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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채도는 낮게, 선은 예쁘게, 김보솔 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정재현 2026-01-15

10년 전, 김보솔 감독은 북한에서 3년간 근무한 어느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는 기사에서 하루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맥주 한잔 기울이고 싶었지만, 경직된 북한 사회의 감시 속에 그럴 수 없어서 외로웠다고 전했다. “그 고독을 자전거 타기를 통해 해소했다고 한다. 이걸 읽는 순간 바로 북한에서 외롭게 자전거를 타는 금발 외국인의 이야기가 선명해졌다. 빙판에 금이 가도록 자전거로 원을 그리며 광장을 배회하는 장면은 보리에 이어 명준에게로 이어진다. 외로움이 전이된 것이다.”

낮은 채도의 녹색이 건물 내부를 채우는 <광장>속 인테리어는 철저한 고증에 의해 탄생했다. “녹이 슨 듯한 특유의 녹색을 많이 사용하려 했다. 조명이 들어가지 않는 실내 장면 또한 의도적으로 녹색을 채워 작품의 톤을 구성했다. 나름의 기준으로 컬러를 배치했다. 명준의 공간은 녹색으로, 건물 외부는 파란색으로 맞추는 식이었다. 관객들에게 <광장>이 파스텔 톤의, 낮은 채도의 색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색보정을 마쳤다. 의도가 잘 반영되었길 바란다.”

<광장>의 ‘광장’ 장면은 푸른 톤이 주로 활용된 영화에 거의 유일하게 총천연색이 활용된 순간이다. 새해를 맞아 김일성 광장엔 축제가 펼쳐지고, 불꽃놀이를 즐기는 인파 속에서 보리는 복주를, 명준은 보리를 찾아 헤맨다. 김보솔 감독은 보리가 복주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판단했다. “복주가 나오는 신은 색보정 단계에서 일부러 채도를 조금씩 높였다. 화려한 색의 조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기도 했다. 불꽃놀이는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타오르므로 아름답다. 그 느낌을 보리와 복주의 로맨스에 투영하고 싶었고, 그 바람의 연장으로 복주의 환상을 본 후 공허에 사로잡힌 보리의 숏으로 장면을 끝맺었다. 새해 장면은 영화에 꼭 필요했다. 캐릭터별로 새 목표를 도모하는 기점이 있어야 했고, 그 순간이 1월1일이면 좋을 것 같았다.”

<광장>을 본 관객이라면 만수대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보리와 명준 사이의 거리감이 계단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으로, <광장>의 스토리보드 설계와 색보정을 함께한 이도현 감독의 조언으로 탄생한 장면이다. “이도현 감독이 스토리보드 작업 당시 북한이 배경으로서 좀더 부각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피드백을 건넸다. 누가 보아도 북한임이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만수대였다. 거대한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이 서 있는 곳이니까 공간의 존재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든다. 북한 정부가 권위를 내세우는 공간에서 보리가 도발적인 대사를 뱉고, 그 말을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을 인지 중인 명준이 듣는다는 설정이 이격의 재미를 준다.”

김보솔 감독과 오유진 미술감독은 <첨밀밀>의 소군(여명)을 떠올리며 보리를 조형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수동적이고 지질한 모습도 보이는 보리와 소군이 닮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명의 외양도 참고해 보리를 만들었다. 머릿속이 꽃밭인 점도 소군과 보리가 비슷하고. (웃음) 마크 저커버그의 얼굴도 일부 참고했다.” 다른 캐릭터들도 레퍼런스가 분명하다. 복주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밍(양정이)을, 명준은 그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전운종과 배우 고준의 얼굴을 두루 참고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 음성학자가 육성만으로 유괴범의 몽타주를 완성하는 에피소드를 본 적 있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 목소리를 가졌을 법한 얼굴의 전운종 배우와 자연스럽게 싱크로나이즈드된 게 아닐까 싶다.” 김보솔 감독이 캐릭터의 외모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평단과 대중 모두가 사랑한 애니메이션들에서 해답을 찾았다.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라. 아시타카가 잘생겼고 하쿠가 미소년이다. (웃음) 그래서 보리와 복주는 최대한 아름답게 그렸고, 특히 보리에겐 부드러운 선을 많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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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스튜디오 디에이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