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순한 얼굴로 다가와서 마음을 은근히 표현하거나, 형형한 안광으로 위험한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남자. 배우 김준한이 표현하는 캐릭터들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교차하지 않는 두 가지 영토로 나뉜다. 순애보의 영역엔 <굿파트너>의 선배 변호사를 10년째 짝사랑 중인 정우진이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선배 신경외과 교수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마음을 전하는 전공의 안치홍이 존재한다. 배우 김준한의 나쁜 놈 계보에는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장모의 돈을 탐내며 아내 납치극을 벌이는 활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잠에서 깬 아내를 발로 걷어차는 재훈 등이 있다. 신기한 점은 배우 김준한이 순애보와 나쁜 놈 중 한 영토에 서서 연기를 펼칠 때면, 어느새 다른 한쪽을 깡그리 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가 근래 들어 순애보와 나쁜 놈으로 분류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공개된 이상민 감독의 공포영화 <살목지>에서 배우 김준한은 주인공 수인(김혜윤)과 동료들 앞에 나타나 판을 뒤흔드는 선배 교식을 연기했다. 괴담이 떠도는 저수지 살목지에 먼저 당도했다가 실종됐다고 알려진 교식은 저수지에라도 들어갔던 것인지 물에 젖은 채 불쑥 나타나 작동하지 않는 드론의 GPS를 연결하고 곧바로 본업에 임한다. 수인은 선배 교식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던 차에 그가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기태(이종원)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방금 전까지 본 교식은 누구인가.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그는 필시 죽은 자일 테지만 배우 김준한은 산 자들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망자를 괴기스러운 몸짓이나 과장된 말을 늘어놓지 않고 피곤한 직장인의 형상을 통해 현실적인 공포를 조각한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살목지란 저수지를 바탕으로 기묘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배우 김준한의 연기는 이처럼 일상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영화에서 강도 높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돌들을 부딪혀 소리를 내는 동작에서조차. 영화 속 초현실적인 상황과 불화하면서도 영화를 한층 현실감 있게 만드는 배우 김준한의 단정한 연기는 공포의 저수지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전말을 명쾌하게 알려주지 않는 연출자의 지향점과 공명하며 서사를 알 듯 모를 듯하게 만들고 극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영화를 처음부터 곱씹어보게 만든다.
밴드 이지(izi)의 드러머로 창작 활동을 시작해서일까. 배우 김준한은 합주하듯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난장을 펼치는 영화에 자주 얼굴을 비추었다. <보호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그는 여러 인물들이 뒤섞이는 서사에서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근작인 오승욱 감독의 <리볼버>에서 그는 경찰 여럿이 참여한 비리를 홀로 떠안고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선배 수영(전도연)을 한때 짝사랑했지만, 그 자신도 어느새 비리에 물든 경찰 동호를 세공했다. 후배 경찰 동호는 연모의 대상이 추락한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수영을 감시해야 하는 이중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여기서 배우 김준한은 그동안 결코 섞이지 않을 듯 보였던 순애보와 나쁜 놈의 영토를 동시에 딛고, 분명 닳아버렸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끄트머리를 스크린에 새겼다.
말끔한 얼굴로 나타나 애정 어린 마음을 전하거나 악의를 숨기지 않거나. 배우 김준한의 양극단을 볼 수 있다는 건 관객으로서 늘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지만 앞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두 가지 어휘로만 정의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갈 전망이다. 배우 김준한이 요즘 몰두하고 있는 캐릭터의 뼈대는 “깊은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며, 그가 촬영을 마친 김선경 감독의 영화 <파문>(가제)은 그 자신도 “캐릭터가 겪고 있는 일들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 인물을 잘 담아내고 있는 걸까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다음 장부터 이어지는 긴 인터뷰가 작은 선물이 되길 바란다. 밴드의 드러머가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 전도연, 지창욱 등 선배, 동료 배우들과 호흡하며 느낀 솔직한 감정들, 겸손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는 예술가로서의 태도 등이 그의 말과 말 사이에 녹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