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과학기자대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신없이 기사를 쓰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집중력을 잃고 그 화면을 훔쳐보는데, 갑자기 말도 안되게 생긴 생물이 화면에 등장하는 게 아닌가. 디스토르투스 렉스라는 이름의 그 공룡은 툭 튀어나온 이마에 팔이 네개나 달린, 공룡이라 부르기도 뭣한 크리처였다. 내 ‘쥬라기 공원’에는 저런 괴물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데. 마음 한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런 내게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이하 <오크 스트리트>)은 <쥬라기 공원> 프랜차이즈가 얼려버린 내 마음을 다시 살려낸 공룡영화였다. 우리 동네가 2억년 전 중생대 한복판에 갑자기 뚝 떨어지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크 스트리트>는 공룡 시대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짜릿한 가족 모험영화이자, 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절대 2억년 전으로는 가면 안되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생존 사투 경험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크 스트리트>는 예우를 갖춰 공룡을 복원하면서, <쥬라기 공원> 연작 이후 가장 성공적인 공룡 모험영화라는 자격을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됐다.
티라노가 없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깃털 달린 공룡 시노사우롭테릭스 화석.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영화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오지 않는다. 공룡 중의 공룡, 공룡 하면 떠오르는 티라노사우루스 대신 오크 스트리트를 걸어다니며 주인공 가족을 위협하는 수각류 육식공룡은 쥐라기에 번성한 알로사우루스다(자세히 보면 앞발의 손가락이 3개다). 알로사우루스도 인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대중문화의 정점에 올라선 티렉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당장 지난 7월에 소더비 경매에서 ‘거스’라는 이름의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 약 5013만 달러, 한국돈 750억 원 상당에 낙찰될 정도다.
자연스레 이런 간판 스타를 캐스팅에서 뺀 이유가 대선배의 그림자를 느껴서는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운명의 1993년 이후, 모든 공룡 영상물은 <쥬라기 공원>이라는 금자탑과 비교당하는 가혹한 처지에 놓였다. 당장 영화에 어떤 공룡을 등장시키느냐부터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이때 영화의 간판이 될 거대한 육식공룡 자리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라 알로사우루스를 캐스팅한 건 <오크 스트리트>가 <쥬라기 공원>의 영향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혹시 주인공 가족이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지 않던 2억 년 전으로 날아가서 알로사우루스가 대신 나온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다. 물론 오크 스트리트를 거니는 모든 공룡이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등장한 건 아니다. 공룡 애호가의 관점에서 나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살 수 없는 공룡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심기가 꽤나 불편해진다. 주인공 플랫 가족과 오크 스트리트가 타임슬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2억년 전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가 끝나고 막 쥐라기가 시작되던 시기다. 영화에 출연하는 거의 대부분의 공룡이 진화하기도 전의 시대다. ‘2억년 전’이 <쥬라기 공원>의 ‘쥐라기’ 같은 메타포라고 치자. 그래도 이 공룡들은 함께 같은 곳을 거닐 수 없다. 등에 돛이 달린 육식공룡인 스피노사우루스는 1억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살았고, 등에 삼각형 골판이 여럿 달린 스테고사우루스는 1억5천만년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층에서 발견된다. 그러니까 오크 스트리트는 2억년 전 곤드와나대륙의 어느 지역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는 관객이 잘 아는 대표 공룡을 모아놓은 상상의 동물원에 가깝다.
이 더운 날씨에 왜 다들 털을 치렁치렁 달고 있니
독일 알렉산더 쾨니히 박물관이 2019년에 복원한 역대 최대 규모의 알로사우루스 화석.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오크 스트리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동네를 돌아다니는 공룡 대부분이 몸에 털 혹은 깃털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랩터처럼 날쌔게 돌아다니며 주민의 머리를 잡아 뜯는 수각류 육식공룡은 물론, 거대한 크기의 용각류 공룡(목 긴 공룡)까지 (원시적 깃)털을 걸치고 있다. 이 모습이야말로 <쥬라기 공원>부터 <오크 스트리트>까지, 33년 사이 공룡이 가장 크게 변한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네가 먹는 통닭은 공룡의 후손”과 같은 표현이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이 개봉할 때까지만 해도 공룡 연구자들은 새의 진화에 관해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공룡에서 새가 진화했다’는 파와 ‘다른 파충류에서 새가 진화했을 것이다’고 주장하는 파가 격렬히 논쟁 중이었다. 이 논쟁의 결론은 20세기 말, 중국 랴오닝성 지층에서 깃털 달린 공룡 화석이 발견되면서 정리됐다. 깃털 달린 공룡 화석은 새가 공룡에서 진화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 이후로 공룡에 깃털을 뒤집어씌워 복원한 일러스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현대의 조류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룡 복원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2022년에는 공룡의 먼 친척뻘인 고대 파충류 익룡도 깃털 비슷한 구조(피크노섬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연구도 나왔다. 중생대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폭신폭신했을 것 이다.
그러나 과학이 넓힌 상상의 지평에 영화가 도달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중의 공룡 인식이 학계보다 느렸기 때문이다. 기억 속 멋진 근육질 티라노사우루스가 털을 덜 뽑은 통닭 같은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은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다. 깃털 공룡 화석이 발견된 이후에 공개된 <쥬라기 공원>(2001)를 보면, 영화에서 벨로시랩터(벨로키랍토르)가 머리에 깃털이 살짝 달린 형태로 복원되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벨로키랍토르를 거의 새와 비슷한 외양으로 그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 제작진은 멋짐, 프랜차이즈의 통일성, 과학적 엄밀성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정수리에만 깃털을 몇개 박아넣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오크 스트리트>는 폭신폭신한 깃털 가득한 중생대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30년치 공룡 연구를 가까스로 따라잡았다. 육식공룡도, 초식공룡도, 익룡도 다 털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 목 긴 공룡인 용각류도 풍성한 털옷을 입은 채로 짝짓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가능성은 있겠으나 아직 목 긴 공룡이 깃털과 비슷한 피부 구조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화석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솔직히 폼이 정말 안 난다).
너희 인간들은 공룡에 관한 예우를 갖춰라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페인의 고생물학 교수인 호세 루이스 산스는 저서 <Starring T. rex!>에서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공룡을 분석한다. 고생물학자들이 얻은 공룡에 관한 지식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일종의 신화적 층위에서 수용된다는 것이다. 과학도 인간의 인식이라는 렌즈가 작동하는 불완전한 지식 체계인데, 스크린 위의 공룡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한번 더 필터링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살 때부터 공룡을 좋아한 애호가로서, 나는 공룡이 스크린 위에서 좀더 존중받았으면 한다. 괴상한 모습으로 인간을 갈기갈기 찢고 뜯어먹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크리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한 시대를 실제로 살아간 생물로서 보다 더 과학적으로 복원된 모습으로 표현됐으면 한다. 그리고 <오크 스트리트>는 크리처와 과학 사이에서 공룡의 위엄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쥬라기 공원> 프랜차이즈가 최근 해내지 못한 일을 이 영화가 해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오크 스트리트>는 때로는 오마주의 형식으로, 때로는 변용의 대상으로 <쥬라기 공원>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평을 돌파했다. 자전거를 타고 교외의 한적한 동네를 질주하는 청소년들, 한밤중에 바깥에서 번쩍이는 빛은 1980~90년대 스필버그 영화의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마이클 크라이튼이 만든 테크노 스릴러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리고 중반부가 지나며 영화는 놀라운 방식으로 레퍼런스를 뒤틀어버린다. 주인공 가족은 관객이 가족영화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영화는 해피 엔딩을 쟁취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30분을, 타임슬립물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엔딩에 녹아 있는 비밀을 찾아보길 바란다. <오크 스트리트>가 보여주는 석연찮은 해피 엔딩은 감독이 어떻게 1980년대 스타일의 가족주의를 잔인하게 해체했다가, 자신만의 이상한 방식으로 재조립했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새 시대의 공룡영화가 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