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재능을 보장할 핏줄에 천착하다가 끝내 방황을 멈추고 예술혼에 52뿌리를 내린 한 남자. 전설의 가부키 국보 키쿠오(요시자와 료)의 인생을 두고 평자들은 어김없이 이상일 감독의 개인사를 엮어 해석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상일 감독은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주인공에게 투사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나의 혈통이 작품과 직접 관련됐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다”라고 일축했다. 이는 영화가 그리는 어느 예술가의 초상에 공명해달라는 감독의 변으로 들린다. 그래서 <씨네21>은 영화제 이후 한달여 만에 다시 만난 이상일 감독에게, 영화 속 키쿠오가 이룩한 예술의 경지와 영화 밖 감독이 그리려는 예술적 비전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건넸다.
- <국보>까지 총 세 차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원작 소설을 만나기 전에도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를 구상했다고.
<악인>(2010)을 만든 이후 가부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만 해도 전설적인 온나가타(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전담하는 남성배우.-편집자)가 생존해 계셨다. 그분은 태평양전쟁 이전부터 가부키 배우로서 최전선의 자리를 유지한 인간 국보다. 무대 아래에서 봬도 어느 성별의 향기도 풍기지 않는 신비로운 분이었다. 이런 가부키 배우의 면면을 영화화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그러다 요시다 슈이치가 쓴 동명의 소설을 읽은 후 관점이 변했다. 두 예술가의 대립을 소재로 하는 서사는 대개 상호간의 질투나 배신을 감정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나. 이 소설만큼은 예술가의 혈통을 주지한다는 점에 마음이 기울었다. 오로지 두 사람만 세계의 중심에 있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둘의 인연이 세월을 통해 깊어가는 게 마음에 들었다.
- 각본가로 소마이 신지의 <이사>나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늑대아이>등을 쓴 오쿠데라 사토코를 기용했다.
오쿠데라 선생은 양극단의 요소를 갖춘 작가다. 언어를 다룰 땐 몹시 세심하지만, 캐릭터의 궤적을 구획할 땐 누구보다 대담하다. 한 인물의 긴 세월을 휴먼드라마의 작법으로 그려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오쿠데라 선생의 필치가 더없이 부합한다고 여겼다.
- 일찍이 요시자와 료 배우를 키쿠오 역에 낙점했다고 들었다. 또 요시자와 료 배우에 필적할 만한 상대역으로 <유랑의 달>에서 호흡을 맞춘 요코하마 류세이 배우를 캐스팅했다. 두 배우가 어떤 점에서 서로 대립할 만한 특질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나. 길항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두 배우 각각의 성격이 있다면.
두 배우는 성격도 정반대다. 료는 무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배역에 대한 본인의 주관이 분명해도 이를 명징한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연기 안에 담아내는 편이다. 그런데 류세이는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는 배우다. 연출자와 언어로 소통하며 각자의 의사를 교환하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에너지를 키워가는 타입이랄까. 비유하자면 료는 차가운 불꽃, 류세이는 뜨거운 불꽃이다. 둘 다 온도가 다를 뿐 불꽃인 점은 같다. 다 연소해내니까.
- 배우들이 실제로 무대 위에서 가부키 레퍼토리의 일부 대목을 소화했다. 배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무작정 의존하지 않되 블로킹이나 카메라워크 등 영화적 요소를 고려해야 했을 텐데. 가부키 무대를 영화에 녹여낼 때 어떤 점을 유의했나.
크게 세겹의 레이어로 무대를 다층화했다. 1차는 관객의 시점이다. 이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과 극 중 가부키를 관람하는 관객 모두를 포함한다. 그래서 무대 전체를 조망하는 와이드숏을 설정했다. 이 1차 시선의 리버스숏이 2차 시선인 무대 위 배우의 시점이다. 마지막 시점은 무대 위 배우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클로즈업이다. 이 세 가지 시점을 엮어 가부키가 삶 자체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 무대 앞은 와이드숏으로 넓게 담은 반면, 무대 뒤 분장실과 복도는 아주 비좁게 프레이밍했다.
지나치게 들리려나. 취재하다 보니 분장실은 배우들에게 있어 모체(母體)와 같이 느껴졌다. 무대 위는 생명이 넘치는 공간이고. 그러다보니 분장실에서 무대로 향하는 복도는 산도(産道)처럼 느껴졌다.
-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시간의 흐름이 소설의 챕터 구성처럼 이음매 없이 분절적으로 흐른다. 시나리오에서부터 계획한 편집인가.
특히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5년씩, 10년씩 점프한다. 당연히 관객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갑자기 사라진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두 남녀가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등장하기도 한다. 평소라면 설명하는 장면을 넣었을 텐데 <국보>만큼은 이를 의도적으로 배격했다. 우리의 인생은 인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결혼해 사는 부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웃음) 만약 삶이 달력이라면, 그저 페이지를 넘기며 뒤늦게 지난날을 정리해보는 정도의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 편집에 관해 추가로 묻고 싶은 게 있다. 교차편집을 몇 차례 활용했다. <분노>(2016)에서도 세 캐릭터의 시점을 뒤섞은 바 있지만 <분노>는 스릴러이므로 이런 편집이 장르의 규칙과 어울린다. 반면 <국보>는 인물의 감정선을 좇는 휴먼드라마라 자칫 교차편집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교차편집이 이 영화에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두 작품을 한 사람이 편집했다. 나와 오래 호흡을 맞춘 편집기사 이마이 쓰요시이다. <분노>를 작업할 때 우리가 개발해낸 편집 기술을 <국보>에 응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앞서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해체했다고 말했는데, 이 교차편집 역시 사건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 선택했다. 문제보다 답을 먼저 보여주고 그 원인을 뒤이어 보여주면 관객이 인물의 선택이 갖는 정당성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한국 관객들이 <국보>와 어떻게 만났으면 하나.
가부키 소재의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가닿을지 궁금하다. <국보>는 예술 자체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이들이 예술을 존속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다루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에 보면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의 무대 위 투혼을 두고 타케노(미우라 다카히로)가 “저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나. 예술가의 삶에 반응하는 저마다의 태도가 다양한 관객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요즘 우리 모두는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 긴장하며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럴 때 <국보>처럼 예술의 근원적 미의식을 예찬하는 영화가 잠시나마 삶의 아름다움을 고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