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 시차없이 전 세계 개봉하는 사례 늘어
올 여름, 할리우드영화 앞에서 미국과 그 밖의 나라 관객은 꽤 ‘평등’해진다. 메이저배급사는 물론 몇몇 인디배급사들까지 대량의 영화들을 북미시장과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전세계에 한꺼번에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다리는 세계의 관객이 두손 들고 환영할 이런 조처는, 그러나 스튜디오에는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커다란 모험이다. ‘동시개봉 전격작전’은 미국 내에서 실패한 영화들에 대해 해외 마케팅 전략을 다시 세우거나 개봉일정을 다시 잡아서 영화를 소생시킬 시간이 없어진다는 현실적인 위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가장 혼잡스러운 여름이 될 것이다.”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해외배급 책임자 마크 주커는 말한다. 한 미국 메이저영화사 해외 전문가도 시인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우리는 대개 국내 개봉에서 겪은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통해 해외 개봉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크 주커는 여름 라인업과 관련해 커다란 마케팅 전략 변화는 더이상 없으리라 전망한다. 여름 개봉작들은 사실 세간의 화제에 오르내리며 알릴만큼 알려진 영화들이다. 단지 해외시장을 위해 홍보전략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폭스 인터내셔널의 대표 스콧 니슨은 신중론자다. 세계 동시개봉 전략의 위험성을 인정하면서, 그는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여름 시즌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몇몇 영화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에 치어 잠재수익의 5~10% 정도를 손해볼 것이다. 그러나 해외 개봉날짜를 잘 조정하면 그런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행의 ‘사상자’는 낼 수 없다면서.
해외 개봉일을 당김으로써 스튜디오들이 감당해야 할 부대 비용도 커진다. 마케팅 비용과 프린트 비용이 10∼20%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사용한 프린트를 회전할 수도 없고, 미국 개봉 때 나온 이야기나 악소문을 잠재울 기회도 적어진다.
할리우드가 전세계 관객들이 미국과 동시개봉으로 보고 싶어한다고 짐작하는 영화들은 <진주만> <미이라2> <혹성탈출> <쥬라기 공원3> <닥터 두리틀2> <파이널 판타지> <쉬렉> <툼 레이더> 등이다. 또한 상영일을 당겨 잡아 일찌감치 경쟁에 합류할 영화로는 <고양이와 개들>(Cats and Dogs) <무서운 영화2> <롤러 볼>(Roller-ball) <서드피쉬>(Swordfish) 등이 있다.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은 7월14일에 개봉하는 일본만 빼고, <진주만>을 미국 개봉 한달을 안 넘기도 5월과 6월 사이 세계 동시 개봉한다. 전부 합쳐 5천∼6천개의 프린트를 동시에 푸는 것이다. UIP는 미국보다 이틀 앞서 4월11일 영국에서 개봉한 <브리지트 존스의 일기>로 이미 이 여름전쟁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 <브리지트 존스의 일기>는 스페인에서는 6월, 오스트레일리아는 7월,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는 8월에 차례로 개봉할 예정이다. <미이라2>는 5월4일 미국 개봉을 필두로, 3주 안에 전세계 80% 이상 나라에 개봉된다. <트위스터> <딥 임팩트> <미이라> <글래디에이터>에서 그랬듯 초여름부터 대작영화들로 치고들어가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6월부터 8월까지 성수기를 피해 순차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6월29일 개봉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는 9월이나 10월경에 개봉한다. 바즈 루어만의 <물랭 루즈>는 LA 개봉 6일 뒤인 5월24일 루어만의 고국 오스트레일리아로 간다. 라틴 아메리카는 7월 휴가철에, 아시아는 8월에 개봉한다. 그러나 유럽은 한참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그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싶지는 않다“고 니슨은 말한다. 북미에서 블록버스터가 휩쓸고 지나간 여름 뒤에 차분하게 개봉하면 오히려 관객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그러면 다른 영화들에 치이지도 않고 장기상영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누구의 전략이 적중할까. 어차피 돈은 할리우드로 흘러들어 가겠지만.
위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