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이미지에 집착하는 감독이라 평하지만 사실 김기덕은 놀라운 이야기꾼이다.
일단 영화편수가 그걸 증명한다. 지난 5년간 6편을 찍은 감독은 김기덕말고는 없다. 천일야화를 이어가는 셰헤라자데라도 되는 양 그는 언제든
서너개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취인불명>이 개봉하기도 전에 7번째 영화 <나쁜 남자> 준비가 끝나간다. 그런데도 <나쁜 남자>의
내용에 대해 물어보니까 “<나쁜 남자>를 끝내고 찍어야 될 영화가 또 있다”고 조바심을 낸다. 물론 단순히 양적 문제는 아니다. <수취인불명>은
분명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녀주인공 두 사람이 끌고가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구조를 지닌 <섬>과 달리 <수취인불명>은
등장인물이 많고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도 여러 가지다. 세상을 보는 근본적인 시각에는 변화가 없지만 <수취인불명>은 등장인물 개개인의 그림자가
서로에 걸쳐 있어 음영의 굴곡이 잔상을 많이 남기는 영화다. 복잡하지만 산만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수취인불명>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혼혈아 창국(양동근)과 그의 어머니(방은진)에 관한 영화라고 암시한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갈 꿈에
부풀었던 창국의 어머니는 남자가 미국에 간 뒤 소식이 없자 매일 편지를 쓴다. 편지는 매번 ‘수취인불명’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돌아오고
그런 어머니를 보는 게 끔찍했던 소년 창국은 어머니를 욕하고 구타한다. 그러나 둘의 이야기는 <수취인불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취인불명>은 창국 모자를 지켜보는 지흠(김영민)의 눈을 빌린다. 지흠은 한쪽 눈이 먼 은옥(반민정)을 흠모하는데 어느 날 은옥에게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군 제임스(미치 말럼)가 접근한다. 제임스는 은옥에게 미군 병원에 가면 그녀의 잃어버린 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은옥은 창국 어머니가 과거에 그랬을 듯한 상황에 처한다. 은옥이나 창국 어머니나 미국을 통해 새 삶을 얻을 거라 기대했던 것이다. 여기에
창국을 조수로 쓰고 있는 개장수 개눈(조재현), 한국전쟁 때 북한군 죽인 걸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지흠 아버지(명계남) 등이 겹쳐지면
<수취인불명>은 미군기지 주변의 황폐하고 쓸쓸한 정서를 담은 어두운 풍경화가 된다. 그것은 <악어>에서 <실제상황>까지 이르는 전작 가운데
어떤 영화보다 절망적이어서 김기덕 영화의 뿌리를 되짚어보게 한다. 자신의 10대 시절 기억을 토대로 만들었지만 <수취인불명>에는 <친구>
같은 향수가 없다. 여기 없고 과거에 존재했던 아스라한 추억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굴욕과 모멸과 증오의 악업만이 있다. 막
첫 시사회를 마친 시점이라 폭넓은 반향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김기덕 감독은 이번에도 극단적인 찬반의견이 나오리라 예상한다. 개봉일인 5월26일이
가까워지면 그의 예언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10대 시절 경험하고 목격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수취인불명>은 회고담이 아니다. 영화 속 모든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영화를 찍기 위해 전국의 미군 기지 40군데 이상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는데 내 어린 시절 상황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었다. 기지
주변은 들여다볼 수 없게 키 큰 고목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주위에 2층집도 못 짓게 한다. ‘US Area’라는 푯말하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하며.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느낀 정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 시대를 그린 현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에피소드는
어렸을 때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지금도 처참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어렸을 때 미군 기지 근방에서 경험한 게 어떤 일들인가.
집이 일산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한반에 6∼7명은 혼혈아였다. 파주, 문산, 금촌 등 일산에서 조금만 가면 미군 기지가 있었다. 미군과
결혼한 여자들도 많았다. 실제로 기지 주변에 가보면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의외로 친미주의자들이 많다. 주위 상가를 형성한 사람들에겐
미군이 밥줄이라서겠지만. 미군들이 드나드는 기지촌 카페나 클럽에 가면 예나 지금이나 우울한 분위기다. 10달러 내고 테이블에 한국여자 불러와서
이야기하는 미군들을 보면 그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수취인불명>에 등장하는 미군을 아주 악한 인물로 그리려 했지만 취재하면서
바뀌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연민도 생기더라. 지금도 윤금이 사건이나 매카시 상병의 살인사건 같은 범죄가 벌어지지만 결국 개인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대한 지배구조가 변치 않는 한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고 그래서 미군의 이미지를 이중적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를 구상한 건 꽤 오래 전이다. 제작과정은 어땠나.
시나리오 초고는 5년 전에 썼다. PPP에 채택되기도 했지만 진척이 없다가 영진위 융자로 3억원을 받게 되자 제작자도 생기고 찍을
수 있게 됐다. <섬>이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해 7월25일에도 <수취인불명> 장소헌팅을 하던 중이었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은 내 기억과 현재상황을 결합하는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정서적인
차원으로 접근하자면 어떤 게 필요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
이야기에 따른 공간설정이겠지만 <수취인불명>은 강가나 저수지나 바닷가에서 찍지 않았다. 어떤 공간을 떠올리고 찍은 것인가.
영화의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바닥이다. 누런빛을 띠고 황량하지만 어딘지 온화한 듯 어딘지 텅 빈 듯한
느낌. 계속 논바닥을 보여준 이유도 그런 거다. 미군 기지 철망이나 헬기, 전투기의 소음이 마을을 휘감고 있는데, 이 기지 바깥의 논바닥은
황량하면서도 서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평택에서 가까운 팽성의 미군 수송기지에서 그런 풍경을 찾을 수 있었다.
추수를 마친 논이 다른 영화에서 물이 했던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논바닥과 ‘US Area’라는 푯말이 대립한다.
<수취인불명>을 보면 전작들보다 이야기가 풍성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캐릭터들의 겹침에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은옥은 창국 어머니의 과거로 보인다.
사실은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여자 캐릭터가 또 있었다. 실제로 미군과 살고 있는 젊은 여자를 등장시켜 찍기도 했는데 너무 중복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많아서 빼버렸다. 창국과 개눈도 마찬가지다. 둘 다 미군을 증오하며 닮아간다. 훈장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지흠 아버지나
영어 배우기를 거부하는 지흠도 비슷하다. 정통성에 대한 집착이다. 실제 나의 아버지가 전쟁 끝나고 30년 만에 훈장을 받았다. 집마당에서
시체가 나오기도 했고.
이번 영화는 정치적인 내용을 품고 있다. 이 땅에서 미군과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남북관계를 빗댄
<야생동물 보호구역>도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노골적이지 않게 표현할까가 고민이었을 것 같다.
은옥을 유혹하는 미군 제임스를 미군 전체를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했다면 노골적인 영화가 됐을 것이다. 제임스를 군생활에 적응 못하는
인물로 그린 건 이 영화를 한 군인의 문제로 그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나약한 것 같지만 때로 폭력적이다.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또다른
성향의 미국이 들어 있다. 훈련을 받을 때 “엎드려” 하는 명령에 대해 그는 “적이 어딨느냐”며 반문한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모호하다. 대체로 70년대로 보이긴 하지만 현재시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은옥의 눈을 미군 병원에서만 고칠
수 있다는 걸 보면 60년대 같기도 하다.
인물마다 시대가 다르다. 미군 병원에서 눈을 고치는 은옥이 60년대를 표상하는 인물이라면 미군과 한국여자 사이에 태어난 창국은 70년대를
상징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지흠은 80, 90년대 인물이다. 3가지 다른 시대상황을 하나의 드라마로 풀 수 있다고 봤다. 논리적 모순이 있더라도
정서적인 일치감을 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접근하기에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 영화를 봐온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잡는 장면이나 개가 자위도구로 사용되는 장면은 <섬>의 자해장면만큼 논란이 예상되는 장면이다.
나는 학대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강렬한 이미지를 만드는 내 나름의 방식일 뿐이다. 실제 개를 다치게 하며 찍은 장면도 없고 개장수는
처절한 응징을 받는다. 은옥이 개를 이용해 자위하는 장면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립된 아이가 발견한 쾌락이며 습관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그녀는 그렇게 위로받는다.
전작들보다 더 절망적인 영화라는 느낌이다.
이건 26살에 목매달아 죽은, 혼혈아인 내 친구의 이야기다. 내가 보고 싶어 만든 영화일 수도 있고 그 친구에 대한 제사 같은 영화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내 영화성향이 점점 더 절망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지금 준비하는 영화 <나쁜 남자>는 어떤 영화인가.
악의 마수에 걸려든 여자와 순수조차 찾아보기 힘든 근본적인 악인의 이야기다. 며칠 전 <`PD수첩`>에서도 이런 내용을 보도했는데
여대생이 카드빚 100만∼200만원 때문에 육체포기각서를 쓰고 창녀가 되기도 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망쳐가는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너저분한 주변 캐릭터 다 빼고 아주 간단하게 두 사람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섬> 같은 구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더 간단하고 도시가
배경이다. 잔가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갈 계획이다. 빨리 찍고 또 하고 싶은 영화 들어가야지.
하고 싶은 영화라니, 무슨 뜻인가.
<나쁜 남자> 다음에 찍을 영화들이 또 있다. <활>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영화인데 <활>은 노인이 소녀에게 집착하는 사랑이야기다.
노인은 자신이 키우던 소녀가 17살 되면 결혼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7살이 가까워지면서 남자들이 소녀를 노리고 노인은 자신의 망상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처절하게 망가지는 영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스님들의 일상을 그리는 영화다. 동자승에서 시작해 17살,
30대, 60대, 90대까지 5개 챕터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으로 나눠 보여준다. 그 나이대에 맞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절에서 1년 내내 찍는 영화다.
<섬>으로 많은 영화제를 돌아다니고 상도 많이 탔다. 해외영화제 반응은 어떤가.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나간 덕에 무엇보다 긍정적인 건 <섬>이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최근 홍콩에서 개봉했고 일본에선 5월에 개봉한다.
이제 해외에 팔리는 영화가 어떤 거란 느낌이 온다. 해외에서 <섬>을 본 관객이 국내 관객 수만큼 된다. 내 영화에 관객이 드느냐 안 드느냐는
관객이 무지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반응이 참 좋았다. 2번이나 추가상영을 할 정도였다.
어쨌든 내가 만드는 영화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거다. 전보다 해외 반응을 의식하지만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뿐이다. 개런티
비싼 배우들은 내 영화 출연 안 한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걸러질 거 다 걸러지고 정리된 상태에서 일하는 느낌이다.
남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