만 이런 석유냄새 물씬 나는 문명의 이기가 계속될지, 아니 계속돼야 하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높아진 지는 벌써 오래됐다. 그런데도 할리우드영화들은 끈질기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철지난 신화를 설득하려 한다. 요즘 주목받는 진짜 첨단과학은 생명과학 이외에 연료전지, 나노테크놀로지, 바이오미메틱스(생물흉내공학) 등이다. 작고 에너지를 덜 소비하고 효율적인, 그러면서 생태계 친화적인 기술들이다.

조홍섭/ <한겨레> 기자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