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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친구’야, 비결이 뭐야?
2001-04-13

10일만에 관객 210만명 ‘친구’돌풍

<친구>의 흥행은 실로 놀랍다. 지난달 31일 개봉해 지난 9일까지 열흘간 서울관객이 76만여명, 전국에서 210만여명이 들었다. 전국관객 200만명이 넘기까지 99년의 <쉬리>가 16일, 지난해 <공동경비구역 JSA>가 15일 걸렸다. 일년이 채 안돼 기록이 경신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건 기적에 가깝다.

<친구>의 어떤 점이 이런 흥행을 가능케 할까. 이 영화는 <쉬리>나 <공동경비…>보다 제작비도 적게 들었고, 더욱이 `15살 관람가'였던 두 영화화 달리 등급도 미성년자 관람불가다. 또 액션 흥행물에 멜로까지 섞은 <쉬리>나, 남북 간의 해빙기류를 탔던 <공동경비…>처럼 장르적, 시기적 호재가 뒷받쳐주지도 않았다. <친구>가 선택한 누아르라는 장르는, 더욱이 <약속>처럼 멜로를 뒤섞지조차 않은 누아르는 대박이 터지는 장르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만듦새와 연기가 좋다는 반응은 한결같지만, 그것만으로 이처럼 관객이 몰리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평단의 점수도 만점에는 못 미친다. “깡패영화의 관습에 묻혔다” “인물들의 동기 설명이 약하다”는 지적이 따라다닌다.

향수 내지 복고

<공동경비…>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보경 이사는 “<쉬리> <공동경비…>가 지녔던 분단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상응하는 힘을 `복고'라는 요소가 갖고 있다”며 “최근 들어 가요, 패션 등 문화 전반에 복고의 감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친구>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 감성을 정확하게 끄집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쉬리>를 제작하고 감독한 강제규 감독이 아직 이 영화를 못 본 탓에 <쉬리>의 조감독이었던 박제현 감독에게 물었더니 “교복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을 제일 먼저 꼽았다.

영화 단체관람을 가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하거나 유달리 학생들 잘 때리는 교사에게 `문제 학생'이 대드는 광경 등 <친구>에는 교복세대에게 익숙한 기억들이 살아있다. 하지만 획일화의 강요 아래 억눌려 지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반갑기만 할까?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향수는 건망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단어일 수 있다. 못 견딜 것 같았던 심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친구>의 연출은 그 점에 부합하는 대목이 있다. <간첩 리철진>을 제작한 씨네월드의 이준익 대표는 “<친구>는 논리보다 감성에 호소한다”며 “그 시절을 논리적으로 따져묻지 않으며 시나리오는 점프하듯 건너뛰는데, 그 사이의 여백에 관객들이 감성적으로 묻힐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영화와 깡패영화

고교시절은 성장기이다. 그 때의 향수를 건드린다면 성장영화가 더 적합할 텐데 <친구>는 누아르, 한국식으로 말해 `깡패영화'다. 외국의 성장소설이나 성장영화에는 가족이나 주변사회를 등지고 떠나는 과정이 수반된다. 성장에 수반되는 일종의 배신을 대다수가 제대로 못 해본 탓인지 한국에 성장영화는 드물다. 그러나 깡패영화는 많다. <친구>의 유오성과 장동건은 학교를 박차고 나간다. 이 둘은 일단 배신을 감행했지만, 갈 길이 막혀 있고 결국 깡패가 된다. 그러니까 한국의 깡패영화는 성장영화를 대리하는 측면이 있고, <친구>에서 이 점이 선명해진다. 이준익 대표는 “한국에서 배신은 곧 종말이다. 학교를 나가봤자 갈 데가 없다. 그래서 깡패가 된 이들을 그린 <친구>는 전형적인 깡패영화지만, 성장 없이 달리기만 했던 그때의 기억을 들춰내고 달래주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친구>가 불러일으키는 향수는 문화적 유행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불완전했던 성장을 위로해주는 구실도 하기 때문에 관객이 몰린다고 말하면 비약일까?

<공동경비구역…> 기록 깰까?

지금까지의 관객증가 속도로 보면 <공동경비…>(서울 250만명)를 능가하리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6월부터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아이>, <미이라2> <주라기공원3> <진주만> 등 할리우드 흥행작 개봉이 줄을 잇게 된다. 또 <공동경비…>와 <쉬리>가 씨제이엔터테인먼트와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배급망이 확보된 시점에서 개봉한 것과 달리, <친구>를 배급하는 코리아픽처스의 배급력이 아직 약해 언제까지 극장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 등 변수가 많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