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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광풍 속일지라도 좋아하는 것에 눈을 두기 위해, <눈 둘 데가 없네>
글 이우빈 2026-10-21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영화다. 누나 상희(김민희)와 동생 상원(신석호)이 오랜만에 엄마(최명길)를 만나러 제주에 왔다. 남매의 부모가 일찍이 이혼하여 상희는 조부모의 손에 자랐고, 이 탓에 모녀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오늘이 거의 10년 만에 보는 날이다. 상희는 외국 과자를 수입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짧은 실험영화를 만들며 산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피아노도 곧잘 쳤다고 한다. 어머니의 옆에는 새아버지(권해효)가 있다. 둘은 함께 살며 펜션을 가꾸고 식당도 운영한다. 땅을 사서 상희와 상원에게 물려줄 만큼 돈을 제법 벌었다. 함께 커피 마시고 식사하고 바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와중, 상희는 새아버지의 딸 주원(박미소)을 만난다. 주원은 상희의 영화를 유튜브에서 본 뒤 너무 좋다며 난리다. 그렇게 2박3일의 나날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되었으나 상희는 불현듯 사라져 어딘가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늘 가지고 다니기 좋은, 작고 귀여운 캠코더를 들고서다.

<눈 둘 데가 없다>라는 말은 중의적이다. 보기 험하고 흉한 것이 눈앞에 있으니 눈 둘 데가 없을 수 있고, 너무 어여쁘고 어디든 좋은 것이 눈앞에 있어도 눈 둘 데가 없다. 영화는 전자의 뉘앙스가 팽배한 세상에서 기어코 후자의 의미를 관철하려는 자들의 노력으로 지탱된다. 영화가 시작하고 화면엔 “흐리고 바람 부는 날. 오후엔 햇살”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홍상수의 평소 영화들보다도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작품인 것이다. 이곳은 제주답게 무척 거센 바람이 종일 분다. 상희는 요즘 따라 이런 날씨가 좋다고 하지만 영화를 찍기에 편안한 날씨는 영 아니다. 현장의 감각을 영화의 오감으로 전하는 일에 익숙한 것이 근래 홍상수의 영화라지만, 이 영화의 소리는 너무나 날것이다. 인물들의 대사를 잡아먹을 정도의 제주 바람이 하염없이 분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어진다. 잘 들리지 않아도, 모든 것이 바람에 나부껴 휘날려도 카메라는 눈 둘 곳을 찾으려 애쓴다.

저녁 식사 전, 주원은 상희에게 ‘영원’이 무엇인지 묻는다. 상희는 영원이란 단어 역시 사람이 만든 말일 뿐이라며 그런 말 쪼가리를 떨어뜨리라고, 미끄러져 나가게 하라고 열변한다. 다만 상희가 쏟아내는 대사들 역시 말일 뿐이다. 그 말들 사이에 진정으로 보이는 것은 둘 사이에 놓인 자그마한 찻잔 하나, 후경 속 마당에 쓰러진 미상의 파란 의자, 더 뒤에서 쉴 틈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들이다. 말의 지속이 만드는 스크린의 공간 위에서 관객이 눈 둘 곳은 끊임없이 제공된다. 이름 지어지지 않은 사물들과 자연의 양태를, 그것들의 세부를, 숲 안에서 대화하는 인간들의 표정을, 나아가 그것들을 보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이것들은 꽤 어여쁘다. 상희는 영화 내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듯한 말투로 내레이션을 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 가족들은 상희가 유튜브에 올린 영화를 본다. 제목은 <작은 꽃>이며, 상희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렇다. <눈 둘 데가 없네> 역시 상희가 만든 또 하나의 영화일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간명한 이중구조의 틀 짓기가 더욱이 많은 상념을 부른다. 제79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 최우수연기상, 에큐메니컬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CLOSUP

제아무리 말이 말뿐이라지만, 상희가 자신의 영화 <작은 꽃>에서 발화하는 대사는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바람이 많았던 날,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꽃이 제게 말을 거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략) 난 순하다. 난 조용하다. 난 언제나 뭔가를 좋아하고 있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꽃의 말인지 정확히 구분할 순 없다. 상희의 생각이 곧 타자의 조용한 외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노랗고 작은 들꽃을 보며 세상의 눈 둘 곳을 찾아낸 상희의 카메라가 아주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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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에서> 감독 홍상수, 2023

홍상수는 몇년 전에도 제주에서 영화를 찍었다. 그의 29번째 장편영화 <물안에서>다. 온 화면의 초점이 아웃포커스로 처리된 이 영화에서 관객은 제대로 된 시각 정보를 얻기 힘들다. 어떠한 의미에선 정말로 눈 둘 곳이 없는 것이다. 하여 <물안에서>가 세상의 어떠한 부정성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느껴졌다면, <눈 둘 데가 없네>는 정반대다. 청각적 정보가 소거되는 것에 가까운 제주의 광풍 속에서 우리는 화면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춰 바라볼 수 있다. 이는 몹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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