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센터 오브 더 월드>의 등급 거부로 NC-17등급 논란 재개
NC-17등급은 등급이 없느니만 못하다? 최근 미국 독립영화계에서는 NC-17등급을 받을 바에야 등급 판정 자체를 거부하는 게 낫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마케팅 기회와 상영관이 극히 제한되는 NC-17등급을 받거나, 등급 심의를 하는 MPAA의 기준에 맞춰 R등급을 받고자 재편집을 하느니 아예 등급을 안 받겠다는 영화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사례로 화제에 오른 작품은,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창녀와 인터넷 재벌의 파괴적인 욕망을 다룬 웨인 왕의 신작 <더 센터 오브 더 월드>. “뭔가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웨인 왕과 제작사 아티잔 엔터테인먼트는 등급 심의를 받지 않고 개봉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티잔은 이미 지난해 다렌 아르노프스키의 <레퀴엠>을 등급없이 개봉한 바 있다. 마약 중독으로 망가져가는 이들의 자기파괴적인 삶을 그린 <레퀴엠>은 평단의 환대를 받았으되 NC-17등급이 예상되는 영화였고, 결국 등급 심의를 받지 않는 전략을 택했던 것. 불과 2개관에서 개봉했던 <레퀴엠>의 상영관은 90여개까지 늘어났고, 자국시장에서 제작비 450만달러에 좀 못 미치는 360만달러가량을 벌어들이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개봉이 예정된 해외시장 및 비디오 수익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레퀴엠>처럼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근친상간을 다룬 팀 로스의 <더 워 존>도 ‘독단적인’ MPAA의 등급 판정을 거부하고 소규모로 개봉한 사례. 성인 편향의 독립영화를 주로 배급해온 영화사 슈팅 갤러리의 경우, NC-17등급을 받을 법한 영화는 물론 <내가 여자가 된 날>처럼 안전한 영화를 배급할 때도 거의 등급 심의를 받지 않는다. 어차피 수많은 관객을 끌 영화들도 아니고, 등급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영화 상영관과의 연계를 통해 전국 14개 도시 정도에 배급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일반 부모들의 눈높이에 맞춘 MPAA의 등급 심의 기준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NC-17등급이 사실상 사형선고에 가깝다는 데 기인한다. 17세 이하 관람불가인 NC-17등급 영화는 대부분 방송 및 인쇄매체에 광고를 할 수 없고, 따라서 상영관을 얻기도 어렵다. 등급 판정을 받지 않은 영화도 상영관을 얻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나, 적어도 마케팅은 한결 수월하다는 게 아티잔의 마케팅 책임자 아모렛트 존스의 말이다. 디즈니나 워너 등 메이저 영화사들은 MPAA의 구성원으로서 등급 심의를 피할 입장이 아니라 최소한 R등급을 받기 위해 애쓰지만,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등급을 받지 않더라도 창작의 본뜻을 살리자는 의견이 늘어나는 추세. NC-17등급이 그저 선정성의 낙인이 아니라 ‘성인용 영화’라는 본래의 의미를 찾기 전까지 등급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황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