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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표백된 노스탤지어, 혹은 ‘역사의 과잉’, <메이드 인 코리아>와 1970년대 배경 한국영화와 콘텐츠들
배동미 2026-01-29

최근 한국영화 일군의 감독들이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밀수>(2023)에서 1970년대 교역의 폐쇄성과 그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이들의 기량을 보여주었고,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2022)으로 1979년에 벌어진 12·12사태를 스크린에 옮겼다. 연상호 감독은 <얼굴>(2025)에서 1970년대 성과주의 이면에 희생된 여성을 위무하고, 변성현 감독은 <굿뉴스>(2025)로 1970년에 일어난 일본 항공기 하이재킹 사건, 일명 ‘요도호 사건’을 청년세대의 시선에서 블랙코미디적 터치로 그렸다. 강윤성 감독은 1970년대 벌어진 ‘신안선 도굴 사건’을 전라 지역 특색을 담아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2025)로 완성시키기도 했다. 언급한 작품 외에도 1970년대를 다루는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다. 연내 개봉할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급한 작품들의 장르나 화법, 그리고 성취는 모두 다르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감독들이 1970년대란 정치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천착하는 건 다소 기이한 일이다. 이는 제작 시기가 겹침으로써 만들어진 단순한 우연일까. 혹은 1970년대란 과거 시점이 한국 콘텐츠에서 폭력과 억압을 묘사할 수 있는 일종의 장르가 된 건 아닐까. 특히 2025년 말 디즈니+에서 공개된 우민호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 <메이드 인 코리아>는 첩보물의 문법 속에서 1970년대란 유신시대의 어두운 면을 다소 낭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각하”로 지칭되는 인물을 슬며시 등장시키고, 중앙정보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서울의 봄> 다음으로 역사와 가장 연관이 깊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권력에 도취되어 있어 권위주의자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끌어내린 현재의 시청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억압의 시대에, 억압자가 되길 자처하는 주인공

<메이드 인 코리아>는 1970년대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부산지부 정보과장인 백기태(현빈)가 가진 권력욕과 재물욕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작품이다. 우선 백기태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를 여읜 다음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고향인 부산으로 넘어와 어렵게 살아남은 인물로 소개된다. 그는 중정 직원이지만 부산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위치에 불만족스러워하며, 권력과 재물을 모두 쥐기 위해 마약을 제조해 일본에 판매하려고 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1은 그가 안정적으로 마약을 제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공정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맞서고, 장애물을 제거하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중정 과장이 마약을 제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유통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은 극 중에서 ‘잘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손쉽게 설명된다. 처음 마약 사업에 반대했던 동생 백소영(차희)에게 백기태가 그들이 현재 사는 공간을 다소 폄하하며 설득하려 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백기태는 말한다. “다 살자고 이러는 거다.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삼남매 어떻게 부산에 왔어? 또 어떻게 살았어? 이렇게 살면 10년, 20년 후에도 크게 달라질 게 없어. 이 빌어먹을 달동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이에 백소영은 말한다. “중독자들 생길 거 아니야. 나라가 엉망이 될 텐데.” 백소영은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백기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곤 교묘한 논리를 편다. “만들긴 한국에서 만들지만 다 일본으로 수출할 거야. 외화도 벌어들이고 우리가 수출 역군이 되는 거지. 사업이 잘되면 우리도 새 시대 여는 데 일조하는 거야. 새 시대에 걸맞게 우리 집안도 도태되지 않고 선두에 서는 거지. 그러니까 이것도 나랏일이고 애국이야.” 그가 말하는 새 시대란 무엇이고, 그 선두에 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메이드 인 코리아>는 이에 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백기태 개인의 부와 권력, 그리고 공동체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권력의 사슬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오랜 시간에 걸쳐 보여주길 택한다. 말하자면, 그의 목표점은 그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제논의 역설’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동생을 끌어들이고, 지역의 마약 딜러 강대일(강길우)을 포섭하여 마약 제조를 시작한 그는 중정 부산지부 황국평 국장(박용우)에게 마약 사업을 들킨다. 백기태가 맞은 1차 위기다. 그가 위험에서 빠져나가는 방식은 황 국장에게 앞으로 발생할 수익을 상납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이후 황 국장의 윗선인 천석중 청와대 경호실장(정성일)의 귀에까지 마약 사업에 관한 소문이 들어간다. 그러자 백기태는 천 실장에게 대통령선거에 쓸 비자금을 약속하고 실제로 다수의 돈가방을 쥐어주기까지 한다. 한 가지 의문은 막상 백기태가 큰돈을 쥐고 기뻐하는 모습이나 그가 달동네를 떠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는 권력의 촘촘한 거미줄에 갇혀 바쁘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먹잇감에 불과할 뿐이며, 그에게 만족할 만한 현재는 도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빈 배우가 표현하는 여유로운 모습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환상을 덧입힌다. 중요한 국면마다 백기태는 미리 도청해둔 카세트테이프나 미행하여 찍은 흑백 사진을 꺼내드는데, 이 소품들은 그가 사전에 모든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구두점이 된다. 시즌1 후반부로 갈수록 <메이드 인 코리아>는 백기태가 언제, 어떻게 다른 인물들을 감시하고 만약의 사태를 준비했는지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소동이 끝난 뒤 백기태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면, 그의 얼굴 위로 흘러가는 연기의 불규칙적이고 아름다운 형상을 통해 그가 러닝타임 속에서 보여주어야 할 주도면밀함과 그로 인한 여유로운 태도를 갈음해버린다. 서로를 감시하고 도청하며 수싸움을 벌이는 두뇌 게임은 그러므로 시청자의 머릿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다.

사라진 도청 신이 가능하려면 백기태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는 인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인 남동생 백기현(우도환)의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 시퀀스를 보면 이 문제는 더욱 도드라진다. 백기태는 백기현이 설명하기도 전에 그가 겪은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군에 찾아가 동생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한 보안사 수사계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그가 한 중정 요원으로부터 자신의 동생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보고받긴 하지만 동생에게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한 그 수사계원을 바로 찾아내어 징벌하는 듯 폭력을 가하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백기태는 군에 들어가 그 수사계원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먹을 날리고 구둣발로 짓밟는다. 백기태가 물리적인 힘으로 누군가를 제압할 때 포마드로 올린 그의 머리카락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그의 얼굴에선 땀방울 하나 흐르지 않는다. 이때 폭력은 현빈이란 배우의 신체를 통과하며 페티시화된다.

앞서 언급한 <밀수> <서울의 봄> <얼굴><굿뉴스> <파인: 촌뜨기들> 등이 1970년대란 과거를 가져오되 피억압자들의 시점을 견지하는 반면 <메이드 인 코리아>는 억압하는 인물의 시점을 택한다. 그 인물이 윗선으로부터 억압받기 때문에 그가 아래에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은근슬쩍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정의와 거리가 먼 주인공, 공동체를 파괴하는 줄도 모르고 폭력에 도취된 인물, 종국에는 그런 그를 옭아매는 부패한 권력망을 현재의 시청자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작품 속 1970년대란 과거는 도덕적 타락과 폭력을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에 불과한 게 아닐까.

표백된 노스탤지어, 혹은 ‘역사의 과잉’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정의감을 가진 거의 유일한 인물마저 굴복시킨다. 백기태에 유일하게 맞선 인물은 장건영 검사(정우성)인데, 백기태는 그런 그를 멈춰 세우기 위해 장 검사의 여동생 장혜은(이주연)을 정치사범으로 몰아간다. 그 과정에서 중정의 요원들이 장혜은과 함께 일하는, 대부분 여성인 노동자들을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동자들을 무분별하게 때리고, 장혜은을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시킬 수 있다고 백기태는 협박한다. 최근에 벌어진 계엄과 폭력으로 얼룩질 뻔한 정치적 국면을 현명하게 넘긴 한국의 시청자들이 백기태가 벌이는 폭력을 과연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시즌1 마지막 화에서 장건영은 누명을 쓰고 결국 세상에서 사라진다.

최근 중국의 청년들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를 향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해진다. 1976년 벌어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예술단 청년들의 삶을 그린 펑샤오강 감독의 영화 <청춘: 그 날의 설렘처럼>(Youth)은 2017년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 내 경제적 어려움과 맞물리면서 온라인상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경우는 관객들이 1970년대를 다룬 한편의 영화를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현재 한국영화계에서는 창작자들이 동시기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과거에서도 이야기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이토록 많은 창작자들이 어두웠던 시대에 과몰입하는 건 ‘역사의 과잉’이 아닐까. 특히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우 역사의 과잉을 넘어, 과거를 표백하고 노스탤지어화해 1970년대란 어두운 역사를 일종의 기호로 그치게 하는 페티시에 다다랐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영화와 콘텐츠들

<서울의 봄>. 사진제공 플러스 엠 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2023)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2022)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2025)

변성현 감독의 영화 <굿뉴스>(2025)

강윤성 감독의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2025)

우민호 감독의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2025)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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