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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에게 듣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뉴욕 개봉기
2001-01-05

“영화, 예술 이전에 생존게임”

한해의 마지막인 12월도 어느새 반을 넘긴 지난 12월15일 금요일 밤.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일단의 무리들이 인적 끊긴 심야의 다운타운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자정을 재촉하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이스트빌리지 남단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실험영화의 산실로 오랜 세월 동안 대안적 영상 문화의 창구 역할을 해온 이곳 앤솔로지에서 뉴욕 개봉을 앞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Nowhere To Hide)의 특별 시사회가 이루어졌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시작한 이날 행사는 주말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조석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인정사정…>의 ‘숭배자’들로 인해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됐다. 밖에서는 상당수의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그냥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명세 감독은 “유서 깊은 앤솔로지 극장에서 이렇게 시사회를 가지게 돼 기쁘다”며 간단히 인사의 말을 전했고, 곧이어 열렬한 박수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함성 속에서 상영이 시작됐다. 관객 중 상당수가 이미 이전에 영화를 본 경험이 있거나 사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시사회에 임한 듯 객석의 반응은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따라가 순간순간 이곳이 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본 상영에 이은 관객과의 대화 역시 새벽 2시가 다 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관객이 자리를 지킨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감독의 영화관과 연출 방식, <인정사정…>의 제작 과정 등에 대해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명세 감독은 “내 영화가 오우삼의 영화보다는 스탠 브래키지(Stan Brakhage)의 실험적인 시도에 더 가깝다는 이번주 <타임아웃 매거진>의 기사를 아주 기분좋게 읽었다”며 그간 이곳 평단의 오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경찰의 폭력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이 작품에서 그리려고 했던 것은 폭력이 아니라 한 형사의 집념이다. 얼굴에 찍힌 발자국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쓴 것 역시 폭력 자체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라고 자신의 의도를 상세히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포영화를 준비중인데 아마도 이제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색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기대해달라”며 자신에 찬 당부의 말을 전했다.

관객은 감독 주위로 몰려 들어 이런저런 말을 건네거나 사진 촬영과 사인을 요청했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인정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상영장 주위를 뜨지 못했다. 새벽녘까지 열기가 식지 않고 행사가 이어진 탓에 원래 예정됐던 인터뷰를 다음 날로 미뤄야 할 지경이었는데 컬트와 실험의 대명사인 필름 앤솔로지에서 최근 이루어진 행사 중에서 가장 앤솔로지다운 행사였다고 할 만 했다. 행사는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모두 끝났다.

다음날 오후, 미국 영상박물관(American Museum of Moving Image)에서 이명세 감독을 다시 만났다. 그는 평소에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자크 타티의 <쉬는 시간>(Playtime)을 관람했다고 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보물창고 같은 영화”라는 것이 이명세 감독의 소감.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시작했다는 학생들과의 이 모임은 주말마다 흥미로운 전시나 공연을 찾아보고 책이나 영화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간의 근황과 이곳에서의 작업상황, 한국영화에 대한 감회 등을 묻는 본 통신원에게 “한국에 있는 팬들과 지인들에게 그간 못 쓴 편지를 쓰는 심경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 감독은 이야기했다. 인터뷰는 인근의 한국 음식점과 이명세 감독이 자주 찾는다는 단골 바를 찾아 약간의 취기를 머금은 채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곳에서 개봉을 앞둔 심경이 어떤가.

=뭐 특별한 것은 없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다. 나는 늘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뿐이다. 감독으로, 직업인으로…. 물론 영화가 성공하면 이곳의 활동조건이 이후엔 좀더 나아지지 않겠나.

-미국에 왜 이리 오래 있나? 근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지난 4월22일 들어왔으니까 이제 8개월이 된 셈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나마 오래 전부터 해왔다. 3주 전 듀크대학에서 특강한 적이 있는데 한 평론가가 “미국영화가 뭐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닌데 꼭 여기서 작업할 이유가 있느냐”라고 묻더라. 하지만 영화는 문화, 예술이기 이전에 ‘생존게임’이다. 그리고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해외진출이나 해외시장 개척은 매우 절실한 문제다. 지난 수년간 새로 영화업계로 진입하는 대기업의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영화가 이대로 가면 어렵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해외망을 통해서 당장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부터라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라고 말해왔다. 그 잘 나가던 일본영화가 왜 주춤한가? 반면에 지난 십수년간 홍콩영화는 성공적이었다. 일찍이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화교시장을 교두보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덕분이다. 이런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기회가 있으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몇몇 영화제들을 통해서 이곳 제작사나 에이전트를 접촉하게 됐고…. 하지만 주저없이 당장 결정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무리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고….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곳에서의 작업을 결심했다. 이명세가 미국에서 터무니없이 잘 나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능성이 있지만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오기도 생기고 ‘갈 데가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잠시 침묵) 안 되면 델리 가게에서 마늘 까며 살지 뭐. (웃음) 한국에서처럼 이곳에서도 그렇게 노력중인 거다.

-그간의 작업에 대해서 알고 싶다.

=호의적인 제작자들을 많이 만나왔다. 토니와 리들리 스콧 형제의 초청으로 LA에 갔을 때 에이전트인 폴을 통해 유니버설, 폭스 서치라이트 등을 비롯한 20여개 제작사를 접촉했고…. 사실 처음에는 나도 당장 무언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곤란을 겪게 됐다. 스콧 형제가 운영하는 광고회사 RSA와 작업을 논의하기도 했는데 배우들의 파업으로 지연됐다. 최근에서야 파업이 끝났고 다시 협의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간 학교 다니면서 영어도 배우고 들어오는 시나리오들 검토하면서 지냈다. 이미 10여편의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런데 나한테 맞는 마땅한 작품이 없었다. 그중 <히트맨>이라는 작품은 내가 수락을 했다. 조지 로메로의 공포물들과 최근의 TV 시리즈 <>을 제작한 바 있는 ‘뉴암스테르담’이라는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제작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주연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가 나에 대해서 거부의사를 밝혔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감독과 작업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 부분에서도 만약 브리지스가 한국영화를 그 전에 좀 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탓도 있지만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뉴암스테르담’과는 계속 접촉중이다. 그간 검토한 작품 중에서 <뷰티풀 컨트리>(Beautiful Country) 같은 작품은 여전히 나의 수락을 기다리고 있다. <월 스트리트> <크로우> 1, 2, 3편, 테렌스 맬릭의 <배드 랜드> 등을 제작한 에드 프레스먼이라는 사람이 제작을 맡았고, 앞서 말한 테렌스 맬릭이 기획과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를 맡았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고 4월이면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촉박한 일정도 마음에 걸린다. 이곳과도 계속 논의중이다. 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음주에 다시 만나기로 돼 있다.

-공포영화를 만든다고 들었는데.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오고는 있고 지금이라도 나만 좋다면 할 작품은 있지만 당장 급하게 시작하기는 싫다. 가능하다면 내가 만든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자금 여유가 있다면 어떻게든 1년만 더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내 영화로 승부하고 싶다. 공포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여전히 가능성이 많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영화적 표현을 담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이라는 단편시나리오를 넘긴 적이 있다. 폭스 서치라이트 같은 곳에서는 이 단편대로 드라마만 만들어준다면 영화화하겠다고 의사를 전해왔다. 거기 피터 라이스 회장과 클라우디아 부사장이 <인정사정…>를 보고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했다고 한다. 내게 애정을 가지고 꼭 같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접촉을 해오는 영화사 중 하나다. 그래서 <미리엄>(Miriam)이라는 공포영화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1월 중순까지 아웃라인을 만들어 넘겨주기로 했다. 그러면 우리 에이전트가 영화사들과 협상을 해서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투자를 받아내기로 돼 있다. 폭스 서치라이트, 스콧 형제의 스콧 프리 영화사, 에드 프레스먼 등이 이 아웃라인을 기다리고 있다. (19일 다시 통화해본 결과, 바로 이날 이 감독은 이안의 영화를 제작해 온 제임스 샤머스와 <미리엄>의 아웃라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는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은 채 만남이 긍정적이었다고만 말했지만 고무된 분위기로 볼 때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간 듯했다.)

-본인의 에이전트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그간 미국 최대의 에이전트사인 CAA, United Talent Agency에서 독립한 셜만 등과 접촉해 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 자신이 구체적인 구상이 없던 상태인지라 무턱대고 구속력 있는 계약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큰 회사들이 이름만 있지 제대로 일을 추진 못하고 엉뚱한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다른 회사들이 훨씬 나은 조건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에이전트인 폴 슈월츠만을 택했다. 친구같이 편하고, 내게 많은 정보를 주려고 노력한다. 전에 ICM에서 해외감독 담당으로 일하다가 독립한 친구인데 지금 라스 폰 트리에, 왕가위 등을 담당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로로 접촉을 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일을 그를 통해서 처리한다.

-미국의 영화사들을 접촉해본 느낌이 어떠했나.

=약 20여 군데 영화사와 접촉을 해왔다. 그중에는 나에 대해 단순한 액션 감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장 클로드 반담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해오는 곳도 있었다. (웃음) 그런 곳은 아예 만나지도 않았고…. 하지만 정말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접촉해 오는 곳들은 정말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곳들이다.

-미국에 정착할 계획인가? 그러면 한국에서 준비중이었던 작업들이나 국내의 제작사들과는 어떻게 되나.

=내일 일을 어찌 알 수 있겠나? (웃음) 여기 온 것도 맨 처음에는 단순히 구경왔다가 기회가 오면 한번 해본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거다. 그리고 지금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게 1, 2년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정도 걸리는 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일단 어디서 활동을 해도 해외진출에 주안을 두고 할 생각이다. 국내에서 진행하던 작업은 일단은 보류 상태다. 다만 내가 이곳에서 데뷔해서 결과가 좋다면 어디서든 영화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예를 들어 이제 오우삼은 무조건 투자를 확보할 수 있는 감독 중 하나가 됐다. 그렇다면 미국 돈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는 거다. 해외진출뿐 아니라 투자유치도 가능하지 않겠나? 리안을 봐라. 외국 돈을 끌어다가 중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나.

-한국쪽 배우나 인력을 활용할 계획은.

=기본적으로 나는 지금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그건 영화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정사정…>가 우리 배우나 인력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광석 기사와 송행기 기사의 경우 이곳 캐스팅 에이전트에서 현지와의 연결을 주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미국의 한 감독이 접촉해 오기도 했다. 조성우 음악감독에 대해서도 프랑스쪽에서 관심을 보여 연락처를 넘겨준 적이 있다. 박중훈씨도 곧 조너선 드미의 초청으로 미국에 들를 예정이다. <인정사정…>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은데다가 영어도 된다니까 작품을 두고 접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인정사정…>의 국제 배급사가 라이언스 게이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시사회는 서브웨이 시네마가 진행했다. 서브웨이 시네마와는 어떤 관계인가.

=긴 이야기인데 정확히 잘 전해주기 바란다. 내가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제작사인 태원이나 국제 배급사인 라이언스 게이트에 현실적인 필요와 명분이 있으면 국제판을 재편집하는 데 융통성을 발휘해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만 내가 참여한 상태에서 나의 동의하에 재편집한다는 분명한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 있는 동안 이곳 관계자를 접촉할 때마다 이상한 소식을 전해들었다. 칸영화제 등에서 재편집된 내 영화를 보고 왔다는 것이다. 세상에 감독이 모르는 재편집이 어디 있나? 라이언스 게이트에서 나중에 재편집본을 보내왔다.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지만 몹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게 태원쪽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라이언스 게이트쪽에서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에이전트에게 감독이 재편집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미국 내 개봉을 취소하겠다며 암묵적인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국제 판권 판매나 비디오 판권 등으로 이미 수익을 낸 때문인지 아니면 내 영화가 극장 흥행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개봉을 앞두고 전혀 홍보에 성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미국 개봉 소식도 태원이나 라이언스 게이트가 아닌 이곳 영화 관계자들의 축하 메일 등을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됐다. 그들의 무성의로 놓치게 된 아까운 기회들이 많다. 프레스 홍보나 보도 자료가 제대로 전달이 안 돼서 <타임아웃>의 경우 편집장이 직접 수소문을 해서 개봉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내가 최근에 배운 영어 표현 중에 “Burning Bridge”라는 말이 있다. 영영 인연을 끊겠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태원과 라이언스 게이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이 그렇다. 지금 <춘향뎐> 역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춘향뎐>의 배급을 맡은 ‘Lot 47 Films’란 회사는 라이언스 게이트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신생 회사다. 하지만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지 큰 배급사가 좋은 것은 아니다. 정말 한국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잘 알릴 수 있는 배급사를 택해야 한다. 한번 팔고 만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더 지속적인 관심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작품을 관리했으면 좋겠다. <춘향뎐>이 뉴욕영화제에 왔을 때도 기뻤지만 이런 걸 봤을 때도 정말 <춘향뎐>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브웨이 시네마는 그 전에 내 영화를 보고 반한 팬들로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중 그래디는 현재 내가 하는 일을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이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사전 시사회 계획이 없음을 알고 라이언스 게이트와 접촉해 직접 나서서 특별 시사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이곳 유학생들의 도움으로 홍보를 했고, 현재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 성황이고.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곳에서 한국영화에 대해서 느끼는 감회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한국영화의 위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한국영화가 외국에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현실을 직시하고 접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좀 알려졌다고 생각하고 그냥 나가면 깨지고 만다. 명확한 현실의 인식으로부터 우리 영화의 21세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했던 거고….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가 <쉬리>의 기록을 깨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들었다. 제발 그런 숫자놀음은 안 했으면 좋겠다. 자칫 미국에 쿼터 개방의 명분을 줄 수가 있다. 제국은 만만치 않다. ‘제국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관객이 20만∼30만명 드는 영화가 20∼30편 만들어지는 것이지 흥행기록을 깨는 것이 아니지 않나? 선배로서 영화인으로서 관계자들에게 편지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올해는 미국에서 한국영화가 3편이나 상영이 됐다. 고무적이라고 본다. 이제 이곳 관객이 어느 정도 편견없이 우리 영화의 실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님이 여기 오셨을 때 너무 좋았고…. 그래서 술 먹고 실수도 했는데… 이 지면을 빌려 사과드리고 싶다. 그리고 <춘향뎐>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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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